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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가 '방송조회'를 없앤 까닭은?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29] 서울형혁신학교에서 없앤 것들①-월요 방송조회

등록|2012.03.04 17:42 수정|2012.03.05 08:53
저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이 글의 원래 제목은 '우리 학교가 애국조회를 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다 슬며시 '애국조회'를 '방송조회'로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애국조회 없앴다'는 제목을 본 순간 혹시라도 '어버이~'과 '베트남 참전~'과 '재향군인회~', '뉴라이트~', '나라사랑하는~'이름이 들어간 단체에서, 우리 학교와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격성 반대 댓글과 학교 교문 앞에 직접 찾아와서 진을 치고 '애국심도 안 가르치는 빨갱이 학교'라고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들이 많이 하고 있는 '애국조회'라고 부르는 '방송조회'를 하지 않습니다. 이 방송조회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우리가 초등생일 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열중셔! 차렷! 교장선생님께 경롓!'하는 구령에 맞춰서 운동장 조회를 했습니다. 조회가 끝난 뒤에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행진곡에 발맞춰서 씩씩하게 행진을 하면서 전교생이 줄을 서서 교실로 들어가곤 했습니다(지금도 그때 그 시절을 몹시 그리워하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교장선생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린이들을 군대식으로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모습이 일제잔재로 시대착오적이고 비교육적이라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운동장 조회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것이 실내 전체 조회인 '방송조회'입니다. 물론 교실에 화면이 큰 프로젝션 텔레비전이 보급된 것도 한 몫 합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하는 방송조회 장면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텔레비전으로 월요일마다 방송조회를 합니다. 과연 월요일마다 하는 방송조회가 아이들에게 교육적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이부영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 아무도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운동장 조회가 현재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실내 방송조회로 형식이 바뀐 것일 뿐 모양은 옛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심히 준비하지만, 듣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귀담아 들어도 별로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은 없고, 늘 같은 교훈적인 '교장선생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교사인 제가 들어봐도 들을 게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방송 조회 때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조용히 하지 않는 반을 혼내기도 해 봅니다. 교장선생님의 '교훈적인 말씀'을 어떻게 듣게 할까 고심한 나머지 공책에 받아쓰게 해서 검사도 해 보고, 방송 조회가 끝나고 들은 것을 발표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가 끝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아이들과 교사는 누누가 다 공감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방송조회 때문에, 월요일 1교시를 잘라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 방송기자재 담당인 교사반 아이들과 방송조회 사회를 보는 교무부장선생님반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부터 담임선생님 얼굴 못 봅니다.

우리 학교 방송실 모습 우리 학교는 방송조회를 하지 않기 때문에 방송실 사용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 설계할 때 방송실을 남향에 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방송실은 특별장치를 해서 교실이 모자라는 지금 일반교실로 전환할 수도 없어서, 안쪽에 쓰지 않는 큰 방송실은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이부영


애국심도 길러주지 못하는 '애국조회'

언제부터인지 '방송조회'를 '애국조회'라고 하기도 하는데, 왜 '애국조회'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잘 하고 '애국가'를 잘 부른다고 '애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애국'은 방송조회 때가 아닌 평소에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가 '애국조회'인 '방송조회'를 하지 않는 까닭은, 비효율적이고 비교육적이고 시간만 낭비되는 '방송조회' 대신에,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학교는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이 직접 만납니다. 우리 학교는 전체 아이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방송조회를 하는 대신에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을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시고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십니다. ⓒ 이부영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하는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은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이 만나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만나러 직접 교실로 찾아 가서 수업을 하십니다. 아이들이 직접 교장실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 화면이 아닌 교실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나면 더 좋아합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만날 때보다 거리감이 좁혀져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조회'는 이제 혁신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없애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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