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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 느티나무처럼

형님 집 앞 느티나무에 얽힌 전설

등록|2012.02.27 10:51 수정|2012.03.02 11:49
나의 형님은 집을 잘 짓는 목수다. 평생 목수로 살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자신이 지은 집은 특별하다며 꼼꼼하게 짓기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한 집 장사들의 집과는 다르다고 자부한다. 또한, 눈에 잘 안 띄는 구석까지 야무지고 실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도시에서 집을 많이 지었지만, 재미는 못 보았단다.

그러다가 나이 오십이 될 무렵, 도시생활을 다 털어버리고 시골에 들어와 자신이 손수 지은 집에 살면서 귀촌한 사람이나 이웃의 집을 부탁받고 일 년에 한두 채 정도 꾸준히 짓고 있다. 부지런한 형수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지만 200여 평의 텃밭에 가지가지 먹을 채소들을 가꾸어 자급하면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형님이 지금 칠십이니 시골로 온 지, 어느덧 20년을 넘기게 되었다.

형님집에 잘 어울리는 느티나무 경주시 산내면 감산리에 자리잡은 형님집 앞에 서있는 70년 생 느티나무는 집과 잘 어울린다. ⓒ 송인규



나는 명절이면 형님 집에 간다. 올해 설날도 우리 식구 넷이 내려갔다. 우리 식구가 명절 때 형님네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형님 내외가 편하게 대해 줘서만은 아닌 것 같다.

형님의 집은 산간 분지에 자리 잡은 터인지라 공기도 맑고, 하늘도 쾌청하며 새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집 앞과 동쪽에는 개울물이 흐르는데, 여름에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딱 좋다. 본채 뒤에 다섯 평짜리 황토방을 별채로 지었는데, 장작 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나는 형님 집에 가면 그 방에서 꼭 자는데, 동쪽 개울이 내려다보여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항상 개운한 느낌이다.

또 다른 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엇보다도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집 앞을 가리고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다.

둘이 한몸처럼 자라는 느티나무 1.2미터 정도 띄워 심겨진 나무인데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높이에서 첫 가지가 벌어졌다. ⓒ 송인규


형님 땅도 아니고 형님이 심은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이 나무의 권리를 산 것도 아닌데, 이 느티나무는 형님 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집 앞 개울 건너 아주 적당한 거리에서 싱싱한 물기를 뿜어 올리면서 해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이 느티나무가 주는 영향은 말로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것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라는 곳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히 존재하신 하나님을 부르며 살았다고 했는데(창세기 21장 33절) 아브라함이 느꼈을 딱 그런 느낌과 그의 온몸이 받았을 그런 영향을 받는다. '안식과 평화'라고 해야 하나?

70년 정도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약 1미터의 간격을 두고 뿌리박고 자라고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거목의 자태는 없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품도 커지고 기품이 완숙해졌다. 창조주가 준 작은 것 하나라도 간과하지 않는 경외심과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면 천지에 널려있는 축복을 보게 된다. 나는 이 느티나무를 보면서 마음 깊이 감탄한다.  

이 나무는 사실 두 그루다. 하지만 한 나무처럼 절묘한 어울림을 자랑한다. 왼쪽 나무가 약간 가늘고 부실한데도 불구하고 중심기둥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제1가지들의 높이가 똑같다. 이게 소 닭 쳐다보듯 그냥 지나치고 말 일인가!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 첫 가지가 같은 높이에서 벌어지고 나무의 맨 위 가지 끝도 같은 높이를 맞춰서 자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다.

하늘에 드리운 나무 자락이 한 나무인듯 분명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바람에 일렁이며 함께 춤추고 원대한 꿈을 하나로 그려낸다. ⓒ 송인규



살짝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일렁이는 맨 끝 잔가지들은 학교 운동장에 풀어 놓은 아이들처럼 재잘거리며 춤을 추고 푸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이리라. 해 질 녘 천수만의 가창오리 수천 마리가 군무(群舞)를 추는 광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하늘에 펼치는 거대한 그물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일사불란한 새들의 움직임은 분명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이 장관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지만, 조용히 펼쳐가는 대장관을 보라! 마치 젊은 연인들끼리 서로 팔을 내밀어 러브마크를 그리듯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완벽히 하나의 나무가 되어 넓은 자락을 푸른 하늘에 펼쳐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다.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겨울 가지 끝마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찬바람과 눈보라를 함께 맞으면서도 새봄에 틔울 꽃눈과 잎눈을 잉태하고 있다.

새봄을 맞기 위해 꽃눈과 잎눈을 잉태하고...찬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부지런히 생명활동을 하고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 ⓒ 송인규


여름의 느티나무는 큰 그늘을 만들어 시원한 휴식(休息)을 제공하고 있다. 형님은 그늘에 너덧 평의 평상을 깔고 방수가 되는 소파까지 갖다 놓았다. 목침 서너 개가 늘 준비되어 있어 세상에서 제일 편한 낮잠을 잘 수 있다. 이 나무가 제공하는 소슬한 바람과 그늘 덕분에 가장 무더운 여름날에도 형님 집은 더운 줄을 모른다.

한여름의 시원한 휴식처느티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그늘은 동네사람들의 사랑받는 휴식처다. 평상 위에서 열댓명이 낮잠을 잘 수 있다. ⓒ 송인규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느티나무는 살아있는 그림이다. 나무는 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많은 사연과 비밀을 가진 현자처럼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며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그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형님집 거실 창문을 통해서 본 느티나무창문은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을 그려낸다.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여 시시각각 표현한다. ⓒ 송인규


고목(古木)이라고 결코 부를 수 없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이 느티나무는 유복하게 자라난 청년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이 나무를 심은 노인은 이 나무에 떨어져.. 소싯적에 이 나무를 심은 노인은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자르다가 떨어져 죽었다. 잘라낸 가지의 흔적이 세 군데 보인다. ⓒ 송인규

이 나무를 심은 이는 형님 집이 들어서 있는 땅을 판 H노인이다. 그 노인이 소싯적에 자기 키만큼이나 되는 느티나무 묘목을 구해다가 심은 것인데, 쑥쑥 잘 자라서 논에 그림자가 크게 드리운 게 화근이 되었다.

H노인은 심술이 많은데다 인색하기로 온 동네에 평이 나 있었다. 열댓 평에서 벼농사를 얼마나 잘 지어서, 큰 수확을 보겠다고 그 노인은 나무를 잘라내기로 작정을 하고 온 동네에 떠들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다 일어나 말렸다고 한다.

"이미 온 동네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고 막걸리도 마시고 하는 건데 놔두세요. 동네 지킴이가 된 나무는 함부로 베는 법이 아닙니다."

그래도 H노인은 거추장스러운 가지라도 몇 개 잘라내겠다며 기어이 나무 위로 올라가 세 개의 가지를 자른 다음 자신이 자른 나뭇가지와 톱과 함께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심은 나무를 마땅치 않아 자기가 베다가 죽었다.' 참 묘한 인연이다. 형님은 나무에 심술을 부린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집터를 팔고 우리 집을 짓고 나니까 나무가 우리 집에 그냥 딱 맞춤 인거야. 나무는 자기가 심었는데, 덕 보는 놈 따로 있는 게 심사가 꼬였지" 

H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 이 느티나무는 마을에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젊고 싱싱한 전설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생태신문 '새마갈노'http://www.eswn.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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