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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 진산 대림산에는 산성이 있다

[새로 찾아내는 길 이야기, 충주 둘레산길 ①] 대림산성과 봉수

등록|2012.02.24 10:52 수정|2012.02.24 10:52
충주 둘레길이 좋을까 아니면 풍경길이 좋을까

▲ 새재 넘어 소조령길은 문경 새재에서 충주 충렬사까지 이어진다. ⓒ 이상기


요즘 옛길이 유행이다. 제주도 올레길로 시작해서 지리산 둘레길로 올라가더니, 소백산 자락길을 거쳐 북한산 둘레길까지 올라갔다. 그래서인지 지방 자치단체마다 길을 낸다고 난리다. 계명산과 대림산 그리고 남한강과 달천을 끼고 있는 충주에서도 산과 강을 끼고 도는 길을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충주 풍경길'이라는 이름으로 78.8km의 길을 내면서 92.2억 원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이미 완료된 사업으로 새재 넘어 소조령길, 충주 비내길, 사래실 가는 길이 있고, 계속 사업으로 충주호 해맞이길과 하늘재길이 있다. 2월 11일, 내가 참여하고 있는 산행담소 팀에서는 충주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따라 나 있는 둘레길을 탐사하기로 했다. 출발은 대림산이 달천강 쪽으로 자락을 드리우는 싸리재에서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남쪽에서 시작 대림산과 발티봉을 지난 다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금봉산(남산)에 오를 예정이다. 그리고 마즈막재를 지나 계명산에 오른 다음 금릉동으로 하산하게 돼 있다.

▲ 계명지맥은 남쪽의 남산으로부터 북쪽의 계명산으로 이어진다. ⓒ 이상기


계명지맥이라 이름 붙인 이 산줄기는 광명산을 지나 능바우에서 남한강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번 둘레길 탐사를 제대로 하려면 달천강에서 시작, 남한강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로를 따라 싸리재 넘어 건대 후문 건너편에서 대림산 자락으로 들어선 다음, 대림산과 발티를 지나 석종사에 이르는 17.68km 코스를 주파할 예정이다. 그리고 2차 탐사를 석종사에서 시작, 금봉산과 계명산을 오른 다음 연수동 막은대미재로 내려갈 예정이다.

이 길은 달천강과 남한강을 끼고 돌기 때문에 둘레길 대신 풍경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충주는 남쪽과 서쪽으로 달천강이 흐르고, 동쪽과 북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기 때문에 강에 둘러싸인 도시다. 그리고 남쪽에 대림산이, 동쪽에 금봉산이, 북쪽에 계명산이 자리 잡고 있어 서쪽으로만 틔어있는 형국이다. 그러므로 충주의 들은 달천강을 끼고 서쪽으로 펼쳐져 있다.

대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 대림산 오르는 길 ⓒ 이상기


대림산으로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 있다. 지름길은 대림산의 남서쪽에 있는 창골에서 오르는 길이다. 창골은 대림산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주둔하던 마을로, 창고가 있어 창골 또는 창동으로 불리게 됐다. 또 다른 지름길은 대림산의 남쪽 향산리에서 오르는 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림산 북쪽 중산고등학교에서 오르는 길이 생겼다. 이들 길은 대림산 정상까지 1.5km 내지 2km에 불과해 1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림산을 종주하는 동서 루트를 택한다. 이 길은 서쪽의 싸리재에서 시작, 국유림관리소 - 삼초대 고개 - 대림산 전망대 - 대림산 정상을 지나 나냉이재로 이어진다. 대림산 정상(489m)은 봉수대가 있어 봉화뚝이라고도 불린다. 싸리재에서 국유림관리사무소로 가기 위해서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거리는 2km이다. 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삼초대 고개까지는 1km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삼초대 고개는 북쪽의 관주골과 남쪽의 삼초대를 연결하는 고개다.

삼초대(三超臺)는 단월에서 창골로 이어지는 달천강변에 형성된 단애(斷崖)다. 그 단애가 삼단 또는 삼초로 구성돼 있어 삼초대라 부른다. 삼초에 해당하는 부분에 정심사라는 절이 있으며, 삼초대 위에 산신각이 있어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삼초대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어릴 때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정심사는 태고종 계열의 절로 원해 스님이 주지로 있다.

대림산성과 봉수 이야기

▲ 삼초대 ⓒ 이상기


삼초대 고개로부터 산길은 고도가 높아진다. 이 길은 남쪽 달천강에서 보면 마치 가파른 절벽 위에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외적이 이 산을 넘어 시내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 자연스럽게 산성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이것을 대림산성이라 부른다. 대림산은 창골로 들어가는 입구를 성문으로 차단하고, 남쪽 향산리에서 오르는 일부 지역에 성벽을 쌓으면 천연의 요새가 된다.

대림산성은 고려 고종 40년(1253) 김윤후 장군이 야굴(也窟)의 몽골군을 물리친 대표적인 승전지다. 고려군이 70일 동안 항전하며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대림산성이 갖는 전략적인 특성 때문이다. 4.9km에 이르는 큰 규모의 성이면서도 성안이 주둔과 방어에 유리하게 돼 있다. 군사와 말 등 인마가 생활하기에 충분한 경작지와 주둔지를 갖고 있고,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부에는 주변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장대와 봉수대가 있어 지휘하기에 용이하다.

▲ 대림산 봉수대 석축 ⓒ 이상기


대림산 정상의 봉수는 계립령에 있는 마골재 봉수와 수안보의 주정산 봉수로부터 받은 신호를 이류면의 마산 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대림산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0명이 소속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봉수대에는 민묘가 있고, 주변에는 석축이 쌓여 있다. 석축은 동서 16m, 남북 19m로, 동쪽은 경사를 이루며 2단으로 돼 있다. 남쪽은 1.5~3m, 북쪽은 1.3~1.5m의 석축이 각각 확인된다.

석축 주변으로는 평탄한 대지가 조성돼 있으며, 지표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기와편이 확인된다. 대림산 봉수는 대림산성의 동북단에 위치한다. 대림산성은 이화령이나 조령으로 통하는 길목을 감제하고 방어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그 때문에 산성 정상부에 봉수대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림산성의 과거 흔적 찾기

▲ 대림산 앞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달천 ⓒ 이상기


삼초대 고개에서 대림산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 이를 데 없다. 489m 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이곳에는 바위가 많고 경사가 급해 조금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산성으로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던 달천은 대림산 앞에서 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 북쪽으로 보면 충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동남쪽으로 성안에는 창골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대림산 정상의 봉수대로 가는 능선은 오히려 평탄하면서 완만한 편이다. 그래서 능선을 따라 치성을 설치하는 형식으로 성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석축은 취약한 남쪽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높이는 4-6m로 수직방향의 홈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축성방식은 평양 대성산성, 연천 당포성 등에서 확인된다. 그러므로 대림산성은 고구려 산성과 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대림산성 석축(자료사진) ⓒ 이상기


▲ 당초문 평기와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또 산성의 일부 지역은 기단부만 돌로 쌓고 나머지는 흙을 쌓아올리기도 했다. 현재 대림산성은 훼손이 심해 성문과 암문, 장대와 망루 등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지표조사를 통해 문지, 건물지, 우물터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안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도장무늬 토기와 당초문 평기와, 고려시대 상감청자와 어골문 기와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몽항쟁의 중심지가 이곳 대림산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림산성의 종주바위다. 종주바위는 대림산 정상 아래에 있는데, 고종 19년(1232) 대몽항전을 지휘하다 도망친 부사 우종주(于宗柱)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종주바위는 대림산에서 가장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고려사 절요>에 따르면 군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부사 우종주와 판관 유홍익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천민들이 힘을 합쳐 성을 지켜낸다.

▲ 종주바위(자료사진) ⓒ 이상기


"몽고 군사가 장차 이를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성을 지킬 것을 의논하는데 (서로)의견이 달랐다. 종주는 양반별초(兩班別抄), 홍익은 노군잡류별초(奴軍雜類別抄)를 거느리고 서로 시기하더니, 몽고 군사가 들이닥치자 종주·홍익과 양반 등은 다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오직 노군잡류가 합력하여 (적을) 쳐서 물리쳤다."

대림산 봉수대를 내려온 우리는 동북쪽의 암문을 지나 동문으로 간다. 동문 주변에는 문지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문지를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쌓은 돌무더기도 보인다. 동문지로부터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길 주변에서 무너진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길은 동쪽으로 나냉이재까지 이어진다. 나냉이재에는 임도가 개설돼 있고, 임도 아래로는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살미면 향산리 마을이 길게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새로 찾아내는 길 이야기, 충주 둘레산길]이라는 주제로, 충주를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길을 탐사한다. 네 개의 산은 대림산, 발티(봉), 금봉산(남산), 계명산이다. 그런데 이들 산에는 산성과 봉수, 절과 성황당 등 문화유산이 많고 역사가 서려 있다. 이들 산길을 소개하고, 주변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추적해 보려고 한다. 앞으로 발티와 석종사, 금봉산과 충주산성, 계명산 이야기를 3회 더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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