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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서너 분은 목욕탕 왔다 별세해유"

목욕탕 사장이 들려주는 재밌는 목욕탕 이야기

등록|2012.03.03 15:05 수정|2012.03.05 18:17
경기도 안성에 42년째 대중목욕탕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그것도 부모님의 가업을 아들이 대를 이어서 하는 곳이다. 지난 2일, 안성 구 터미널 맞은편 중앙사우나(구, 중앙목욕탕)의 권혁만 사장(49세)을 만났다.

손님 85%가 어르신들

42년 전 권 사장이 7세 때, 부모님이 시작하신 가업 대중목욕탕. 그는 어렸을 적 목욕탕 집 아들로 자라났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공짜로 목욕시켜준 추억이 생각난다며 웃는 권사장. 목욕탕 운영으로 4남매를 대학 졸업은 물론 결혼까지 시킨 부모님이 자랑스럽단다.

요즘은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권 사장 등 3명이 가족 기업으로 운영한다. 새벽 4시 30분이면 문을 연다. 이유가 있다. 3시 정도에 일어나서 약수터로 운동하러 갔다 오는 단골손님 때문이다. 그 어르신들은 간혹 셔터를 직접 열고, 불도 켜고, 목욕을 알아서 하고 가신단다. 그분들 아니면 사실 5시에 목욕탕을 열어도 된다고. 수지타산 보다는 아버지의 단골이기에 차마 뿌리치지 못한단다.

목욕탕 카운터권혁만 사장이 한사코 촬영은 싫다고 해서 목욕탕 카운터를 찍었다. 지금은 권사장의 누님이 카운터를 보고 있다. 42년 가업이 면면이 이어져 오는 곳이다. ⓒ 송상호


여성과 남성의 목욕탕 이용비율은 7대3. 농촌 인구비율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할머니가 많은 셈이다. 이렇게 단골들 위주로 하다 보니 따로 홍보할 필요가 없단다. 목욕탕 오겠다고 전화로 위치 물어보는 사람은 월 2건 정도라니. 이 목욕탕을 없애지 못하는 것도 아버지 권오찬(84세)씨께서 "단골들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만두지 못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연중 3~4명, 목욕탕에 왔다가 사망

처음 권 사장은 정말 놀랐다. 목욕탕에서서 나왔다가 갑자기 쓰러진 어르신 때문이다. 갑작스런 온도차이로 인해 혈압이 상승해서 돌아가신다. 알고 보니 그런 일이 연중 3~4회는 있어왔던 것. 자신이 사장이 되고서야 그 실정을 알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유족들은 고맙다고 하셔요. 목욕 싹 하시고 돌아가셨다는 것과 쓰러지신 고인의 뒷일을 잘해줘서 감사하다고요. 우리가 조의금도 보내요. 오랜 단골이시니까. 장례 끝나고 나면 유족들이 목욕탕으로 찾아와 감사인사를 하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90대 노부부가 목욕하러 오셨다. 아래층에 할머니(95세), 위층에 할아버지(94세)가 목욕하셨다. 위층 할아버지께서 혈압으로 돌아가셨다. 응급차가 와서 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말했다.

"아, 그려. 그럼 나는 마자 씻고 갈텡게 기둘려."

그러고는 40분 더 씻고 자택으로 가셨단다. 역시 며칠 뒤 유족들이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왔단다.

어떤 때는 쓰러지신 어르신을 인공호흡 등 응급처치를 잘해서 살리기도 한다고. 119가 출동해 응급차에 실려 갔던 어르신이 살아서 다음에 목욕탕에 오신 일도 있었다. 한 번은 타이밍을 놓쳐 탕에서 돌아가신 어르신도 있다고. 대부분 탕 밖에서 돌아가시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역시 유족들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했단다.

이런 이유로 권 사장은 늘 어르신들에게 권유한다. 절대로 급하게 탕에 들어가지 마시라고, 서서히 들어가시라고 신신당부한다. 때밀이 직원에겐 연세 지긋한 어르신은 유심히 지켜보라고 교육하기도 한단다.

남녀 목욕탕 풍경, 달라도 이렇게 달라

남자 목욕탕에선 간혹 발가벗고 싸우시는 어르신도 있다고. 원수를 외나무다리, 아니 목욕탕서 만난 경우다. 말다툼 끝에 치고받고 싸우시면 주인 입장에서 참 난감하다고. 여성분들은 말다툼이 고작이란다.

여탕 손님들은 종종 수건을 집에 가져간다고. 남탕 손님은 제한이 없지만, 여탕 손님은 2장만 수건을 지급해도 그렇다. 여탕은 1년 1000장 정도 수건을 갖춰도 항상 모자란다. 남탕은 300장의 수건을 갖추면 간혹 넘친단다. 수건, 칫솔, 면도기 등을 두고 가는 남성이 많아서다. 여성이 가져간 수건으로 집에 가서 세차수건으로 사용하는 걸 직접 목격하기도 했단다.

남탕 3층, 여탕 1층여탕 들어간 분은 2시간이 기본, 남탕 들어간 분은 30분이 기본. 이것이 바로 남녀의 차이다. 다른 층수 만큼이나 말이다. ⓒ 송상호


남탕은 드라이기 사용이 공짜다. 반면 여탕은 유료다. 여탕 드라이기는 수시로 고장 난다. 너무 많이 사용해 과열로 타버린단다. 반면 남탕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체한다. 묙욕탕 용 대형화장지도 남탕은 1달 넘게 사용하는 반면, 여탕은 10일에 1회 정도 갈아야 한다. 약 3~4배 많이 쓰는 꼴이다.

여탕은 사우나 실이 항상 만원이라고.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다. 어떤 여성은 아예 드러누워 있다고. 다이어트 때문으로 추정된단다. 남탕은 사우나 실이 항상 널찍하다고. 여성의 목욕시간은 기본 2시간, 남성분들은 기본 30분. 그러고도 남성분이 "껍질 벗기고 나오시나?"고 하면, 여성분은 "한 것도 없어요.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고...". 남녀 몸의 구조와 사고 구조의 차이점에서 오는 해프닝이다.

이렇게 단골손님들 덕분에 웃는 중앙목욕탕. 단골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여기 문 닫으면 어떡하나"며 걱정하신다고. 그 옛날엔 안성의 길을 물어봐도 중앙목욕탕 중심으로 설명하면 알아듣던 시대가 있었다. 중앙목욕탕은 안성 어르신들의 추억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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