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런던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오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직업병은 감출 수 없는지, 우리도 모르게 어느 새 화두가 아이들 문제로 흘러갔는데, 선생님께서 거울을 자주 보는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떠나기 전보다 도처에 거울이 많아진 것 같다는 관찰기를 들려주셨는데, 지하철만 봐도 전신 거울이 설치되는 등 어느 새 우리 사회에 거울이 많아진 것 같다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수시로 자신을 점검하다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자존감 저하의 주요 원인일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난 후, 거리를 걷다 보니 우리 사회가 정말 어느 곳에서나 쉽게 거울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데 새삼 놀라게 됐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곤혹을 치루는 문제 중 하나가 거울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거울 사랑은 못 말릴 정도여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앞머리를 정돈하는가 하면 돋보기 사용하듯 멀리 댔다가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면서 얼굴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냥 그 자체로 예쁘다는 데도 기어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거울 보기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숭고히 행해야 하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업 시간의 실랑이는 태반이 거울과 핸드폰. 남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건실에서 물 한잔 마시면, 꼭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내밀었다 하면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간혹 머리카락이 삐죽이기라도 하면 기어이 원하는 모양으로 정돈하는 게 시대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때라서 그렇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모가 중시되는 문화에 젖어든 아이들이라서 더욱 거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연구의 가설이 적확한 사실이라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기우까지 겹치면서.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에는 회복탄력성의 기원이 된 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에미 워너 교수는 하와이 북서쪽에 위치한 카우아이 섬 연구를 통해, 학대, 가난, 가정의 와해 등 나쁜 성장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 결과 사회 부적응이 나타난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위험군 연구 대상자의 3분의 1은 예상과 달리 성숙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했다.
원인을 쫓던 워너 교수는 이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으로 규정했다. 워너 교수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위기의 순간을 딛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뛰어난데, 어린 시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사랑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자기 조절능력, 대인관계 능력, 긍정성의 세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지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은 자존감으로, 그 바탕에는 결국 "사랑"이 놓여 있다는 게 핵심이다.
거울 보기가 습관이 된 아이들, 하루가 다르게 거울이 늘어나는 환경,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자살율 1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사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엄벌하겠다는 강력한 기조 속에서 개학 첫날 학교가 비교적 평온(?)하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단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이란 문구가 머릿속을 자꾸만 어지럽힌다.
수업 시간에 거울 본다고 혼내고, 폭력 전과(?)를 생활기록부에 철저히 기록하는 것 이전에,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길러내려는 사랑의 교육을 위해 노력한 우리들이었나 고민이 생긴 까닭. 문제다, 말세다, 힐난과 자조를 쉬이 내뱉으면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해법을 실천하지 못했던 학교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수시로 자신을 점검하다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자존감 저하의 주요 원인일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난 후, 거리를 걷다 보니 우리 사회가 정말 어느 곳에서나 쉽게 거울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데 새삼 놀라게 됐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곤혹을 치루는 문제 중 하나가 거울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거울 사랑은 못 말릴 정도여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앞머리를 정돈하는가 하면 돋보기 사용하듯 멀리 댔다가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면서 얼굴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냥 그 자체로 예쁘다는 데도 기어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거울 보기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숭고히 행해야 하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업 시간의 실랑이는 태반이 거울과 핸드폰. 남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건실에서 물 한잔 마시면, 꼭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내밀었다 하면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간혹 머리카락이 삐죽이기라도 하면 기어이 원하는 모양으로 정돈하는 게 시대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때라서 그렇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모가 중시되는 문화에 젖어든 아이들이라서 더욱 거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연구의 가설이 적확한 사실이라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기우까지 겹치면서.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에는 회복탄력성의 기원이 된 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에미 워너 교수는 하와이 북서쪽에 위치한 카우아이 섬 연구를 통해, 학대, 가난, 가정의 와해 등 나쁜 성장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 결과 사회 부적응이 나타난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위험군 연구 대상자의 3분의 1은 예상과 달리 성숙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했다.
원인을 쫓던 워너 교수는 이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으로 규정했다. 워너 교수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위기의 순간을 딛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뛰어난데, 어린 시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사랑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자기 조절능력, 대인관계 능력, 긍정성의 세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지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은 자존감으로, 그 바탕에는 결국 "사랑"이 놓여 있다는 게 핵심이다.
거울 보기가 습관이 된 아이들, 하루가 다르게 거울이 늘어나는 환경,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자살율 1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사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엄벌하겠다는 강력한 기조 속에서 개학 첫날 학교가 비교적 평온(?)하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단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이란 문구가 머릿속을 자꾸만 어지럽힌다.
수업 시간에 거울 본다고 혼내고, 폭력 전과(?)를 생활기록부에 철저히 기록하는 것 이전에,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길러내려는 사랑의 교육을 위해 노력한 우리들이었나 고민이 생긴 까닭. 문제다, 말세다, 힐난과 자조를 쉬이 내뱉으면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해법을 실천하지 못했던 학교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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