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영어광풍'...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
[서평] 남태현의 <영어 계급사회>
▲ <영어 계급사회> 표지 ⓒ 오월의봄
우리 집 둘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셋째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된다. 그런데 오늘 녀석과 함께 가는 길에 녀석이 어린이집에서 배운 영어 몇 마디를 내게 자랑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이 그렇다. 동사무소에서 주소를 이전할 때나 여권을 만들 때도 이름 석 자만 영문으로 쓰면 된다. 은행에서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전담 직원 한 명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대형 우체국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심지어 우리나라의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필요로 하는 몇몇 직원만 영어를 잘하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상한 흐름을 타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어 조기교육이 광풍이고, 초등학교에서 국어선생을 뽑거나 심지어 공무원시험에도 영어시험이 필수다. 실제 생활에서 쓰는 이들은 제한돼 있는데도 모두가 영어에 미쳐 있는 꼴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처럼 유교경전을 달달 외우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합격하면 영어는 써먹지도 않는데 마치 계급장을 딴 것처럼 특권행세를 부리지 않던가?
우리는 왜 영어에 미쳐 있을까
남태현의 <영어 계급사회>는 그 현상이 우리나라가 미국을 숭배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세계화의 논리가 그것이다. 영어만 배우면 우리도 미국처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현재 미국 정부가 중국에 빚진 돈은 한국 돈으로 1조 2865억 원이고, 미국 재정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고, 냉전 당시와 달리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많이 쓰는 언어는 중국어로 약 10억 명이 쓰고, 그 다음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약 3억 명, 인도의 힌디어와 아랍어를 약 2억 명,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약 1억4000명 정도 쓰고 있고, 유엔의 공식 언어도 아랍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 등 여러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모두 영어에 미쳐 있다. 조기교육을 비롯해 조기유학까지, 대학입시제도와 어학연수와 취업시험까지 모두 영어가 도배하고 있다. 과연 그런 교육과 제도를 통해 우리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다. 돈은 그만큼 쏟아 붓지만 우리나라의 영어실력은 세계에서 하위다.
그렇다면 영어광풍의 진정한 수혜자들은 누구일까? 남태현은 영어와 관련된 산업자들, 이른바 우리나라의 기업화된 영어학원이 그 첫째요, 둘째는 토플과 토익 시장의 최대 물주인 ETS, 셋째는 한국의 학원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의 투자자들이라고 한다. 거기에다 또 하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유학생들이 미국에까지 가서 먹여 살리는 미국의 대학들 말이다.
이번 총선, 대선 때부터 바꾸자
"그렇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두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구체적인 정책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국가경영 차원의 문제입니다."(194쪽)
남태현이 말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국가경영 차원이란 무얼까? 우리나라 정부가 공무원시험에서 영어를 필수로 하던 제도를 바꾸는 것, 외국의 학생들을 많이 유치하는 대학들에게 높은 평가점수를 줬던 제도를 바꾸는 것, 그리고 대학입시도 영어 대신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외국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해도 콧방귀도 안 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영어로 계급화된 사회를 밀어붙이고 있는 이들 말이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면 그런 정책적인 변화는 진정으로 필요한 대안이다. 그것만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써 먹지도 않을 영어 때문에 골몰해야 할 이유도 없고, 영어 광풍의 수혜자들에게 괜한 돈을 싸질러 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 때부터, 그리고 대선 때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백성들에게 참된 것을 일깨워주고 또 되돌려주었듯이, 우리나라도 영미숭배정책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여당과 야당에서 당리당략으로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고 여러 공약들을 내세우지만 그것들은 해가 바뀌면 수시로 달라질 일들이고, 진정으로 집값을 잡으려면 입시제도와 대학정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영어 계급사회> 남태현 씀, 오월의봄 펴냄, 2012년 2월, 22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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