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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가 록펠러, 그는 이렇게 돈을 벌었다

[서평] <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등록|2012.03.06 16:20 수정|2012.03.06 17:49

▲ 유병률 '죽음의 계곡' ⓒ 알투스

얼마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던 한 대학 선배가 요즘 노량진으로 출퇴근한단다. 그 선배의 목표는 공무원 7급. 회사에서 쫓겨난 뒤 그의 꿈은 안정된 직장이 되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취업 준비생들이나 직장인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사회적 트렌드는 이미 오래됐다. 피도 눈물도 없는 신자유주의 시대. 짤릴 위험이 없는 직장은 곧 '축복'이다. 승자 독식 구조의 생존법칙인 셈이다.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원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는 그 축복을 쟁취하려는 '신자'들로 차고 넘친다. 그들은 수험서를 경전삼아 기도하며 구원의 날을 기다리지만, 안타깝게도 구원받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취업 준비생'이 보통 명사화되고 '스펙쌓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21세기 대한민국. 숨막히는 현실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딱 두 가지다.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죽음의 계곡>(유병률 지음, 알투스 펴냄)은 자본주의 경제사, 특히 미국의 경제사를 되짚으며 그 해답을 보여준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탄생한 시대를 '낯뜨거운 시대'였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300달러를 내고 병역을 면제받은 J.P.모건은 군대가 버린 망가진 소총더미를 1만 7500달러에 사서 11만 달러를 받고 정부에 되팔아 6배가 넘는 이윤을 남겼다.

또 철도왕이자 선박왕으로 불리는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는 물이 새는 배를 정부에 팔아, 철도업자 짐 피스크는 남부의 목화를 북부로 밀수해 떼돈을 벌었다.

역사상 최고의 부자이면서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록펠러도 경쟁사업장을 모조리 사들이는 방법으로 정유 시장을 독점해 돈을 긁어 모았다. 철강왕 카네기는 노동자 탄압에 공을 들였다.

이렇게 소수의 기업주들이 게걸스럽게 자본을 축적하고 있을 때 다수 노동자들은 고통스러운 노동에 시달렸다.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회초리를 견뎌야 했다.

"통조림공장에서 고기를 써는 아이들입니다. 앞의 일곱 살짜리 비욘 해밀턴도, 그의 형인 뒤쪽 열한 살 조지도, 사진 왼쪽에 칼을 들고 선 랠프도 모두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나가고 없습니다. 고기를 썰다 자기 손가락까지 썰어야 했던 이 아이들은 아침 7시부터 한밤중까지 하루종일 일을 해서 75센트를 벌었습니다." - <죽음의 계곡> 중에서

저자가 '야만'이라고 정의한 19세기 자본주의 탄생기는 20세기 초 '포드주의'와 '뉴딜 정책'을 거쳐 '타협'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기업주와 노동자이 윈-윈에 나선 시대다. 기업은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했고 노동자들은 평생 직장을 믿었다. 안락하고 예측 가능성 삶이 펼쳐진 것이다. 마치 울타리 안 양계장의 암탉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울타리'를 공격하게 된다. 이를 틈타 1980년 이후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의 힘을 무력화시키며 결국 '타협'으로 불리던 당시 미국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와 금융, 기술혁신으로 대변되는 '세계화'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더 이상 노동자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적자생존의 시대, 야만의 부활이다.

"끊임없이 실력을 경쟁하고, 끊임없이 속도를 경쟁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자기화하면서, 끊임없이 생존 자체만을 위해 달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타협이 깨지고 그 자리를 시장이 폭력적으로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죽음의 계곡> 중에서

비록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복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자기계발 인간형'에 머물고 있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타인과의 관계 복원'과 '진짜 민주주의'로 답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단다. SNS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만든 광장의 집단지성을 통해 승자독식이라는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 새로운 광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안에 내재한 '남들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저급한 의식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역사를 다시 진보의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다 함께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나쁜 바다로부터의 탈출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 <죽음의 계곡> 중에서

<죽음의 계곡>이 한 눈에 보여준 미국식 자본주의 탄생의 야만성과 역사적 흐름은 값지다. 진보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연대와 소통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곱씹어보게 한다. 평생을 서커스단의 코끼리나 양계장의 암탉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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