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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야, 회장 선거 꼭 나가야 되겠니?"

사진관 아저씨의 시시콜콜한 사는이야기

등록|2012.03.08 14:15 수정|2012.03.08 14:15

▲ ⓒ 조상연


"민지야, 너 회장선거에 안 나가면 안 되겠니?"
"왜? 나 하고 싶어."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당장 사진 값도 5만 원이나 하잖아."
"그럼 어떡해?"
"너, 회장 되면 학교에서 해달라는 것도 많아. 엄마는 그런 거 못 해줘."
"이번 한 번만 꼭 해보고 싶어서 그래. 미안해 엄마."
"엄마 약 값도 만만찮은데, 휴~~~~"
"미안해. 엄마!"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회장 선거에 나간다며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엄마와 함께 왔다. 딸과의 대화 끝에 결국 엄마는 눈물을 보였고, 딸은 차라리 외면을 하고 만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니 안타까운 마음에 결국 사진은 반 값도 안 되게 찍어주었다. 엄마의 장바구니를 보니 현탄액으로 된 위장약이 들어있다.

웬 약이냐 했더니 위장병이 있는데, 두 달 치 처방에서 한 달 치만 사 왔단다. 비싸기도 하지 한 달 치가 8만 원이란다. 다행스럽게도 의사인 누이동생이 가져다 준, 내가 먹는 위장약하고 똑같다. 아직 많이 남았기에 한 달 치를 챙겨드렸더니 웬 거냐고 묻는다. "의사로 있는 누이동생이 엊그저께 가져다 준 것입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했더니 고마워 어쩔 줄 모른다.

있는 집 자식들은 돈으로 밀어 붙여 회장이고, 부회장이고 하지 못 해 안달인데, 이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통솔력이 있어 선생님이 추천 해 줬단다. 그런데도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된 아이 엄마는 어린 딸의 팔소매를 붙잡고 "회장 안 하면 안 되겠냐"며 눈물을 글썽이니 세상 참 공평치 못하다.

마침 책꽂이에 남해의 미조에서 보내온 똑같은 시집이 몇 권 있기에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어린 학생의 손에 들려줬다. 한 손에는 시집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엄마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나가는 모녀를 보며 나나, 당신이나 세상 참 모질게 사는구나, 싶은 게 속이 상했다. 여유가 있어 자식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는 못해도 공부를 하겠다는, 저 하고 싶은 것 좀 하겠다는 작은 소망이라도 들어줄 수 있는 여력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돌무덤에 피어난 생명 ⓒ 조상연


"아줌마 너무 걱정 마세요. 바람 한 점 없는 숲에는 싱그러운 풀냄새가 안 난답니다. 바람이 불어야 풀잎들이 몸을 비벼대며 서로에게 실 날 같은 상처를 주지요. 바람결에 실려 오는 싱그러운 풀냄새는 바로 그들의 상처에서 맡아지는 것이지요.

아줌마나 민지나 지금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주고받지만, 이다음에 민지는 그 상처로 인해서 '코코샤넬 No 5'의 향수처럼 사람을 속이는 가짜 향기가 아니라 뭇사람들에게 정말로 사랑받는 진짜 향기로 다가올 것입니다. 다 잘 될 겁니다. 예쁜 따님이 엄마의 기대 이상으로, 엄마가 고생하시며 키워 준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자라서 보답해 드릴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제가 사진관을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관상쟁이가 다 되었답니다.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힘내세요, 아줌마.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하고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아저씨에게 오너라. 그리고 아저씨에게는 '후시딘'보다 더 좋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사랑의 묘약이 있단다. 참말이지 오랜 세월 깎이고 다져진 차돌멩이처럼, 혹은 야트막한 동산 커다란 바위 틈새에 피어난 다부진 해당화처럼 그렇게 자라 거라. 푸른 파도가 허공까지 닿도록 물결을 일으켜도, 꿈적하지 않을 만큼 당당하게 그렇게 자라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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