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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홀랑 태운 옆집... 난 아직 떨고 있다

[끊어진 필름②] 두 번의 화재, 잃어버린 아이들의 추억

등록|2012.03.12 16:07 수정|2012.03.13 11:05
2004년 4월 18일은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겨울옷과 봄옷을 정리하고 대청소를 하는데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힘들 것 같았다. 당시 13살, 10살이었던 아이들을 아빠 가게로 보낸 후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십 분쯤 지났나? '딱!' 고막을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따라 뛰어가 창문 밖을 내다보니 옆집에 불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제발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어 불이 우리 집까지 번지지 않길 간절히 바랐음에도 불과 몇 분 만에 불은 우리 집으로 옮겨붙었고, 우리집은 전소하고 말았다. 불은, 누군가의 부주의는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들을 앗아가고 말았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속절없이 뺏기고 만 것이다. 우리의 잘못이 있다면 부주의한 이웃의 이웃이었다는 것 뿐이었다.

어느날, 우리 집이 불에 타버렸다

▲ 화재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 (자료사진) ⓒ 의왕소방서



화재 때문에 가장 힘든 것은, 무엇보다 눈에 띄도록 달라진 것은 주머니 사정이었다. 가뜩이나 경기가 힘들어 가게도 예전만 못한 상황. 그럼에도 수세미나 대야와 같은 작은 생필품부터 옷, 가전제품 등 제법 큰돈을 줘야만 마련할 수 있는 것까지 새로 사야 했다. 계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었다.

게다가 화재 이후 두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면서 교복값과 대학등록금 등 큰돈이 들어갈 일이 많았다. 결국 우린 화재 이전보다 많이 가난해졌다. 뉴타운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사하는 등의 곡절까지 겪은 터라 우리 부부는 밤잠을 제대로 못 자며 투잡까지 뛰었다. 하지만 돈은 벌어도 늘 모자랐다. 그야말로 '돈! 돈! 돈!'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래도 슬프거나 아프지 않다. 지지난해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해야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 열심히 살아주는 남편이 있다. 또 눈에 띄도록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관계도 좋고 엄마에게 보란 듯 제 앞길 걱정도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작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돈'과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되돌려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이런 불행은 없을 것이다. 의연하자'고 다짐하지만, 소방차가 보이거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고 마는 불안이다.

▲ 화재가 난 보름 후 잿더미 속에서 건진 몇 장 안되는 사진 중 두 장. 불길의 흔적을 지운다고 오릴 수 있는 데까지 오렸지만.... ⓒ 김현자


가난은 참아도, 불타버린 추억은 두고두고 아쉬워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왔고 소방차가 떠난 후 경찰이 현장을 찾아와 조사라는 것을 하고 떠났다. "화재 감식반이 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무엇 하나 절대 건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그러나 며칠 후 찾아온 경찰은 화재원인을 찾아내 이웃에게 손해배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짓밟았다. 단 몇 분 둘러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원인불명' 그리고 이젠 집기를 건드려도 된다는 것.

그해 봄 유독 많은 비가 내렸다. 이틀이 멀다고 비가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손해배상이고 뭐고 까만 잿더미를 파헤쳐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우리 가족의 귀중한 것들을 하나라도 더, 빨리 건져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지난날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척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화재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진 아이들. 여기에 더해 어린 시절을 담은 소중한 기록마저 모두 불에 타버린 것이다.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겐 2004년 4월 18일 이전의 기록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끊겨 토막 난 필름처럼 부분 부분만 어쩌다 겨우 있을 뿐이다.

사실 화재 때문에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것들이 담긴 사진이나 이런저런 소중한 기록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돈을 아껴 사거나 소중한 인연들로부터 선물 받아 가지고 있던 천여 권 정도의 책, 청소년기부터 쓰기 시작한 이십 권이 넘는 일기장,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인 2000년 이전 늦은 밤 쓴 원고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잃지 말아야 했을,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가치가 스며있는 것들이다.

이미 9년째로 접어드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화재 후유증 탓에 발작을 일으키곤 한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이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가 밸브 잠근 것을 확인하고자 약속까지 어기고 집으로 급히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볼일을 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조급증 환자처럼 채근하며 집으로 가 밸브가 잠겼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많다. 차를 놓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돌아와 멀쩡하게 잠긴 밸브를 보고 나왔음에도, 다시 불안해져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통에 하던 일이 어긋나 버린 적도 있다.

봄만 되면 찾아오는 불안...벗어나고 싶다

다시 봄이란다. 지난겨울에도 불안은 계속되었다. 1991년 신혼시절 있었던 화재에 이어 9년 전 화재가 모두 봄에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봄이면 불안해진다.

얻은 것도 많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화재 때문에 점점 황폐해져 가는 나를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물건에 집착하던 예전과 달리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 마는 사물들은 쌓아두기보다는 좀 더 충분히 느끼고 마음에 스며들게 하자는 것도 화재 덕분이라면 덕이다.

그래도 누군가 소원을 말하라면 '2004년 4월 18일 오후 1시 30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질없는 소원이란 것을 잘 안다.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한 번씩 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꿈을 꾸는 이유는 그날의 화재로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재의 후유증에서 이젠 제발 벗어나고 싶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후유증은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툭툭 튀어나와 나와 내 가족을 아프게 한다. 올봄도 두렵다. 견뎌내야만 하는 불안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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