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이요? 제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죠"
[인터뷰] 족발 만드는 천하장사 박광덕
▲ 작년 9월께 기자(왼쪽)가 찾았던 씨름선수 박광덕(중앙)의 천하장사 족발집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 박 사장은 손님들이 기념촬영을 요청할 때 마다 환한 웃음으로 기꺼이 함께 찍어 주고 있다. ⓒ 이정민
올해 나이 마흔 하나. 약관의 나이에 모래판의 람바다로 명성을 날리며 씨름계를 평정했던 프로선수 박광덕. 1990년 프로무대 데뷔 후 백두장사(3회)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그에게 천하장사(준우승 5회) 타이틀은 끝내 쥐어지지 않았다. 불운이었을까. 박씨는 씨름계의 흥행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뒤로하고 이후 인생의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1996년 은퇴 선언 이후, 강호동의 뒤를 쫓아 연예계에 발을 디딘 그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탁월한 유머 감각과 재치 있는 애드립(즉흥 연기)으로 단 번에 예능계를 들어 올렸던 박광덕. 이 덕분인지 예쁜 부인과도 함께 출연, 닭살스런 잉꼬부부 모습도 보여줬던 그는 한 순간에 쓰러진다.
하지만 7전 8기라 했던가. 수많았던 참혹한 시련들이 그를 깨우쳐 주는 동기가 됐다. 그것은 바로 '(욕심을)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이후 그는 각종 행사와 카페, 밤무대,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빚을 청산한다.
그리고 새롭게 얻은 그의 타이틀은 족발집 사장님. 아직 2년밖에 안됐지만 그의 익살끼 넘치는 너스레와 족발 맛을 알아본 손님들은 20평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을 연신 찾고 있다. 지난 2월 22일, 그를 식당에서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 콜라겐이 풍부한 족발은 여성 손님들에게 각별한 인기를 얻고 있다. 가격에 따라 한라장사 족발, 백두장사 족발, 천하장사 족발로 나누어 판매한다. ⓒ 이정민
- 족발 맛에 중독됐다는 사람이 많다. 특별한 맛의 비결이 있다면.
"(잠시 생각하다)주방 총괄실장이 더 잘 알겠지만, 무엇보다 냉동 안 된 생 족발이 중요하죠. 오래 알게 된 유통회사와의 거래 믿음으로 직접 확인해 골라 씁니다. 거기에 재료가 30여 가지가 첨가되고요. 특히 통째로 넣는 바나나와 오렌지는 비린내를 잡는 특효약입니다.
그날 준비한 재료는 몽땅 판매하지요. 그러다 한두 개 남으면 저희가 먹을 정도니까요(웃음). 모든 재료를 알맞게 배합해 맞춤형 족발이 탄생되는 거죠. 모양도 좋고, 맛은 분명하고, 영양가에 구색까지. 거기에 친절서비스는 덤이라고나 할까요. 이름 걸고 하는 장사인데 장난으로 하면 안 되죠."
- 단골손님이 많다고 들었다. 손님들이 계속 찾는 이유는 뭐라 생각하는가.
"손님들이 맛을 인정해줘요. 365일 변함없는 맛을. 단골 고객이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가 또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셈이죠. 손님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가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 있잖아요. 그저 연예인이라는 타이틀로 부담만 주고 맛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럴수록 더욱 신경 써야죠. 구파발에서 온 어느 손님은 입덧이 심한 신부에게 주려 왔다가 (문을 닫아)다른 족발 사갔다고 이혼하자고 했다 합니다(웃음). 저 같아도 그냥 다른 곳 갔을 텐데 그래도 갈 때는 '잘 먹었다'고 만족해하더라고요."
▲ 천하장사 왕족발집 내부 전경. 식당 벽 곳곳에는 20년전 그가 왕성하게 씨름했던 모습들의 기사가 가득 붙어 있다. ⓒ 이정민
- 내부 인테리어가 특별하다. 씨름 선수 시절의 인터뷰 기사가 즐비하다. 각별하게 이렇게 붙여 놓은 다른 이유는.
"20년 전 씨름 기사들이에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나도 한때는 이렇게 잘 나갔다', '나도 알고 보면 열정적인 프로선수였다' 등등. 즐거웠던 사연, 맘 아팠던 시절들을 돌아보는 하나의 추억영화죠. 기다리는 손님들 보면서 재밌어 하시기도 하고요."
- 혹시 팬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게 두려운 건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성격 자체가 그래요. 20대 전성기 시절도 그러했지만 나를 안 알아준다고 서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알아봐 주는 게 창피할 정도였죠. 나름 쑥스러움을 잘 탔거든요. 오히려 숨어 다닐 정도였어요. 왜냐고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 몰랐었거든요."
- 요즘 건강관리를 따로 하나.
"해야죠. '자식이 용돈 드릴 능력되자 부모는 돌아가신다'라는 말이 있어서 부모에게 더욱 잘해드리고 있고요. 제 건강 관리는 솔직히 잘 못하고 있죠. 하루에 세 갑씩 피는 담배도 단번에 끊기는 어렵지만 줄여야죠. 예전엔 조기축구도 했지만 운동 그만두면서 많이 아프더라고요. 운동선수는 일반인보다 두세배는 더 아파요. 노화도 일찍 오고요. 운동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죠."
- 나이 마흔을 넘겼다. 이전 생활과 다른 느낌들이 있나. 책임감도 무게감도 많이 더해질 텐데.
"정말 그런 게 있어요. 요즘 느끼는 거지만 젊어서 버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또한 만병의 원인이 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젊었을 때 포부나 야망은 그때 뿐이더라고요. 성공 패턴에 따라 사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한창 때는 한 방을 노린다는 생각보다 평소 준비하지 않았던 제 모습이 더욱 힘들었어요. 한 마디로 제 인생은 찌그러진 깡통이었어요. 밟아도 더 찌그러질 수 없는 깡통이요. 근데 이게 참 오묘한 게 누군가에게 또 발로 차였을 때 오히려 그때부터 조금씩 펴진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맘을 바꿨습니다. '남에게 돈을 빌리지 말자'는 철칙도 이때 생겼고요. 지금은 짜장면 하나 시켜먹을 때 탕수육 하나 더 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됐지만, 내가 버는 진짜 돈의 의미를 생각하며 잘 쓰는 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 요즘도 씨름계 선후배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지. 혹은 다시 씨름계로 들어가 후배양성이라도 할 의향은 없는지 궁금하다.
"연락을 가끔 합니다.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고요. 씨름 동문회가 있어 드문드문 여러 지인들을 만납니다. 프로선수 시절, 15명이 한 팀이다 보니 절친도 있잖아요. 그분들과는 서로 연락하면서 가끔 소주 한 잔씩 하며 회포를 풀기도 합니다.
후배양성이요? 당연히 의향은 충분히 있죠. 예전 씨름 그만두고 두 세군데서 지도자 요청이 왔었는데 거절했어요. 제가 그 구단 지도자로 감으로써 기존에 있던 코치나 감독이 그만둬야 되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저 때문에 누군가의 자리가 빼앗기는 걸 차마 수용하기가 어려웠어요. 요즘 다 힘들잖아요. 하지만 그런 상황 아니고 대학팀이나 실업팀에서 요청이 온다면 꼭 하고 싶어요. 씨름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말이죠. 그래도 아직 들배지기, 밀어치기, 빗장걸이 등의 기술은 여전합니다.(웃음)"
- 간단히 물어볼께요. 박광덕에게 씨름이란?
"(잠시 회상에 젖으며)저의 존재감 그 자체입니다. 아마 씨름이 아니었으면 박광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씨름과 박광덕은 삶의 존재를 이어주는 생의 고리인 셈이죠. 지금의 내 모습을 가르쳐 준 것도 씨름이었고, 씨름이 있었기에 박광덕 이름 석 자가 존재할 수 있었죠. 더불어 씨름판에서 람바다를 추지 않았더라면 많은 팬들이 기억해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웃음). 제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곧 씨름입니다."
- 지인들의 사기, 여러 사람들과의 불행한 관계로 인해 많이 힘들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이 수 억 원이지 그 돈 떼이고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아픔은 사람까지도 잃어버려야 했다는 겁니다. 이후로는 돈은 절대 빌리지도 않고 신중하게 사람을 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 말도 쉽게 내뱉지 않고 심사숙고하며 소통하려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회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라도 긍정해야 지금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겠지요.
이건 여담인데, 최고로 답답한 사람들은 '이민이나 가서 돈이나 벌어야지'하는 분들이에요. 그게 다 방송 탓이지요. 프로그램 보면 해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만 소개하다보니 혹 하고 떠나버리는 거죠. 제가 다섯 번 정도 강의에 초청돼 언급했던 말이 '프로'와 '선'이라는 말이었어요.
무얼 하더라도 프로정신으로 하되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특히 잘난 체 하는 순간 공든 탑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는 말이죠. 진심이면 반드시 통하고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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