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을...
청백리 관리 박수량·송흠 선생에서 푸른 숲 조성한 임종국 선생까지
▲ 청백리의 상징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백비. 그의 청빈한 삶을 그려 비석에 이름도 업적도 남기지 않았다. 전라남도 장성에 있다. ⓒ 이돈삼
공해다. 문자에다 전화, 이메일까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날아든다. 내가 투표권을 행사할 선거구의 예비후보자한테서만 오는 것도 아니다. 집과 사무실의 소재지는 물론 고향, 학교, 친구, 선후배 등 온갖 연고를 통해 날아든다.
지지를 호소하는 문구도 가지가지다. '깨끗한 사람', '청렴한 심부름꾼'에서부터 '큰 봉사 할 사람', '초지일관할 후보', '지역발전 적임자', '정치판 뒤바꿀 거목' 등. 선거 때면 으레 등장하는 달콤한 말들이다. 하지만 당선된 뒤엔….
국민들이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다. 모두가 처음의 마음가짐을 저버린 탓이다. 옥석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 국민의 책임도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 했다. 업적도 스스로 떠벌린다고 남겨지는 게 아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주는 게 진정한 업적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한테 인정받다보면 자연스레 회자되고 후세에도 길이 남게 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 박수량 선생의 백비. 비문도 없이 비석을 그대로 세워 놓았다. 어설픈 글로 쓴 비문이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가 되지 않도록. ⓒ 이돈삼
▲ 38년 동안 고위 공직자로 살면서도 청렴하게 살았던 박수량 선생의 백비와 묘소 전경. 박수량 선생은 지금 '청백리'의 상징이 됐다. ⓒ 이돈삼
어설픈 글로 비문에 새기느니... '백비' 남긴 청백리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이 그 본보기다. 모두 오랜 세월을 공직자이면서 정치인으로 살았다. 아곡 선생은 38년, 지지당 선생은 51년 동안 고위 관직을 지냈다. 그런데도 청빈한 삶을 살았다. 뇌물을 받지 않았다. 접대도 안 받았다. 부정한 뒷거래도 없었다.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지금은 후세들에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영원히 살아 있다.
박수량(1491∼1554) 선생은 조선 성종 22년 전남 장성 황룡에서 태어났다. 24세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금의 장관급인 관직을 지내면서도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았다. 사사로이 재물을 취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청빈 그 자체였다. 이에 탄복한 명종이 99칸 청백당(淸白堂)을 하사했다.
▲ 박수량 선생의 묘소. 청빈한 삶을 산 그의 생애처럼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선생은 세상을 뜨면서도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다. 남긴 유품으로 임금이 하사한 술잔과 갓끈이 전부였다고 전해진다. 어찌나 형편이 어려운지 장례 치를 비용도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이 장례비용과 함께 비석으로 쓸 만한 돌 하나를 하사했다. 그러고선 "빗돌에다 새삼 그의 청백한 삶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면서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했다. 어설픈 글로 비문(碑文)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累)가 되지 않도록.
이 비석이 지금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백비(白碑)다. 고인의 이름과 직위, 업적 등도 새기지 않은 채 달랑 비석만 있다. 직사각형의 대리석 위에 호패 형태의 비신을 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대충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잘 다듬어 놓았다.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아서 더 귀하게 다가오는 비석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길이 남아 있다. 청백리의 상직적인 인물이 됐다. 벼슬과 공적은 물론 이름도 새기지 않은 백비는 청백리를 상징하는 유물이 됐다. 현대를 사는 공직자와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자들이 한번쯤 가봐야 할 곳이다.
▲ 지지당 송흠 선생의 묘소. 송흠 선생은 무려 51년 동안이나 고위 관직을 지냈지만 처자가 굶주림을 면할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 ⓒ 이돈삼
▲ 지지당 송흠 선생이 여생을 보낸 관수정. 맑은 물을 보며 나쁜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이돈삼
항상 근본 깨닫고 정직하게... 관수정
송흠(1459∼1547) 선생도 청백과 효를 다한 선비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선 세조 5년 장성 삼계에서 태어났다. 34세에 문과 급제 후 나주목사, 승정원 승지, 담양부사, 전라도관찰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무려 51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도 처자가 굶주림을 면할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
그는 늘 백성들을 내 처자처럼 사랑했다. 모든 일을 보는데도 정직하고 공평했다.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오로지 청백의 길을 걸었다. 당시 지방관이 다른 고을로 부임할 때 말 일곱 마리를 받는 게 관례. 하지만 그는 자신과 어머니, 부인이 타고 갈 말 세 마리만 받고 나머지는 사양했다.
이를 두고 백성들이 '삼마(三馬)태수'라 부르며 높이 받들었다. 가는 곳마다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성이 있다며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임금의 칭찬도 잦았다. 중종이 왕으로 있는 38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의 청백리 포상을 받았다.
선생은 부모에 대한 효도 극진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벼슬을 그만두고 3년상을 지냈다. 99세 된 어머니가 노환을 앓게 되자 고령(77세)에도 불구, 관직을 그만두고 어머니 옆에서 3년 동안 병간호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호는 지지당(知止堂). '멈춤을 안다'는 의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생은 1543년 판중추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맑은 물을 보며 나쁜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관수정(觀水亭)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결코 문란하지 않으며, 절대 남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항상 근본을 깨닫고 정직하게 살 것을 당부한 그의 생활지침이었다.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공직자와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자들이 본받아야 할 삶이다.
▲ 임종국 선생이 조성한 축령산 휴양림의 편백나무 숲. 최근 치유의 숲으로 각광받으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 축령산 휴양림 입구에 세워진 금연 안내판. 99세 이상 흡연지역이란 글귀가 건강한 웃음을 자아낸다. ⓒ 이돈삼
수백 년 내다보고 심은 나무들... 축령산
청백리뿐 아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푸른 숲을 가꾼 조림왕도 있다. 일찍이 나무심기와 숲 조성의 가치를 안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30여 년 동안 축령산 황무지 240㏊에 편백나무, 삼나무 등 250여만 그루를 심었다. 당시는 멀쩡한 나무까지도 베어 땔감으로 쓰던 때였다.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웠던 시절인지라 임업에 대한 투자는 웃음거리가 됐다.
하지만 선생은 개의치 않았다. 날마다 나무를 돌보고 숲을 가꾸는 데만 신경을 썼다. 가뭄이 들 땐 가족 모두가 매달려 물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심지어 숲을 가꾸고 길을 내면서 재산을 다 날린 것도 부족해 빚까지 안게 됐다. 결국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임야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수백 년 앞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은 선생의 의지와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다. 숲을 조성하는데 평생을 다 바친 선생은 지금 이 편백나무 숲의 한가운데 느티나무 밑에 잠들어 있다.
지금 이 숲은 남도의 보물이 됐다. 수십 미터씩 뻗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잎갈나무, 잣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 들어서면 드넓은 연녹색에 눈이 시원해진다.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공기는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호흡도 편안해진다. 마음 속 갈증까지도 후련하게 풀어주는 보약 같은 숲이다.
풍부한 피톤치드로 인해 '치유의 숲'으로 각광받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을 때, 무엇엔가 도전정신을 부여받고 싶을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숲이다. 이 나라 정치인과 공직자는 물론 온 국민이 반드시 걸어봐야 할 숲이다.
▲ 청렴체험 프로그램의 숙박장소로 쓰이고 있는 청백당 한옥. 최근 전국에서 많은 공직자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남도 빛내는 인물과 유산...청렴체험
이렇게 훌륭한 인물과 고귀한 유산이 모두 남도땅 장성에 있다. 장성, 나아가 남도를 더 빛나게 하는 인물이며 유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의미를 아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서 말의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장성군에서 이러한 유산을 묶어 청렴문화체험 여행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부터다.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생과 지자체 공무원에서 민간기업 임직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청렴을 배우고 이를 다짐하기 위해서다.
장성군이 내놓은 청렴문화 체험프로그램은 1박 2일, 2박 3일 일정의 청렴특강과 현장체험으로 이뤄진다. 특강은 '박수량과 송흠의 생애와 공직관'을 주제로 박래호 선비학당 학장이 한다. 현장체험은 박수량 선생의 백비와 송흠 선생이 지은 관수정, 임종국 선생이 가꾼 축령산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하룻밤 묵을 곳은 최근 복원된 한옥 청백당이나 필암서원 집성관이다. 갖가지 나물로 차려내는 청렴밥상과 시골밥상도 입맛을 돋운다. 전국의 공직자들이 꼭 한번은 참여해야 할 프로그램이다. 따로 시간을 내 가족과 함께 찾아봐도 좋을 곳이다. 국회의원 입후보 예정자나 정치지망생들도 반드시 다녀가야 할 곳이다.
▲ 청렴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하룻밤 묵는 청백당 한옥. 장성 홍길동테마파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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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량 백비 :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상무대방면)황룡-필암서원-홍길동테마파크-백비
· 송흠 관수정 :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상무대방면)-황룡-삼계면소재지-관수정
· 축령산휴양림 :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상무대방면)-황룡-필암서원-축령산휴양림
* 이돈삼 기자는 전남도청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