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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수재단' 딜레마... "답답하다"

[진단] 법원, 환수소송 기각했지만... '범죄의 증거인 장물' 어찌하나

등록|2012.02.24 16:27 수정|2012.02.25 12:09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24일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고(故) 김지태씨 삼남 영우씨가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법원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중앙지법은 24일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설립자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는 강제 헌납받은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곤란하면 국가가 10억 원을 배상하라"며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당시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이 박정희 군사정권의 최고권력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부일장학회를 강탈당한 시점이 1962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었다는 점에서 주식증여 취소권한에 대한 공소시효(10년)가 훨씬 지났다는 이유다.

공소시효 지나 기각... '강압'은 인정

법적으로는 '공소시효 만료'라는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서울지법이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며 '강압' 사실은 인정한 것처럼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수장학회'가 국가권력, 그것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개인의 재산을 강탈한 장물이고, 또 장학회 기금 조성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이름에서 따온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우리 현대사의 굴절된 역사의 한 징표로 평가받는다.

▲ 2005년 2월 28일 정수장학회 이사장 사퇴서가 수리된 시점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모습 ⓒ 연합뉴스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자 그 자신이 1995년부터 10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박근혜'라는 유력 대선 후보의 역사관, 민주주의관,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2007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도 쟁점이었다. 그리고 다시 올해 총선의 이슈로 떠올랐다.

박근혜 위원장 쪽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답답하다"고 말한다. 박 위원장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강제 헌납된 것이 아니며, 새 이사진이 구성돼 자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 뒤 이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그는 '왜 나에게 이 문제를 묻냐'는 태도였고 <부산일보> 노조의 면담요청에 대해서도 "내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고 해왔다.

지난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장학회 주인인 이사진의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한 것 정도가 큰 변화로 비쳐지는 수준이다. '이사진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청와대'의 의전비서관 출신으로 1978년부터 그를 모셔온 최필립 이사장 등 5명의 이사진의 존재는 이런 설명을 무색하게 한다.

"최 이사장, 당신들 일이나 잘하라고 한다"

박 위원장의 한 측근은 "우리 쪽 인사들이 (박 위원장 지시 없이) 자체적 판단으로 최 이사장 쪽에 거취 판단을 해달라는 뜻을 전달했지만, 당신들 일이나 잘하라고 한다"면서 "연세(84)도 있고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 비대위원도 "여러 인사들이 수차례 박 위원장에게 총선과 대선을 감안해 이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박 위원장은 '개입할 방법도 없고 개입한다면 그동안 무관하다고 말해온 건 뭐가 되느냐'라는 입장이 완강했고 박 위원장 성격상 이런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수재단 쪽에서 알아서 해줘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수장학회는 23일 이사진 일동 명의로 "박 위원장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며 "앞으로 왜곡된 정치공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행태는 없어지길 바란다"고 일축해 버렸다. 최 이사장은 앞서 <한겨레> 인터뷰에서 "대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며 계속 시끄러우면 <부산일보>를 팔아 버리겠다"고까지 했다.

이 문제는 서서히 부산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부산지역 의원은 "일반 시민들이 거론하는 수준은 아니"라면서 "그러나 부산·경남에 영향력이 큰 <부산일보>가 이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계속 관련 기사가 나오고 있고 야권도 대선까지 감안해 이슈화하고 있기 때문에 파장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 쪽으로서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온 말이 있기 때문에 박 위원장이 직접 또는 공개적으로 나설 수는 없고, 물밑으로만 해결해야 한다. 맞서 반박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분명하다.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이 최근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며 강조하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이런 표현을 쓴 사람 중의 한 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부일장학생' 노무현 "정수재단은 '범죄의 증거'이며 '장물'"

▲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의 우선조사 대상에 포함된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정수장학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40여년간 뛰어왔던, 고(故) 김지태(당시 부일장학회 이사장)씨의 장남 김영우씨가 2005년 2월 3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작고한 아버지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 4월에 나온 <운명이다>에 따르면, 그 자신이 부일장학생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은인 김지태 선생'이라는 장에서 "그 장학재단은 '범죄의 증거'이며 '장물"이라고 규정한 뒤 "정의를 실현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합당한 자격을 가진 유족이나 시민대표들에게 운영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보았다.… 국민여론으로 풀어보려 해도 정수장학재단의 실질적 주인인 박근혜씨가 야당 대표로 있어서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야권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친노를 핵심으로 한 민주통합당은 부산지역의 돌풍을 배경으로 대선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이고 그 선두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후보가 서 있다. 박 위원장의 딜레마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최필립 이사장이 '버티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박 위원장을 뜻을 따르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이렇게 전망하는 사람들도 '그 결정이 총선 전에 나와야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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