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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순이' 김두순 할머니가 한 턱 쏘다

등록|2012.02.24 15:53 수정|2012.02.24 15:53
김두순 집사님이 들으면 속상해 하실까요? 86세 연세에 걸맞지 않게 속 앓이를 좀 하실 것 같네요. '짠순이 김두순'이라고 하면…. 벌써 한 주가 지난 얘깁니다. 지난 수요일(2월 15일)이었으니까 정확하게 9일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 돌이킵니다. 수요일은 저희 교회 노년부 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오전 8시쯤 되었던 것 같아요) '할매참옻닭'집 안광순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모님, 할머니 한 분이 저희 식당에 오셔서 오늘 점식을 사시겠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사모님이 오늘은 일부러 할머니들 점심 준비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에 가서 말씀하시지 아침 일찍 왜 식당으로 먼저 오셨을까?~"

아내는 그 할머니를 바꿔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긴 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가는귀를 잡수신 노인 분이라 몇 번씩 확인하며 통화하느라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2월 19일)이 김두순 집사님의 86회 생일이라고 합니다. 생일을 맞이해서 평소 우리 교회 노년부에 큰 사랑을 베풀고 있는 '할매참옻닭'집에서 한 턱 쏘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들 빠짐없이 참석해서 음식을 나눠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두순 집사님은 노년부 할머니들이 가끔 돈을 추렴해서 외식을 할 때면 늘 몸을 사리는 분입니다. 시원하게 돈을 내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미적대시다가 마지못해 맨 나중에 돈을 내는 그분의 습성으로 인해 '짠순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10만 여원이 소요될 '옻오리'를 점심으로 사시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김두순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신 지는 4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분은 종이 상자 등의 폐품을 수거해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선 '고물 장수'로 통했습니다. 그 시절 김 집사님의 행색은 노숙자 저리 가라였습니다. 꾀죄죄한 외모는 말하지 않아도 고물장수임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뀌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고부터 머리의 깨끗함 정도가 달라지더니 입는 옷도 달라지고, 신는 신발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작년부터는 고풍스런 안경까지 착용하셔서 고관 댁 마님을 떠올릴 정도로 변했습니다.

지금은 노년부 회원 중 깨끗함으로 칠 때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교회 나오고 제일 수지맞은 사람이 '김두순'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김 집사님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거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습니다. 어려운 생활을 하다 보니 야물기론 2등 하라면 서럽다고 할 정도입니다. 고물을 주어 판다고 해서 큰돈이 될 턱이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번 돈을 최대한 절약해서 쓰기 때문에 장애인 아들과 함께 죽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다고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그런 분이 결코 적지 않은 값이 나올 '옻오리'로 점심 대접을 한다고 하니 교회 할머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들입니다. 저는 그날 조금 일찍, 그러니까 오전 11시 이전에 할머니들을 '할매참옻닭'집에 모셔다 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 뒤 점심 식사를 하기로 계획하고 들뜬 기분으로 댁들을 방문했습니다. 마음 한편으론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집사님이 생일 턱으로 고급 요리(?)를 내시니, 축하 케이크와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몇 분을 먼저 모셔다 놓고 시내로 차를 달렸습니다.

빵 가게에 거의 도착할 무렵, 여전봉 집사님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여 집사님은 '할매참옻닭'집 안 사장님의 큰딸이 됩니다. 아마 할머니들 중 한 분의 생일을 맞이해서 어머니 식당에서 점심을 드시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좀 급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목사님, 지금 시내 나가시는 중이시죠? 오늘 한 할머니 생신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생신을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닌데, 제가 할머니들 드리기 위해 어젯밤 케이크를 하나 만들었어요. 생일 케이크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으니까 일부러 케이크 사지 마시라고 전화 드렸어요. 아시겠죠?"

할렐루야! 여전봉 집사님은 저희와 통할 때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랍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어김없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이외의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작년 이맘 때, 즉 생일의 주인공이신 김두순 집사님의 생신 날, 미역국을 끓여놓고 조촐한 생일상을 사택에 차렸을 때도 아무 예고도 없이 축하 케이크를 보내와서 잘 썼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보내셨다며 할머니들이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셨습니다. 이런 짜릿함을 경험하고 계신 할머니들의 요즘 생활은 윤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린 예배를 드리고 모처럼 고급 요리이자 건강식인 '옻오리'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김두순 집사님의 건강과 즐거운 신앙생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함께 사랑을 나눈 모든 이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십사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짠순이' 김두순 할머니에게 동료 할머니들은 축하한다, 고맙다, 잘 먹겠다 등의 말로 인사를 건네기 바빴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어려운 생활에서도 이렇게 거나하게 한 턱 내는 것을 보니 '짠순이'가 아니네!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사진도 몇 장 찍고, 할머니들이 드시기 쉽게 뼈와 살을 골라 드리기도 하면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광순 사장님은 이런 축하의 자리에 빠질 수 없다며 음료수를 숫자대로 내왔습니다. 우리는 뒤늦게 '건배'를 외치며 우리들만의 오찬을 즐겼습니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서 작게 찾아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그것을 크게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노년부 할머니들은 그런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가끔 도에 넘치게 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한 턱 내신 김두순 집사님도 그런 행복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노후 생활은 찾는 사람들에게 손잡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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