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말을 책임져준 <1박2일>...고맙습니다
[TV리뷰] 강호동 없이 마지막 5개월을 무사히 달려낸 '1박 2일'
▲ 강호동 하차 후 5인 체제로 지속되어 온 <해피선데이> '1박 2일'. ⓒ KBS
지상렬이 빠지자 김C가 들어왔고, 노홍철이 나가자 이승기가 들어왔다. 그 후 3년, 프로그램이 안정되고 중요한 축의 하나로 작용하던 김C가 가수활동을 이유로 하차했을 때도,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치며 '야생'을 담당하던 MC몽이 병역비리 논란으로 배에서 내렸을 때도 방송은 비록 흔들리고 위태로웠을지언정 난파당하지 않았다. 원년멤버 김종민이 돌아오고, 새로운 피 엄태웅을 수혈해가며, 그들은 버텨냈다.
그러나 강호동이 하차를 선언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강호동이 곧 '1박 2일'이고, '1박 2일'이 곧 강호동으로 여겨져 왔던 지난 세월이었기에, 그의 하차는 프로그램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의 후폭풍을 몰고 왔고, 결국 KBS는 방송사상 최초로 예고 종영 깃발을 내걸었다. 그리고 '1박 2일'의 시한부 방송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로 가는 길 또한 쉽지 않았다. 시한부 방송이 결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호동의 탈세 의혹이 불거졌고, 여러 논란에 휩싸인 강호동은 결국 연예계 잠정 은퇴라는 강수를 뒀다. 그는 자신이 진행을 하고 있던 지상파 4개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했다. 선장을 잃어버린 '1박 2일'호가 순항하리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놀랍게도 그 기간 동안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선장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쾌속질주 했고, 이제 그 목적지에 다다랐다.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던 시청자들은 이제 그들의 항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1박 2일'은 어떻게 강호동 없이 그들의 항해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을까? '1박 2일'의 종영을 맞아 그들의 지난 5년을 추억하며 마지막 5개월의 여정을 되짚었다.
타고난 리더쉽과 특유의 친화력 겸비한 국민 MC 강호동
▲ '1박 2일'의 맏형 강호동은 타고난 리더쉽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방송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 KBS
'1박 2일'의 테마는 여행이다. 멤버들은 말 그대로 1박 2일 동안 대한민국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 익히 알려진 관광지뿐만 아니라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산간의 오지와 뱃길만 몇 시간이 걸리는 외딴 섬에까지 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자연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멤버들의 감탄이 추임새로 녹아든다. 실로 멋진 그림이 매회 만들어진다.
그러나 '1박 2일'은 여행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여행 '예능'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을 걸고 멤버들을 '야생'으로 내몬다. 여행하며 경치를 보여주는 사이사이, 식사와 잠자리를 걸고 복불복 게임을 한다. 그리고 강호동은 그 두 가지에 있어 가장 특화된 MC였다. 그는 대식가이며 미식가이고, 모래판을 휘저었던 천하장사 출신답게 게임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승부의 장에서도 최고였다.
나영석 PD와 제작진이 멤버들을 야생으로 내몰 판을 마련하면 그 위에서 멤버들에게 파이팅을 밀어 넣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필사적으로 미션과 게임에 매달렸고, 멤버들이 그를 따르며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는 사이, 깨알 같은 재미와 웃음이 만들어져 '1박 2일'을 예능으로 있게 했다.
그러나 '1박 2일'은 야생 버라이어티인 동시에 리얼 버라이어티이기도 했다. 제작진이 짜놓은 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주어진 길 대로만 움직인다면 그것은 단지 녹화 장소만 야외로 바꾼 스튜디오 예능에 지나지 않을 터. 리얼 버라이어티가 되기 위해 '1박 2일'에는 제작진과 시청자가 예상하지 못한 그 어떤 '반전'이 필요했고, 강호동은 바로 그 반전을 일으켜 방송에 리얼함을 더할 줄 아는 MC였다.
그는 제작진의 결정에 마냥 순종하지 않았다. 특히 먹을 것과 관련된 일일 때, 그는 제작진에게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제작진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온다. 그렇게 해서 멤버들과 합심해 새로운 게임, 색다른 미션을 만들어낸다.
미션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그는 '의외성'을 놓치지 않는다. 멤버들끼리 팀을 나눠 레이싱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목적지까지 전력으로 달리는 것만 생각하지 않는다. 늘 주변을 살피며 돌발 상황을 일으킬 만 한 변수가 없는지 찾는다. 그래서 다 졌던 게임을 막판에 역전하기도, 반대로 다 이겼던 게임을 내주기도 하며 방송에 리얼함을 더했다.
2010년 하반기, 김C와 MC몽이 빠지고 5인 체제가 되었음에도 '1박 2일'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는 강호동이 중심을 잡고 버틴 것이 크게 작용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멤버들을 다독이고 나영석 PD를 비롯한 제작진과 머리를 맞대며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양준혁, 이만기 등 멤버들이 빠진 자리를 대신해서 화면을 채우고 방송에 재미를 더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즉석섭외에 들어갔고, 그 대상에는 제작진과 일반시민 등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타고난 리더십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방송을 이끌던 강호동의 하차는 그래서 다른 멤버들의 그것과는 격이 달랐다. 종영까지 남은 기간은 약 5개월. 언론과 대중은 그가 빠진 '1박 2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5인 체제의 위기 탈출방법은 바로 개별 미션제
▲ 5인 체제 이후 '1박 2일' 멤버들은 개별 미션제를 통해 전국각지를 홀로 여행했다. ⓒ KBS
그러나 '1박 2일'은 마치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강호동이 하차한 바로 다음 주 시청률을 상승시키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강호동이 빠진 자리를 훌륭하게 메우며 새로운 가능성까지 엿봤다. 그것은 나영석 PD를 비롯한 제작진과 다섯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린 끝에 얻어진 값진 열매였다.
강호동이 하차하고 5인 체제가 된 첫 녹화에서, 제작진은 '전국 5일장 투어'를 계획해 멤버 다섯 명을 전국각지의 5일장 다섯 곳으로 보냈다. 짝이 맞는 6인 체제나, 그림이 되는 7인 체제와 달리 5인 체제는 팀 단위 대결을 펼치기에 애로사항이 많다. 거기에 방송분량 또한 이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제작진이 내놓은 해결책은 멤버 개개인에게 별도의 미션을 부여해 개인플레이를 하게 만든 것이었다.
여행의 목적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그 근방을 여행하는 종래의 패턴에서 벗어나, 베이스캠프는 따로 둔 채 멤버 다섯 명이 전국각지를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멤버들은 전국의 5일장을 돌아다니며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장을 소개하고, 지역의 향토 음식과 개성 있는 김치를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의 녹화에서 최소 다섯 곳 이상의 지역을 여행하니 이야기는 풍부해졌고, 방송분량이 만들어졌다.
'1박 2일' 제 6의 멤버는 바로 제작진
▲ '1박 2일' 비공식 여섯번째 멤버 나영석 PD. ⓒ KBS
강호동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제작진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방송 외적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며 방송을 내실 있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문화재청 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를 가이드로 하여 경주와 서울의 5대 궁을 돌아보는 역사 투어를 계획했고, 멤버들의 연예계 지인들과 함께 하는 친구 특집을 만들었다. 한 번의 녹화에 '한국인의 밥상'과 '5대 어선 체험'이라는 두 개의 특집을 꾸며 방송을 다채롭게 했다.
방송 내적으로는 과감하게 카메라 안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나영석 PD는 여섯 번째 멤버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카메라 앵글에 잡히며 방송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5인 체제가 된 이후 언론에서 '나영석 PD의 굴욕'이란 제목으로 숱한 기사들이 쏟아졌을 만큼 그는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영석 PD는 이승기의 보조가 되어 저녁밥을 지으며 구시렁대고, 멤버들의 예상외의 선전에 당황하며 그들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마다 않는 그를 멤버들은 더욱 카메라 안으로 끌어들였고, 과거 강호동이 담당했던 '무너지는 권위자' 캐릭터를 도맡아 하며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큰 재미를 줬다.
존재감 논란 벗고 예능인으로 성장한 엄태웅, 김종민
▲ 강호동 하차 이후 엄태웅은 방관자 모드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자세로 방송에 임했다. ⓒ KBS
무엇보다 달라진 건 멤버들이었다. 이승기는 오프닝멘트를 비롯한 방송의 전반적인 진행을 맡았고 이수근과 은지원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방송에 임했다. 특히 엄태웅과 김종민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였다.
방송 투입 이후 '강호동 앓이' 캐릭터 외엔 특별한 구석이 없었던 엄태웅은 강호동이 있을 때만 해도 철저한 방관자였다. 방송에서 나서서 말하고 웃기려는 게 아닌, 그저 강호동과 이수근 등이 하는 모양을 보며 해맑게 웃기만 해 끊임없이 존재감 논란에 휩싸였던 엄태웅은 그러나, 강호동 부재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개별 미션을 받아 혼자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니 방송에 쓰이려면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린 엄태웅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전문 예능인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입담이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멤버들과 같이 있을 때도 주저 없이 치고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어른 입맛' 캐릭터가 잡혔고, 웃길 줄 알게 됐다.
복귀 후 무려 1년 가까이 '자진 하차'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좀처럼 예능감을 찾지 못했던 김종민 또한 완전히 부활했다. 그는 자신의 어눌한 말주변을 특화시켜 웃음의 소재로 썼고, 놓칠세라 멤버들은 게임과 미션에서 이를 적극 활용했다.
우리의 주말을 책임져준 '1박 2일'... 고맙습니다
제작진과 멤버들이 힘을 합쳐 헤쳐나간 결과, '1박 2일'은 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5년의 여정.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었다. 설령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함께 쌓은 추억과 역사가 있기에 무의미하지 않다. 몇 번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고군분투하는 지난 5년의 세월 동안 멤버들과 제작진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1박 2일'이란 긴 여행은 제작진과 출연진을 성장시켰고, 그것을 시청하는 우리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해준 '1박 2일'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맙습니다,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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