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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대란' 피해서 다행? 난리는 이미 시작됐다

엄마가 키우지 말고 무조건 시설에 맡기라는 정부

등록|2012.03.06 18:10 수정|2012.03.06 18:10

▲ 어린이집 휴원관련 뉴스 검색 ⓒ 다음뉴스검색


지난주 전국 민간 어린이집이 아이들을 받지 않겠다고 휴원을 선언했습니다. 언론들은 직장을 가진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지 못하여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극적인 휴원 철회로 이른바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전국의 민간어린이집이 아이들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던 이른바 보육대란의 원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2월 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는 보육료 인상, 보육교사 처우 개선, 특기비 규제 철폐 등을 내걸고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집단 휴원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27일, 28일 이틀간 부분 휴원을 하고 29일부터는 전면 휴원을 예고하였지만,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 폐원 조치 등 강경조치를 선언한 정부와 극적인 타결을 이루었습니다.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총연합회 측은, 정부와 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회, 지자체,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총연합회의 요구 사항을 논의하고 상반기 중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키우지 말고 무조건 보육시설에 맡겨라?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보완책 마련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진짜 보육대란은 보육료 인상, 보육교사 처우 개선, 특기비 규제 철폐를 내건 민간 어린이집의 파업 선언이 아니라, 올해 3월부터 최대 13만 명 이상의 영유아가 한꺼번에 어린이집에 몰려가게 된 상황입니다.

사실 민간 어린이집이 정부를 상대로 문을 닫겠다고 협박하며 보육료 인상과 교사처우 개선, 특기비 규제 철폐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지난 연말부터 몇 달 사이에 13만 명 이상의 추가 보육수요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아이들이 모자라 모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휴원 사태가 일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 어린이집총연합회 홈페이지 ⓒ 어린이집총연합회 홈페이지


그렇다면 작년 연말까지만 하여도 전국의 많은 민간 어린이집들이 원아모집을 걱정하였는데, 갑자기 13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보육시설로 몰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정부와 정치권의 졸속 무상보육정책 때문입니다.

정부는 2013년 3월부터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만 5세 무상보육을 시작하고,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무상보육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연말 국회에서 느닷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추가로 실시하도록 결정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만 3~4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전 연령 무상보육을 실시하라고 주장하면서 집단적으로 반발하였고, 여론에 밀린 정부는 예산확보 계획이나 시설 확대 계획도 없이 불과 며칠 만에 내년부터 만 3~4세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선언해버렸습니다.

퇴출 직전 민간보육시설 다 살려 준 졸속 정책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은 만 5세 미만 모든 아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을 한꺼번에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보육시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무상보육혜택을 받으려면 아이를 반드시 보육시설에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나 할머니가 돌보는 아이들도 무상보육 혜택을 받기 위하여 한꺼번에 보육시설로 몰려가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졸속으로 선심성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는 바람에 보육시설도 마련해놓지 않고 아이들을 한꺼번에 보육시설로 몰아넣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보육시설에 맡기는 아이들만 지원하는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 정책이 나오기까지 민간어린이집 중에는 존폐 위기에 처한 곳들도 많았습니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보육시설 정원에 비해 아이들 숫자가 적어서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무상보육 정책을 추진하면서 보육시설에 맡기는 아이들만 지원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추가로 13만여 명의 새로운 보육수요가 생긴 것입니다. 결국 학계와 전문가들, 학부모들이 수준 미달이라고 지목하였던 민간보육시설도 모두 퇴출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이 능사는 아니다

▲ 2월 7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주제로 온라인 청책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 서울시 언론과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 여성단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한결같이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만이 민간어린이집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무상보육 혜택을 받으려면 반드시 보육시설에 맡기도록 하였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엄마가 직접 돌보고 키우는 아이들, 할머니나 친척이 돌보는 아이들도 무상보육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는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엄마나 할머니 등 가족들이 잘 돌보고 있는 아이들을 억지로 어린이집에 맡기도록 할 것이 아니라, 보육시설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똑같이 무상보육 예산을 지원해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야 한다는 것도 옳은 주장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전업주부인 엄마들이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보육시설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차별 없이 무상보육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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