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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 먹던 국수, 세계화 메뉴로 어때요?

[음식칼럼 3] 국수

등록|2012.02.27 16:03 수정|2012.02.27 16:03
이제 곧 봄이 온다지만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여전히 추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선지 김이 풀풀 나는 음식이 여전히 맛이 있다. 특히 국수는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더더욱 반가운 음식인 터, 부글부글 물이 끓으면 솥에다 허연 국수 면을 집어넣고, 잘 삶긴 면발 위로 슬슬 끓여낸 육수를 붓고, 마지막으로 계란지단과 채 썰어 볶은 호박 그리고 깨소금을 듬뿍 올려 먹는 그 맛은 눈과 입이 즐거운 간편한 한 끼 식사임이 분명하다.

베트남 쌀국수, 이태리 스파게티 등등 이런저런 국수 음식들은 이제 세계화 산물이 되었다. 최근에 읽고 있는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가 쓴 <누들> 역시도 국수의 그 같은 점을 이야기한다.

접시 위의 정체성, 어린이 음식 컴포트푸드, 고기와 밀, 유럽의 국수문화, 아시아의 국수 화 등의 다양한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4천 년에 걸쳐 이어진 세계화 음식인 국수에 대해 쉽고도 편하게 이야기한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히 즐기는 식품이 되어 이제는 비행기 기내식으로도 맛볼 있는 국수는 수 천 년 전에 근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에 이르렀다고 추측되고 있다.

이러한 국수의 전파 경로는 음식이 가진 문화적 역량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며, 특히나 동아시아에서 국수는 이탈리아 파스타보다 더 일찍 더 깊이 문화 침투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쌀국수. ⓒ 조을영


한편으로 국수는 먹는 것 이상으로 다층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국수가 멋들어지게 표현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영화 속 시간인 홍콩의 1960년대는 2차 대전 후에 최고의 현대화가 도래한 시기로서, 국수는 그런 바쁜 도시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패스트푸드의 기능을 했다.

영화에서 장만옥은 퇴근 후 대충 때울 저녁거리인 국수를 사러 매일 시장통으로 내려간다. 멋들어진 치파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그대로 좁고 어둠침침한 계단을 내려가서 복잡한 시장통에서 사 온 국수를 간단히 먹고, 외로움과 더불어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가 즐기는 국수는 어느덧 양조위와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현대화와 서구의 물결이 급속도로 파고드는 그 시절의 바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뚫고, 국수는 하나의 방점을 찍는 이미지로 영화 속에 부드럽게 버무려진 셈이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음식 국수지만 그 여세가 만만치가 않다. 라면과 더불어 현대인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려서 세계화 음식으로 등극한 것이다. 더욱이 베트남 쌀국수인 포가 오늘날 이 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근래에 만들어진 퓨전식이란 점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인들이 오래전부터 국수를 먹긴 했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통해 소고기를 먹게 되면서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점을 잘 말해준다. 음식이란 것이 반드시 정통만을 고집해서 세계화의 산물이 되는 것만은 아님을 이를 통해 알게 된다.

우리에게도 국수는 매우 각별한 음식이다. 결혼식에 먹는 국수, 열차가 막 떠나려 할 때 화다닥 내려서 한 그릇 먹는 우동 등 이럴 때 국수가 딱 제격이다.

비빔칼국수. ⓒ 조을영


세계화를 위한 한식 메뉴에 국수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국수는 적당히 패스트푸드의 느낌도 들고 있고, 색색 가지 고명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음식스토리텔링으로 치자면 혼인날 먹는 국수,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 지 부산에서는 국수 면을 말리느라 줄줄이 걸어놓은 것 등으로 한국 현대사까지 조망할 수 있다.

더욱이 오방색으로 장식한 비빔밥은 너무 과하게 의미를 부여한 느낌이다. 또한, 일상과 거리가 먼 신선로는 한식 대표라 하기엔 다소 거리가 먼 것 같다. 적어도 마카로니 잔뜩 넣고 크림소스 버무린 떡볶이로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는 억지 주장보다는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진 국수의 세계화는 어떨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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