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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거울 본다고 혼내지 마세요

사랑이 필요한 시점

등록|2012.03.04 11:33 수정|2012.03.04 11:33
얼마 전 런던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오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직업병은 감출 수 없는지, 우리도 모르게 어느 새 화두가 아이들 문제로 흘러갔는데, 선생님께서 거울을 자주 보는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떠나기 전보다 도처에 거울이 많아진 것 같다는 관찰기를 들려주셨는데, 지하철만 봐도 전신 거울이 설치되는 등 어느 새 우리 사회에 거울이 많아진 것 같다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수시로 자신을 점검하다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자존감 저하의 주요 원인일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난 후, 거리를 걷다 보니 우리 사회가 정말 어느 곳에서나 쉽게 거울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데 새삼 놀라게 됐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곤혹을 치루는 문제 중 하나가 거울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거울 사랑은 못 말릴 정도여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앞머리를 정돈하는가 하면 돋보기 사용하듯 멀리 댔다가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면서 얼굴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냥 그 자체로 예쁘다는 데도 기어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거울 보기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숭고히 행해야 하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업 시간의 실랑이는 태반이 거울과 핸드폰. 남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건실에서 물 한잔 마시면, 꼭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내밀었다 하면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간혹 머리카락이 삐죽이기라도 하면 기어이 원하는 모양으로 정돈하는 게 시대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때라서 그렇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모가 중시되는 문화에 젖어든 아이들이라서 더욱 거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연구의 가설이 적확한 사실이라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기우까지 겹치면서.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에는 회복탄력성의 기원이 된 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에미 워너 교수는 하와이 북서쪽에 위치한 카우아이 섬 연구를 통해, 학대, 가난, 가정의 와해 등 나쁜 성장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 결과 사회 부적응이 나타난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위험군 연구 대상자의 3분의 1은 예상과 달리 성숙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했다.

원인을 쫓던 워너 교수는 이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으로 규정했다. 워너 교수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위기의 순간을 딛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뛰어난데, 어린 시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사랑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자기 조절능력, 대인관계 능력, 긍정성의 세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지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은 자존감으로, 그 바탕에는 결국 "사랑"이 놓여 있다는 게 핵심이다.

거울 보기가 습관이 된 아이들, 하루가 다르게 거울이 늘어나는 환경,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자살율 1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사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엄벌하겠다는 강력한 기조 속에서 개학 첫날 학교가 비교적 평온(?)하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단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이란 문구가  머릿속을 자꾸만 어지럽힌다.

수업 시간에 거울 본다고 혼내고, 폭력 전과(?)를 생활기록부에 철저히 기록하는 것 이전에,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길러내려는 사랑의 교육을 위해 노력한 우리들이었나 고민이 생긴 까닭. 문제다, 말세다, 힐난과 자조를 쉬이 내뱉으면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해법을 실천하지 못했던 학교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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