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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재배하고 도박으로 돈을 버는 탐정

[리뷰] 아즈마 나오미 <바에 걸려온 전화>

등록|2012.02.27 11:58 수정|2012.02.27 11:58

<바에 걸려온 전화>겉표지 ⓒ 포레

아즈마 나오미의 1993년 작품 <바에 걸려온 전화>에는 마치 한량이나 건달 같은 해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탐정'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평소에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탐정'이라고 불러줄 수가 없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건달이라서 이름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 주인공은 평소에 도박장에서 트럼프 도박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산 속에 대마밭을 만들었다. 거기서 만들어내는 품질좋은 마리화나에 '마루야마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고 있다. 대마밭에서 일할 때면 정성들여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노동의 기쁨을 느낀다.

그렇게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고 도시락을 먹고 양껏 맥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주인공은 봄이 되면 '이유도 없이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충동을 억누르며 삼십년이나 살아왔다.

한량 같은 주인공에게 맡겨진 사건

주인공은 밤이되면 매일 단골술집으로 향한다.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진탕 술을 마시고 아침이면 숙취에 시달린다. 술집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자신을 '스스키노 심부름센터'라고 소개하면서 뭐든 시킬 일이 있으면 밤에 술집으로 전화해서 자신을 찾으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참으로 팔자좋은 인생이지만 도저히 '탐정'이라고는 봐줄 수 없지 않을까?

사건에 휘말리던 날에도 주인공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곤도 교코'라는 여자가 술집으로 전화를 해서 주인공을 찾는다. 그녀는 주인공의 통장으로 10만엔을 입금했다고 하며 이상한 부탁을 한다. 한 회사 사장을 찾아가서 사장에게 '작년 8월 21일 밤에 가리타는 어디에 있었느냐'라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 질문에 대한 사장의 반응을 알려주면 임무가 완수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묘한 경계심이 생겨나지만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한다. 간단한 질문 하나 던지고 10만엔을 벌 수 있다면 나름대로 수지 맞는 일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여자의 요구대로 그 회사를 찾아간다. 사장을 만나서 질문을 던지자마자 사장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곧 분노로 얼굴이 빨개진다. 이 회사는 뭔가 안좋은 사업에 손을 대서 돈벌이를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은 무사히 회사를 빠져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하지만, 자신을 미행한 회사직원에게 떠밀려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고 만다.

급하게 몸을 피해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은 완전히 겁에 질리고 만다. 자신이 던진 질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은 죽을 뻔했다. 그 질문에는 그만큼 대단한 비밀이 담겨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겁을 먹은 것도 잠시, 주인공은 이 사건을 추적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자의 의뢰와는 관계없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건달에서 탐정으로 변해가는 주인공

평범한 직장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대부분의 사립탐정들이 한량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고 직업의 특성상 사무실이 없어도 된다. <바에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집을 거주공간 겸 사무실로 이용할 수 있다. 매달 일정한 수입이 없지만 돈 많은 의뢰인을 만나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면 두둑한 보너스도 챙길 수 있다.

대신 이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지하철 선로에 떨어질 수도 있고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협박을 받을 수도 있다.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법. 탐정은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주인공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쩐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분'이 생길 정도다.

그래서 주인공은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는지 모른다. 사립탐정이라면 의뢰받은 일을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거기에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면 스트레스는 몇 배로 늘어난다. 술이 없으면 밤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바에 걸려온 전화>는 '탐정 스스키노 시리즈'의 한 편이다. 시리즈 속에서 주인공이 한량에서 진정한 탐정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바에 걸려온 전화> 아즈마 나오미 지음 / 현정수 옮김. 포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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