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소비자가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한다고?

이마트·홈플러스 매장 내 서명운동... 서로 책임 미루기 '가관'

등록|2012.02.28 15:21 수정|2012.02.28 15:27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광고물이마트에 설치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광고물 ⓒ 박혜영


"소비자는 대형마트 슈퍼마켓 SSM의 강제휴점을 반대합니다."

이마트 은평점 8층에 세워져 있는 X배너 광고물(대형마트에서 사용하는 세로 현수막 광고물)의 글귀입니다. 25일 저녁,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이마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 광고물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그래! 휴일에 마트가 쉰다면 불편할 소비자들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누가 서명을 주최하는지 나타나 있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라 대형마트의 강제휴점과 영업시간 제한을 의무로 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습니다. 이에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이 가입되어 있는 체인스토어협회는 2월 17일 헌법재판소에 유통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마트 소비자들이 직접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나타낸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비자의 여론에 따라 조례제정의 찬반여론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입니다.

2월 25일 이마트 은평점에 전화를 걸어 어떤 소비자 단체가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반대운동을 펼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마트 은평점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강제휴업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서명운동은 체인스토어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명이 이마트 은평점에서만 진행되는지 묻는 질문에는 "이마트 은평점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이마트 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명운동은 누가? 주최단체가 없는 유령 서명운동

이튿날인 2월 26일 이마트 시흥점을 방문했습니다. 이마트 시흥점에서도 '대형마트 SSM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층 후문 출입구 부근에 '소비자는 대형마트 슈퍼마켓 SSM의 강제 휴점을 반대합니다'라는 문구의 X배너 광고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노란색 바탕과 선명하게 대비 되는 빨간 색과 검은 색 견고딕체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밑에는 조금 작은 글씨로 ▲소비자 선택권 무시 ▲장바구니 물가상승 초래 ▲쇼핑불편 초래 ▲좋은 상품을 싸게 사는 기회 박탈 ▲임대업자 및 생계형 근로자 피해 ▲농어민 피해 ▲소비침체로 친서민 정책 역행. 총 7가지의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이유가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광고물로만 판단하기에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대형마트·SSM의 강제 휴점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서명용지에도 서명운동의 주최단체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가판대로 다가가 서명운동 관계자에게 서명운동의 주최단체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신을 입점업체 직원이라고 밝힌 관계자는 "입점업체 점주들이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서명을 담당하는 입점업체 대표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입점업체 직원은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고는 "이제 곧 서명운동 책임자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용지이마트에서 진행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용지 ⓒ 이동철


서명운동 담당자를 기다리는 20여분 동안 서명에 참여하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고객들이 몰리는 일요일 오후 4시경이었지만 몇몇 고객이 선전물만 보고 지나칠 뿐 서명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가판대 위에 놓인 서명용지는 10명분 용지 2장이 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20분 후 서명운동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입점업체 대표가 아니라 이마트 시흥점 관리직 직원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서명운동은 체인스토어 협회가 입점업체들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마트 시흥점에서는 입점업체의 요청에 따라 서명운동의 장소를 제공하고 게시물 설치를 허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고객들의 관심과 참여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직원은 "사실 고객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하루 20여 건 정도의 서명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2월 27일에 방문한 이마트 용산점에서도 지하 2층 푸드코트 입구에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마트 시흥점과는 달리 서명 가판대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마트 용산점 지원팀에 전화를 걸어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담당자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마트 용산점 역시 시흥점과 마찬가지로 관리직 직원이 직접 찾아와 서명운동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이 직원은 서명운동에 대해 "입점업체 점주 몇 명이 진행하는 것으로 이마트 용산점은 서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서 "장소와 게시물 일부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서명운동을 주최하는 입점업체 관계자를 만날 수 있겠냐는 요청에는 "담당자가 연락이 안돼 만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마트 시흥점과 용산점의 관리직 직원 모두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입점업체 대표와의 면담 요청에는 난색을 표하더군요. 이상했습니다.

홈플러스 월드컵점 또한 "소비자는 대형마트 강제휴점을 반대합니다"라는 문구의 선전물을 매장 내 주요 장소에 게시했습니다. 2월 27일 전화통화에서 홈플러스 본사 홍보팀 관계자는 매장 내 서명운동 진행여부를 묻는 질문에 "홈플러스는 서명운동을 진행하지 않는다"며 "부착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홍보물에 관해서는 체인스토어협회에 문의하라"고 답변했습니다.

홈플러스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광고물홈플러스에 부착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광고물 ⓒ 이동철


서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와 2월 27일에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10차례의 통화끝에 가까스로 체인스토어협회 언론 홍보담당자와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전화 통화에서 관계자는 "체인스토어협회가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회원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관여 여부에 대해 거듭해서 묻자 "서명운동을 집계하고 진행 동향을 모니터 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서명운동 홍보물에 쓰인 "소비자는 대형마트 강제 휴점에 반대합니다"라는 홍보문구에 관해서는 "(강제 휴점)을 반대를 하는 입장의 소비자들에게 서명을 받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는 서명운동 지원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마트와 홈플러스 본사 관계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본사 관계자는 한결같이 "본사에서는 지점에서 진행되는 서명운동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일이 없다"며 "서명운동에 대해서는 체인스토어 협회에 문의하라"며 더 이상의 설명을 피했습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직원들은 매장 내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입점업체 관계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습니다. 사진촬영도 금지할 정도로 시설물에 대한 관리 감독이 엄격한 매장 내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입점업체 관계자에 대해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홈플러스 월드컵점 관계자는 "일주일을 쉬었다가 출근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이마트 용산점 관계자는 "다른 지점에서 용산점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마트와 홈플러스등 대형마트와 체인스토어 협회의 주장을 종합하면 대형마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은 대형마트 입점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일 뿐 "이마트와 홈플러스 그리고 체인스토어 협회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 습니다.

통합진보당 "이마트와 홈플러스 소비자 여론 가장 서명운동 벌여"

그런데 이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가 밝힌 대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과 대형마트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설명을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2월 27일 오후 통합진보당은 대형마트 내부 관계자에게 입수한 자료(100만 소비자 서명운동 조직 건)를 근거로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조직적으로 소비자 여론을 가장한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관련 문건통합진보당이 공개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관련 문건 1 ⓒ 통합진보당 보도자료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 관련 문건통합진보당이 공개한 대형마트 강제 휴점 서명 관련 자료 2 ⓒ 통합진보당 보도자료


통합진보당은 보도 자료에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는 영업시간 등 제한조치를 무력화시키고자 소비자 서명운동을 가장한 여론 호도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서명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세부내용에서 소비자의 자발성은 찾아 볼 수 없고, 대기업의 조직적인 강제할당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맹비난 했습니다.

공개된 자료를 통해 통합진보당은 "점포당 서명인원 목표가 대형마트 2,600명, 슈퍼마켓 200명으로 할당되었고, 서명부스 및 선전물(포스터, X배너, 어깨띠, 고객 안내문 등)이 준비사항으로 규격화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객들 "소비자 이름 파는 것 보기 좋지 않다"

대형마트 입점업체들의 '대형마트 SSM강제 휴무 반대 서명운동'에 대한 대형마트 고객들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만난 강아무개(여·22)씨는 "선전물을 보고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서명을 진행하는 줄 알았다"며 "소비자 이름을 파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마트 시흥점에서 만난 최아무개(남·32)씨는 "중소상인과 대형마트가 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대형마트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서명운동에 나선 입점업체들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소비자를 내세우는 것은 너무하다"고 꼬집었다.

고객들에게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에 대한 의견을 듣다보니, "서명운동은 입점 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며 이마트는 절대 관련이 없다"고 펄쩍 뛰던 이마트 관계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대형마트에서는 오늘도 얼굴을 볼 수 없는 입점업체 관계자들이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버젓이 소비자를 앞세우고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동철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