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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고 낸 그녀들은 괜찮을까

차량 충돌 사고 그 현장에서 겪은 일

등록|2012.02.24 17:10 수정|2012.02.24 19:44
한 달 전에 새벽기차를 타고 을지로로 가서 연수를 이틀 간 받고 과제리포트도 내고 이제 마지막 과정인 시험을 보기 위해 조퇴를 했다. 최근에 신경 쓸 일이 생겨서 퇴근 후에 미리 공부를 해 놓지 않아서 준비시간이 딸렸다. 시험은 두 시간이지만 시험 보기 전에 몇 시간이라도 총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자기 전에 아무리 외워도 자고 나면 한 가지만 생각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노화작용인지 최근에 일어난 일들로 인한 집중력 저하인지 잘 모른다.

신부님과 점심을 먹다가 농담으로 "한 개만 빼고 모두 까 먹는다"고 하니, 신부님도 "한 개도 안 남아요!"라며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한 개도 안 남는 것이 나처럼 모두 다 까먹어서 안 남는 것인지, 영성지도자답게 항상 머리를 맑고 깨끗이 비우는 훈련이 되어서인지 잘 모르지만 그냥 웃었다.

아가씨 두 명이 탄 오토바이가 내 차와 충돌했다

시험을 보러 가는 길. 늘 우측서행을 하던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이 켜져 차를 세웠는데, 갑자기 차가 심하게 흔들려서 놀랐다. 아가씨 두 명이 타고 가던 오토바이가 신호 바뀐 줄을 모르고, 그대로 내 차를 따라 오다가 급정거를 못 해 충돌했던 것이다. 오토바이는 파손 된 정도가 심하다. 내 차도 뒷 범퍼가 파손되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던 차에 마침 그 앞에 건물 주인이 나와 같은 작가 선생이라 보험사에 일단 전화를 해주었고, 교통 경찰도 순찰하다가 현장에서 보고 접수를 했다.

일단은 오토바이를 운전한 아가씨도, 그 오토바이도 보험을 들지 않은 상태였다. 면허가 있는 지 오토바이가 등록을 했는 지 나도 두 딸이 있는 여성 가장이라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겁먹은 표정의 여대생 같은 아가씨의 표정과 황급히 달려온 아빠같이 보이는 아저씨가 유달리 싹싹하게 나왔다. 그냥 무난하게 소액으로 합의를 하는 방향으로 했다.

합의 처리를 도와 준 보험 직원과 렌트카 직원 그리고 정비소 사람 등 이렇게 건장한 남자 셋이 합의가 끝나자 달려들었다. 내 차를 가지고 여기서 범퍼를 갈고, 저기서 차를 수리할 동안 렌트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중 차를 가지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합의해서 받은 금액을 자기들에게 그대로 주면 된다고 통역해 주었다.

나는 보험 처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보험사가 차량을 안 가져가도 되고, 차 수리는 내가 단골 카센터에 가서 알아서 수리하겠다고 말했다. 렌트도 필요하면 하고, 필요없으면 렌트비로 물리 치료를 하는데 쓰겠다고 말했다.

충돌사고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렇게도 소곤소곤 말했다.

"지금 다친 곳은 없지만 병원을 가라, 이 자리에서 합의하지 말고 병원을 가서 치료비도 청구하고, 보험도 가해자가 보험이 없어도 피해자가 자기 보험을 가지고도 타는 방법이 있다."

나는 그 분을 쳐다보고 "글쎄요" 하면서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내가 출근하다가 빙판 길에 누군가의 차를 충돌이 아니라 그냥 제자리에서 아래로 스르르 천천히 미끄러져 살짝 삼중 접촉이 일어났을 때, 내 앞에 있던 차 두 대가 똑같이 병원비, 렌트비, 범퍼비 그렇게 백만 원이 넘는 보상을 받아갔던 기억이 났다. 현금이 부족해서 하나는 보험 처리를 하고, 하나는 사정을 해서 백만 원이 채 못 되는 돈을 주었다.

사고 나면, 치료비·렌트비 받는 것이 세상의 상식

주행 중 사고도 아니라 목도, 허리도 다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병원 치료비를 받고 살짝 긁혔을 뿐인데도 범퍼를 갈았던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아 그 당시에 속이 조금은 쓰렸다.

나는 내가 청각장애인이라서 '덤터기'를 당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 때 누군가가 말했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접촉이 일어났을 때, 이렇게 처리 되는 것이 요즘 세상의 상식이고 통용이라고….

그 상식과 통용대로 하면 나도 내가 겪었던 그것처럼, 이번의 충돌 때에도 내가 받은 그대로 해야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 안의 어떤 느낌이 일러주었다. 세상이 그렇게 상식대로 또는 야박하게 돌아가도 그렇게 휩쓸려서 살아가면 안되는 거라고…. 레이스 경주마처럼 그렇게 똑같이 경주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우황청심환'을 먹고 예정대로 2시간 가까이 시험을 보았다. 인강 행동 중심의 여러가지 약술이론과 역기능적 사고 및 방어 기제와 그토록 외웠던 '에니어그램'의 성격 유형에 대한 분석과 'Holland 인성이론'의 기본 가정이 제대로 기억 나지 않아 약술식 서술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무사히 시험을 보았다는 것이 무척 즐거운 느낌이었다.

올해 떨어지면 내년에 또 보고, 내년에 안 되면 후 내년에 또 보면 되기에 심적 부담이 전혀 없었지만 자고 나니 머리가 띵하고 목도 뻐근하다. 차 안에 있던 내가 이렇게 후유증이 온 걸 보면 오토바이가 많이 파손 된 그 아가씨들은 얼마나 놀라고, 머리가 아플까 은근히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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