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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목시대, 몽골, 남극에서 날아온 전시

아르코미술관 <노마딕 리포트 2012>展 개최 남극, 이란, 몽골, 중국 노마딕 성과물

등록|2012.03.02 14:24 수정|2012.03.02 18:08

▲ '노마딕 리포트 2012 展'이 열리는 아르코미술관 입구 ⓒ 김형순


21세기 신유목시대를 맞아 문화예술위원회가 이번에 고비사막(몽골), 남극(세종기지), 마슐레(이란), 윈난성(중국) 등 개인으로 접근하기 힘든 곳에 한국작가를 파견하여 정주형 레지던시가 아닌 유목형 레지던시를 통해 미술창작의 역량을 넓히고 거기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아르코미술관 1-2층에서 전시한다.

1부는 몽골, 남극(2월 22일~3월 14일)와 2부 중국, 이란(3월 23일~4월 15일)로 나눠 전시된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 영역에서 만든 결과물을 사진, 영상, 설치, 미디어, 에세이로 바꿨다. 자기 분야에서 20년 이상 작업해왔다지만 2~3주간의 짧은 시간에 낯선 현지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으나 그들만의 역량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세상에 대한 출구를 열었다.

1전시실 [몽골팀] 생(生)과 멸(滅)이 다 찰나일 뿐

▲ 몽골팀 I '모두나 메디테이션' 퍼포먼스 스틸컷. 사진 손승현 ⓒ 김형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몽골과 문화교류프로그램에 따른 양국교류각서를 교환했다. 2008년 9월부터 현지에 한국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시작되었고 올해가 벌써 4번째다. 이번 전시는 박수진 독립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았고 한국작가 5명 몽골작가 6명이 참가했다.

몽골팀의 주제는 '찰나 생(生) 찰나 멸(滅)' 다시 말해 생사가 다 순간일 뿐이라는 뜻이다. 생사는 한순간의 찰나일 뿐인데 우리가 거기에 무슨 미움과 반목과 갈등이 소용 있단 말인가. 매 순간 죽고 태어나는 우리에게 너와 나 구분이 필요하겠는가. 한국과 몽골의 작가들이 전생에 한 형제였다는 듯 몸을 네트워킹으로 하나가 되는 퍼포먼스를 선물한다.

이 작품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예술을 통해 한국과 몽골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여기엔 "내가 모두이고 모두가 나이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누가 누구에게 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면서 어떻게 살지를 묻는다.

개발과 전통의 기로, 몽골의 두 얼굴

▲ 손승현 I '길'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2011 ⓒ 김형순


박수진 기획자는 그렇다고 몽골을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꿈과 이상을 이야기 하되 현실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몽골은 지금 산업화, 서구화, 현대화의 열병을 앓고 있다고 전한다. 최근 광산개발 등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위 사진에 한 몽골의 젊은 여성을 보면 선글라스에 명품 백에 목걸이까지 정말 서구여성처럼 보인다. 지금 과도기 같다.

하지만 몽골할머니 얼굴에는 여전히 그들의 전통이 스며 있다. 그 나이에도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니 경이롭다. 몽골팀 사진을 맡은 손승현 작가는 할머니도 멀리 8킬로미터까지 볼 수 있다고 귀띔해준다. 신여성과 할머니 얼굴 사이에서 몽골의 두 얼굴을 본다.

몽골어엔 죽음이라는 단어가 없다

▲ 몽골팀 I '찰나생-찰나멸' 전시 광경. 배경사진: 손승현. 뒤로 미국풍 청소년이 보인다 ⓒ 김형순


박수진 기획자는 제1전시실 작품을 소개하면서 전해주는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다. 그는 "몽골어에는 죽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삶에 죽음이 깊게 파도 들어와 있어 굳이 생과 사를 구별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이 전시실 한 가운데 커다란 관들이 사방팔방으로 널려져 있는데 이번 주제에 와 닿아있다.

박 기획자는 또한 몽골의 초목과 사막을 걷다 보면 길이 없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그곳이 길이 된다. 그리고 발끝에 동물의 뼈들이 발에 걸린단다. 뼈와 모래가 뒤섞인 사막은 그러기에 삶과 죽음이 구분이 없다. 그들은 죽음도 삶의 옆구리에 끼고 논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몽골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 작품이 바로 이수영 작가의 퍼포먼스 '풍장(風葬)'이다. 뼈만 남은 동물을 위한 진혼가를 부른다. 홍현숙 작가는 광대한 모래의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그러면서 우리 존재를 묻는다. 또한 강소영릴릴 작가는 흑백애니메이션으로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사막의 하늘에서 영겁을 말한다.

몽골이름에 담긴 꿈과 생의 희망

▲ 리금홍 I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치니네르 힌베) 싱글채널 비디오 2012. "저는 간토야(강한 빛)이에요. 농사짓고 개인사업도 합니다"(자막) ⓒ 김형순


그리고 리금홍 작가는 인류학자나 된 듯 몽골사람들에게 '당신의 이름이 뭐냐'고 묻고 그 내용을 영상에 담았다. 그들의 이름은 인디언 방식으로 매우 상징적이다. 예컨대 '견고한 갑옷', '아름다운 행복,' '강철나라', '불멸의 꽃', '단단한 금강석' 등이다. 아버지 이름이 성이 되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면 그게 각자의 이름이 된다.

그러면서 앞으로 희망이 뭐냐고 묻는 답에서는 도시화, 개발화 과정이라 그런지 단연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커 보인다. 하여간 이들은 이름처럼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생의 의욕은 초원과 사막에서도 너끈히 이겨낸 저력에서 오는 것이리라. 또한 이들은 13세기 전 세계를 호령한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아닌가.

2전시실 [남극팀] 예술도 자연보호의 '출구(solida)' 될까

▲ 조예림 김용민 I '문학적 기록과 다이얼로그' 2012. 작품을 설명하는 김용민 기획자 ⓒ 김형순


이번에는 2층 전시실에서 남극팀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보자. 이 작업은 김용민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주제가 '솔리다(solida)', 스페인어로 '출구'라는 뜻이다. 이 주제를 정하게 된 배경은 남극까지 가는데 비행기를 자주 갈아타게 되고 거기서 수시로 보는 출구를 보면서 정했단다. 그는 예술도 자연보호의 한 '출구'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인가.

김용민 기획자는 남극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모에서 당선되면서 결과물을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문학적 텍스트로 남겼다. 5명의 참여 작가가 다 이미지작업을 하지만 기획자인 자신은 중편을 쓴다는 심정으로 잔잔한 얘기가 있는 차별화된 글쓰기작업을 했단다.

남극의 투명한 밤, 그 황홀한 푸른 빛

▲ 김승영 I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 가변크기 혼합미디어설치 2012. 이 작품은 관객호응이 매우 높다 ⓒ 김형순


2층 전시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끄는 것은 역시 김승영 작가의 미디어작품이다.

작가의 2번째 날 일기에 보면 남극의 밤을 "투명한 푸른 담요로 감싼 것 같고 진공상태의 푸른 유리병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라고 전시작 벽에 적어 놓았는데 거기를 가보지 못한 관객도 그곳의 신비한 밤을 푸른빛으로 실감나게 살려내 온통 푸른빛의 세상에 황홀한 경험을 실감나게 잘 구현했다.

빙하의 역사와 훼손돼가는 남극자연 표현

▲ 광모 I '얼음의 역사성'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프린트 2012. 남극 마리안 소만 빙벽의 무늬를 찍은 사진이다 ⓒ 김형순


▲ 박홍순 I '남극 빙하'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프린트 2012. 오존층 파괴로 남극의 빙하가 녹는 모습이 보인다 ⓒ 김형순


남극팀에 광모 사진작가와 박홍순 사진작가 둘은 아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사진을 다루지만 그 관점과 관심이 너무 다르다. 같은 곳에서 이렇게 다른 사진이 나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광모 작가는 담담한 추상화 같고 빙하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홍순 작가는 광활한 남국을 스펙터클하게 그려낸 구상화 같고 남극생태의 훼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진작품으로 이밖에도 김주연 작가가 있다. 이 작가는 불교사상인 <이숙(異熟, '끊임없이 다르게 변한다)>를 주제로 자연생태계에서 동식물이 생겨나고 성장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을 작품화한다. 이번에는 혹한에서도 남극의 동식물이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자라나는 그런 생명체의 반복되는 과정을 관찰하여 사진에 담았다.

남극의 변덕스런 얼굴 재조명하다

▲ 조광희 I '내 존재 티끌의 무대' 외 영상 및 TV모니터 설치작품 2012 ⓒ 김형순


끝으로 조광희 작가는 남극의 실재와 허구를 교차시키면서 그곳의 멋진 모습과 매혹적인 풍경을 영상과 설치로 선보인다. 마치 마지막 남은 가상의 노마드 장소인 것처럼 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남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직접 가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렇게 끝없는 예술의 길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유목적인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면서 시공간의 지평을 넓히는 미래지향적인 예술적 가치를 낳을 수 있다.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이런 전시는 더욱 소중하다. 이런 미적 탐험을 통해 보다 깊은 넓은 사유와 창작의 방식을 확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아르코미술관(종로구 동숭동 대학로100) 02)760-4605 무료 http://arkoartcenter.or.kr/

2부 중국 편과 이란 편은 3월23일부터 4월15일 이어진다.
[중국편] <표류기(漂流記)> 중국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기획: 임종은 참여작가: 김월식 / 리경 / 문형민 / 장지아 / 한계륜 / 쑨리(협력기획자) / 룰레이 / 쑨쉰 / 유지 / 탕마오홍 / 탕거
[이란편] <페르시아의 바람> 이란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기획: 고승현 참여작가: 류신정 / 유지숙 / 전원길 / 허강 / 이란 작가 1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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