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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회장님의 걱정, 참 부끄럽습니다

대형마트 규제에 엄살 떠는 회장님, 워렌 버핏 좀 닮아라

등록|2012.02.29 19:57 수정|2012.02.29 20:03

▲ 대형 유통업체와 지역 주민 사이에 1년 넘게 갈등이 빚어진 노원구 상계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가맹점 모델로 전환해 2011년 3월 31일 개점을 강행했다. ⓒ 연합뉴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도 저와 제 부자 친구들은 늘 거기서 제외해줬습니다. 저희들은 이미 '백만장자에 친화적'인 의회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기를 거부함으로써 바로 자신들의 장기적 이익을 해치고 있다."

이 말들은 지난해 미국사회를 떠들썩 하게 한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즉 '슈퍼부자'들의 말이다.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는 현실 앞에서 슈퍼부자인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사회로 되돌려줄 것을 선언했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다소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면이 없지 않았겠으나 적어도 그 몫의 상당 부분이 자기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가진 것을 내놓겠다고 하면서 가진 것을 움켜쥐는 품위 없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음도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왜 이리 천박해?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시나요?" - 2010년 신세계이마트 정용진 부회장
"골목이 아니라 대로변에 들어갔을 뿐이다." - 2012년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

이 말은 중소상인들을 함께 살려야 함을 강조하는 여론과 정부 규제에 대해 우리나라 대형마트 사장님들이 직접 던진 말이다. 앞의 말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싸게 사면 되지 왜 남을 돌아보느냐는 취지의 말이다. 즉 '남을 돌아보고 살면 이념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말로, 대형마트 사장님의 실용정신이 어느 수준인가 충분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리적인 소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대형마트 사장님은 둘 중 하나다. 실리 앞에서는 지독하리 만큼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신앙을 가졌거나, 제품을 조금 싸게 사는 정도의 실리를 위해 자영업자들의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무지함을 가졌거나.

물론 이 둘은 통한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인근 대형마트와 SSM으로 인해 집을 팔아 장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지독하게 이기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잔치상을 차리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조지 소로스의 말대로 자신들의 장기적 이익을 해치고 있음을 모르는 무지함도 안타깝다.

이렇게 잔인한 실리가 상식이라고 떠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아닌 황당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대해 골목이 아니라 대로변에만 들어갔단다. 이 사장님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유치원생 수준이라고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대형마트가 도로변에 주로 위치했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도로변에 위치했다고 해서 도로 근처에 사는 소비자들만 방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발언의 내용이 너무 저차원적이다.

▲ 망원시장 입구에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 김경훈



게다가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은 홈플러스의 본사인 테스코가 한국의 규제정책으로 인해 투자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내용을 전한다. 대기업의 과도한 시장 독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은 두렵지 않고 테스코는 두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 수년간 써먹은 '투자 위축'의 협박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다.

여전히 그 카드가 유효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 대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지 않아야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해야 고용이 활성화된다는 일명 '트리클 다운 이펙트', 낙수효과에 대해서는 보수 언론들조차 부정적이다. 고용없는 성장, 자신들만의 배당잔치로 끝나버리는 성장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끊임없이 위를 확장시켜 사회 제도적 모든 양보를 통해 얻게 된 성장의 열매를 포식해왔다.

대형마트만 해도 지역 내 자영업을 퇴출시켰으나 마트 내 일자리들은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파견 근무로 채워져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잠식해버린 상태다. 점차 재벌 2세, 3세들이 나서 새로운 사업 창출과 진출이 아닌 자영업 일거리 빼앗기로 독점을 강화하는 대기업의 영업 행태에 비판여론이 만만치 않다. 더 이상 투자 위축의 협박 카드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라는 압력은 통하지 않아야 한다.

대형마트의 마케팅, 뇌를 충동질한다

대형마트 사장님은 또 이러한 점도 강조한다. 자신들은 질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파는 데 반해 중소 상인들은 질이 나쁠 수도 있는 것을 비싸게 판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제품이 싸다는 것에도 여러 반박이 가능하다. 묶음 판매에 할인을 적용하지만 알고 보니 전체적으로 중량을 속이기도 하고 특별 판매대에 대박할인 문구를 써놓고서 계산에서는 슬그머니 제값을 받기도 했다. 대량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제품 하나하나 일일이 영수증 가격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저급한 상술이다.

반값 제품, 통큰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마케팅을 하지만 수천 가지 제품에서 필수 소비재가 아닌 몇 가지에만 국한된 할인으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에 기대기도 했다. 과연 대형마트를 통해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는 절약 소비가 가능한지에 대해 이미 회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저렴한 판매라는 구호는 소비자들의 뇌만 자극하는 마케팅 기재에 지나지 않는다.

할인 판매 전략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뇌를 충동질하는지 스탠포드 대학의 신경학자 브라이언 넛슨의 뇌스캔 장치를 이용한 실험에서 알수 있다. 그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고가의 제품을 보면 뇌섬엽이 활성화 된다고 한다. 뇌섬엽은 동정, 죄책감, 굴욕, 자부심 같은 사회적 감정을 관장하는 뇌 영역으로 이 부분이 활성화되면 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저가의 제품 앞에서는 충동을 자극하는 측좌핵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보스턴 대학의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인 엘렌 러펠 셸은 <완벽한 가격>이란 저서를 통해 "우리의 측좌핵은 할인제품에 직면하면 아마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환하게 켜질 것이다"라고 재치있게 서술한다. 뇌스캔 장치를 통해 우리가 결론 내릴 수 있는 사실은 할인된 제품 혹은 저가의 제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충동구매욕에 자극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뇌를 자극하는 장치 앞에 실시간 노출되어 있다. 당장 지갑 속만 해도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대심'을 창출하는 신용카드가 실시간 우리의 측좌핵을 자극하고 있다. 넛슨의 또 다른 실험에서는 사람들의 뇌를 흥분상태로 만드는 것은 특정한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때가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우리의 지갑 안에 있는 신용카드는 '할인을 받을 가능성'으로 우리의 뇌를 격정적인 상태로 만들고 있다.

홈플러스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광고물홈플러스에 부착된 대형마트 강제 휴점 반대 광고물 ⓒ 이동철



신용카드를 지갑 속에 지닌 채로 격정적인 상태에 휩싸여 대형마트에 가보자. 온갖 제품들이 기획코너를 통해 할인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시간제한과 같은 전략까지 붙어 있으면 우리는 거의 못 말리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지금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에 내몰린다. 필요와 선호를 생각할 틈도 없이 해당 제품은 커다란 카트에 담겨버린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대형마트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생각보다 많이' 돈을 쓰게 된다.

문제는 충동구매한 할인 제품들이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 썼는지 모르는데 통장은 바닥이 나는 일상이 반복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비자들 또한 저렴하게 소비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제품을 할인의 충동에 내몰려 소비함으로 인해 소비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제품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불편까지 감수하고 불필요한 소비로 인해 늘 카드 결제에까지 쫓기는 처지가 되어야 하니 과연 소비자들에게 대형마트가 실리적 소비 공간일까.

워렌 버핏의 친구들, 한국에는 없나

결국 대형마트 사장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소비자 이익, 소비자 실리도 따지고 보면 실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상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위협하고 소비자들에게는 소비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형마트는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월 2회 영업 규제 정도에 '헌법소원' 으름장을 놓고 있는 탐욕스런 모습이 민망하다. '대형 마트 규제가 나라를 망치게 할까 걱정된다'는 대목에서는 과대망상적 모습도 보인다.

워렌 버핏은 "내가 아는 많은 부자들은 미국을 사랑하고 이 국가가 자신에게 준 기회에 감사하는 괜찮은 사람들이고, 많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에 세금을 더 내는 걸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의 괜찮은 부자 친구들과 비교해 대한민국 대형마트 사장님들의 탐욕스런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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