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사퇴? 그건 유권자 의지 반하는 것"
[인터뷰] "사라예보 총성 울렸다"며 혁신교육 시작한 박원순 서울시장
▲ 박원순 서울시장. ⓒ 유성호
친환경 무상급식 '드잡이' 속에 지난 해 10월 27일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 박원순(56).
박 시장을 만난 때는 취임 100일 다음 날이었다. 지난 2월 4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시 청사 6층에 있는 시장 집무실에서다.
'무상급식 반대 투쟁'으로 산화(?)해 '열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오세훈 전 시장. 오 시장 바통을 이어받은 박 시장은 이날 '사라예보의 총성 한방이 터졌다'는 말을 두 차례에 걸쳐 했다. 한 번은 자신이 시장이 된 까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머지는 '희망 서울교육'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다.
"무상급식 반대는 한치 앞을 못 내다본 것이다. 그것이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이 선거가 균열의 진원지가 되어서 정치 혁명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건 사라예보의 총성 하나가 1차 세계대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저는 대한민국 교육을 바꿀 것이다. 우선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니 요즘 전국 대학들이 등록금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이것도 사라예보의 총성이 '탕' 터진 것이다."
세계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6월 28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터진 총성. 이 격변의 총탄이 한국 교육에도 '탕'하고 터졌다는 얘기다.
친환경 무상급식 중학교로 확대, 서울 학생인권조례 공포, 서울형 혁신학교 확대, 반값 등록금 실시,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복귀…. 서울교육은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지난 1월 20일 복귀한) 곽 교육감을 복귀 뒤 직접 만나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협력적 관계를 갖기로 했다"면서 "교육청과 시가 어떻게 잘 협력할 것인가 고민할 게 많다. 곽 교육감과 같이 고민할 것이 많을 것 같다"고 말해 곽 교육감과 공조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박 시장은 곽 교육감에 대한 일부 보수 단체의 사퇴 요구에 대해 "법적으로 사퇴할 이유가 없는데 왜 사퇴하느냐. 그것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 교육감은 무상급식 투표 이틀 뒤인 지난 해 8월 28일 본격 시작한 검찰의 공개수사로 구속 수감됐다가 올해 1월, 1심 재판 뒤 벌금형으로 석방된 바 있다.
곽노현의 구속에 울고 박원순의 당선으로 다시 웃기 시작한 서울의 교육혁신. 이를 바라보는 박 시장의 심경은 남달랐다.
이날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박 시장이 미리 준비한 답변 자료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심경을 토로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최홍연 서울시 학교지원과장은 "시장님이 교육 문제만 놓고 이렇게 단독 인터뷰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시장과 한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전문(200자 원고지 80매)은 4일 발행한 계간<우리교육>(www.uriedu.co.kr) 봄호에서 볼 수 있다.
"교육환경 격차 개선에 예산 집중 투입할 것"
- 지난 해 6월에 <마을이 학교다>(검둥소)란 교육 책을 냈다. 교육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제가 사실 그 책 내면서 많이 배웠죠. 교육운동을 하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을 만나면서 고생한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움이 앞섰습니다. 어디 가서 교육 전문가라고 사기 치고 다녀도 사람들 잘 모를 거예요. 왜냐하면 전문가들의 얘기를 제가 다 들었으니까."
- 그 책 서문에서 '교육이 희망'이라고 했는데.
"제가 인터뷰한 분들이 대안학교든 아니면 공립학교든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에 희망을 지핀 그런 분들이잖아요. 저는 결국 사람 하기 달렸다 그렇게 보거든요. 예컨대 남한산초등학교부터 시작된 공립초의 실험이 경기도의 혁신학교로 옮겨 붙었잖아요. 그 작은 학교의 출발로 시작한 파문이 전국으로 번져간 거잖아요. 제도화되고."
- 시장이 된 뒤 어떤 교육정책을 추진했나?
"사람에 투자하는 일이 교육이잖아요. 교육은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죠. 아이들이 눈칫밥 먹지 않게 초등학생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 시행했고, 올해부터는 중학교까지 점차 확대합니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도 추진했고요. 교육지원사업을 늘리기 위해 교육지원조례도 개정했습니다. 앞으로 교육환경 격차 개선사업에 예산을 집중 투입할 겁니다."
- 올해 교육정책에서 이것은 꼭 해봐야 하겠다고 구상한 것은 무엇인가?
"제가 뭘 한다기보다…. 오히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등 딱 좋은 분들 임명해놓으니까 잘 되고. 이 분들이 잘하면 다 제 공이 되잖아요. 저는 교육청과 잘 협력해서 교육청이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면 된다고 봐요. 교육복지협의체를 잘 만들어서 교육에 열정을 갖고 교육을 정말로 제대로 만들겠다는 결의가 있는 분들을 모시려고 하고 있고요."
"교육복지협의체, 3월에 발족하겠다"
- 교육복지협의체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협의체는 서울시 최초의 민관 거버넌스라 보시면 돼요. 교육청, 시의회, 자치구, 교사, 학부모, 학생, 전문가 등이 교육 비전을 공유하고 제안하는 협치기구를 운영하겠다는 겁니다. 현재 시민사회와 교육청, 그리고 서울시가 실무준비단을 만들어 지난 해 12월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이르면 올 3월에는 발족이 가능할 것 같아요."
- '협치'라고 한다면 곽노현 교육감과 협력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교육감 업무에 복귀한 뒤) 2∼3일 전에 곽 교육감도 한 번 뵜어요."
- 의미 있는 얘기가 오갔을 것 같다.
"구체적인 뭐…. 안부 미팅이었고요. 깊이 있는 얘기는 못 했고, 다음에 또 만나 얘기하자고 했어요. 혁신학교라든지 방과후학교나 돌봄 수업 같은 것도 있는데요. 교육청 밖과 안이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협력 관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아이는 한 아이고 서로 잘되는 게 문제이지 누구 관할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시가 어떻게 잘 협력할 것인가 고민할 게 많아요."
- 이전에 곽 교육감과 인연이 많았는데...
"그럼요. 곽 교육감님이야 저하고는 학교 선후배이고요. 인권 운동을 하면서 같이 많이 만났죠. 그 분은 법학하시고 저는 변호사였으니까. 인권변호사. 사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제가 집행위원장을 했어요. 곽 교육감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했고요."
- 곽 교육감이 복귀했으니, 서울교육혁신을 놓고 두 분이 공조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당연하고요. 서울시의회에도 교육의원들이 있어서 그분들이 전문성과 열정이 잇는 분들이니까. 그 분들도 좋은 역할을 하실 수 있으리라고 보고요. 곽 교육감은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곽 교육감과 자주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조중동? 무슨 일이든 험담하는 사람은 있더라"
- 그런데 지금 보수단체들이 시교육청 앞에서 곽 교육감 사퇴하라고 데모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제가 뭘…."
- 유죄니까?
"아니죠. 확정 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 거죠."
- 사퇴요구는 타당하지 않다는 얘긴가?
"법적으로 사퇴할 이유가 없는데 왜 사퇴합니까? 그것은 오히려 뽑은 유권자들의 의지에 반하는 거죠."
- 도의적으로라도 사퇴하라고 그러는데…
"하하. 괜히 얘기 잘못했다가 저한테 몰려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웃음) 글쎄요. 뭐. 아니 아까 말씀드렸듯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정 판결까지는 미치는 것이니까 아직까지는 무죄라고 추정하는 것이죠. 무죄라고 하는 것인데 그게 도덕적 이유가 생겨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 올해 혁신학교가 59개가 운영된다.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제가 듣기로는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일단 주변에 집값이 오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혁신학교 어쨌든 성공하고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죠.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란 것이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는 좋은 교육 여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거잖아요. 이런 변화가 큰 물결이 되기를 바래요."
- 그런데 혁신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질문을 하는 언론도 있지 않나. 조중동은 혁신학교가 전교조 학교라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인데요. 무슨 일이든 험담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있더라고요. 그게 참 견디기 쉽지는 않은데 지난 번 시장선거하면서 저도 굉장히 두들겨 맞았지요. 맷집이 생겼다고 할까.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 달라.
"제가 무슨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웃음) 저는 현 정부가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는 정책으로 일관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쫙 일렬로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입니까? 아이들은 학습 성적만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잖아요. 국영수 좀 못했다고 주눅 들어 평생 자기의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죠."
- 일제고사니 뭐니 해서 성적 경쟁이 강조가 되었다는 얘기인가?
"그건 뭐. 해석하세요.(웃음)"
- 무상급식 찬반 논란 속에서 시장이 되셨는데,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 평가를 한번 해 달라.
"거 참, 무상급식이 논쟁이 되는 이유를 우선 알 수가 없었고요. 무상급식 갖고 아직도 따지는 사람이 있나요? 새누리당도 바뀌지 않았나? 사람들은 눈앞에 와 있는 것도 못 보는 그런 현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것 말이에요."
- 사실 무상급식 때문에 시장이 되셨는데…
"무상급식과 복지에 대한 요구가 지난번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 것이죠. 무상급식을 넘어선 복지시장을 시민들이 요구한 것이죠. 결국 보면 이것이 균열의 진원지가 되어갖고 정치 혁명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상급식이라는 것은 지금에 돌이켜보면 별 것도 아닌 데요. 오세훈 시장님이 받기만 했으면 '그냥 잘 했구나' 그런 정도로 지나가버렸을 일이 쓸데없는 정치적 논쟁으로 변하면서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거죠. 이건 사라예보의 총성 하나가 그냥 1차 세계대전을 만들어 낸 거죠."
"오세훈 시장, 무상급식 그냥 받았더라면…"
- 요즘 서울 학생인권조례 논란을 보면서 생각이 많으셨을 텐데.
"기본적으로는 학생인권 당연히 있어야죠. 더군다나 이게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이런데서 이미 다 하고 있는 부분이잖아요. 정 문제가 되는 조항이 있다면 수정을 하거나 보완을 하면 되는 일 아니에요? 아이들이 당장 동성애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와 같이 학습 중심의 환경에서는. 다만 동성애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하거나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요?"
- 학교폭력이 인권조례 때문이다. 이런 지적도 있다.
"그럼 애들 두들겨 맞고 자라야 하나요?(웃음) 글쎄요. 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 인권조례가 있는 시절과 없던 시절. 그것을 비교해보면 알잖아요. 학교폭력 예방의 실마리는 바로 인권교육이라고 봐요. 다시 말해 학생인권조례에 그 실마리가 있다고 보는 거죠."
-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제가 마치 일국의 교과부장관처럼 질문을 하시네요.(웃음) 학교폭력 대책을 경찰에서 주도하는 것은 정말로 우스운 일이라고 보거든요. 물론 최악의 경우에 정말 그것이 범죄화가 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서의 대응이 있을 수도 있다고는 인정하지만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원인을 정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서울교육에 대한 구상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계획은 무엇인가?
"저는 대한민국 교육을 바꿀 거예요. 서울시가 말입니다. 어떻게 바꿀 것이냐? 우선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딱 낮추었잖아요. 그랬더니 그 중 절반의 학생들은 공짜로 공부를 합니다. 완전히. 왜냐하면 장학금들이 있거든요. 이렇게 하는데 182억 원 들었어요. 그랬더니 전국에서 대학들이 등록금 인하 압박을 받고 있잖아요. 이것도 사라예보의 총성이 '탕'하고 터진 거예요. 몇 년 안에 반값 등록금이 다 될 겁니다. 안되고는 못 베기죠."
"반값 시립대, 성적 중심에서 성품 중심 입시 요강으로"
- 서울시립대 신입생 전형 방식도 연구하고 있다던데.
"서울시립대 입시 요강을 싹 바꾸려고 협의 중입니다. 서울시장이 거기 운영위 이사장이거든요. 제 생각은 앞으로 총장님하고 의논해서 어떻게 하면 성적 중심이 아니라 성품 중심으로 뽑을 것인 지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지역사회에 공헌을 했는가' 이런 것을 중심에 놓고 뽑는 것으로 말이에요. 이렇게 하면 공부를 못해도 의리 있게 마을을 볼본 아이들, 다양한 성품의 학생들이 뽑힐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굉장히 바뀌지 않겠어요?"
- 언제쯤에 그런 입시 전형이 가능하다고 보나.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어요. 올 해는 이미 끝났고요. 내년에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우리교육>(www.uriedu.co.kr) 봄호에 쓴 전문 인터뷰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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