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애때문에 안 되지?"... 이러지 맙시다
[나도, 청년유권자 ①] 30대 주부 홍지원씨를 만나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각 정당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대책, 반값등록금 등 연이어 청년을 위한 정책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정책들이 모든 청년층을 샅샅이 살펴본 뒤 나온 것일까. 혹시 대학생이라는 특정 신분에 치우친 정책들은 아닐까. 대학생만 청년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청년유권자>라는 기획을 통해 2030세대에 속하는 비대학생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 주>
올해 결혼 6년차에 접어든 홍지원(34)씨. 그녀는 30대 주부이자, 3살 된 아이의 엄마다. 요즘 그녀의 관심 1순위는 양육이다. 지난 7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만난 홍씨. 전업주부이지만 간간이 NGO활동과 자원활동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혼 전 IT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2006년 결혼을 하고 2008년 말쯤 직장을 그만뒀다. 퇴사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너무 경쟁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삶이 피폐한 것도 그중 하나란다.
사실 그녀가 다녔던 회사는 당시 국내기업 중 보육시설이 가장 잘 돼있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같은 팀 여자선배들의 삶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종종걸음'이었단다.
"만약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길 바라죠.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니까요. 그런데 직장맘은 일하는 도중에 '아이가 아파서 갈게요'라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어요. 아이가 아플까 전전긍긍하고, 아프다고 하는데 쉽게 가보지도 못해 불안해하며 일할 수밖에 없죠."
당시 회사에 파격적인 1년의 육아휴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차마 1년을 채우지 못하고 6개월 정도에 다시 출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왜 육아 휴직을 줘도 못쓸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왜 그 시간을 못 채웠는지 이해가 된단다.
"회사에 복귀한 뒤가 걱정인 거죠. 육아휴직으로 1년 동안 충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회사에서는 그 시간이 진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외려 '1년을 쉬고 왔는데 나랑 똑같이 승진해?' 이런 분위기죠. 결국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리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그녀는 '회사에 어린이집이 있는 것만도 어디야'라고 말하는 현실에서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낳고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육아휴직 1년, 불안해서 쓰기 쉽지 않죠"
현재 3살 아이를 둔 엄마로서 그녀의 고민은 무엇일까. 역시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보육시설과 보육방법이었다. 마침 1주일 전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해 지금이 적응기란다. 사실 올해 다행히 어린이집 자리가 비어 들어가게 됐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보육 시설을 쉽게 찾았던 것은 아니었다.
"제가 지난해엔 목요일마다 서울 강북 미아에서 일산으로 심리학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그때 아이를 매번 지하철로 데리고 다녔죠. 하지만 사는 곳에서 멀기도 하고 아무래도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목요일만 정기적으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까 엄청 고민했죠. 친정 부모님께 부탁하자니 두 분 다 일하셔서 돌봐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어린이집에 파트타임 제도(시간제)가 있고, 강북구 영유아지원센터에 등록해서 영유아돌보미를 쓸 수 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아이가 또래 애들이랑 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어린이집 파트타임에 등록했죠."
그런데 정작 어린이집 파트타임은 '있는데 쓸 수 없는' 제도였다. 홍지원씨는 현실성 없는 제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에 등록된 어린이집은 선생님 당 아이 명수가 정해져있어, 갑자기 그 수를 초과해 아이를 마음대로 넣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제도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 하면요. 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려면, 그날 그 어린이집의 아이 한 명이 아파야 해요.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가 빠져야 그 명수 안에 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아이가 언제 아플지는 사실 모르잖아요? 그럼 당일 아침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빠졌어요, 오실래요?' 전화가 오는 거죠. 이건 쓰라고 만든 제도가 아닌 거예요."
포털 등에서 파트타임 제도를 시행하는 어린이집을 검색할 수 있는데, 홍지원씨 동네에는 4군데가 있었단다. 그녀는 4곳 모두 목요일로 한 달 치를 등록해놨는데, 연락이 온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했다. 홍씨는 "그 날짜에 유치원에 다니는 다른 아이가 아프지 않은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현재의 영유아정책이 워낙 초기 상태라 현실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양육 문제가 계속되는데도 체계가 잡히기보다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자가 백 명씩 늘어서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시설 수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가장 적합한 양육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급한 어른들의 입장만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정책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나이별로 집에서 키우는 게 더 좋은지, 시설에서 또래와 어울리게 하는 게 좋은지, 절충점을 찾을 건지 고민해야죠.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 혹은 부모 중 한 사람의 양육자가 키우는 게 좋다고 하면 무조건 1년 육아휴직을 쓰는 방향으로 추진하고요. 직장맘들의 고충이 심각하다면 동네가 아니라 직장에 어린이집을 필수로 만들도록 하고, 아니면 기업끼리 어린이집을 공유할 수도 있겠죠."
걸음마 수준인 영유아정책...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실생활 알아야"
육아정책을 몸으로 겪고 있는 주부로서, 그녀는 '다양화'된 정책을 주문했다. 부모들의 삶이 다양한 만큼,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육아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녀는 공동육아와 어린이집의 중간 형태를 넌지시 제안하기도 했다. 공동육아는 학부모들이 조합원이 되어 출자금을 내고, 재정, 홍보, 시설 등 운영에 직접 뛰어들어 선생님들과 공동 운영을 하는 방식이다.
"저는 36개월까지 아이를 곁에서 돌보고, 40개월부터는 '공동육아'를 계획하고 있어요. 주변 우이동에 공동육아 하는 곳이 한 곳 있어서 학부모 면접도 보고 입학금도 냈죠. 어린이집은 부모가 아이를 맡기면 늘 '아이가 잘 놀았다'는 이야기만 하잖아요. 하지만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공동으로 직접 참여해서 모두 함께 기르는 거예요. 실제 번거로울 정도라고도 하지만 부모자식 간 유대관계나 아이의 다양성을 키울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동네에서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돌보거나, 선생님을 초빙해 놀이를 할 수 있는 교류 공간이 여러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옛날 '품앗이' 랄까요?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을 같이 돌볼 수 있는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놀 장소가 필요한데 저희 동네는 놀이터도 없어요. 이웃이랑 교류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옆집에 가서 먼저 똑똑 두드리기 쉽지 않거든요. 지금은 마을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잖아요."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키부치 제도를 예로 들며, 아동발달 과정을 지켜보는 동시에 양육자의 상태를 살피는 관리 시스템을 언급했다. 지금처럼 발을 동동거리는 육아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잔소리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 집에 찾아와 육아 방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묻고, 같이 고민하며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육아 경험은 누구나 다 겪는 거예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 얘기를 듣고 육아 현실의 포인트를 잘 짚으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육아 이후, 30대 여성의 삶 고민하는 정책 없어"
"주부라고 하면 경제활동자의 백업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하려해도 저희에겐 아이 때문에 '아, 너희는 안 되지?' 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거죠. 틈을 안 주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를 돌보고 남는 시간에라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히 있거든요."
육아에 관심이 많고 신경을 쓰는 홍씨이지만, 그 역시 힘 넘치는 청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하고 관심있는 강의를 찾아다니는 것도 육아 이후에 자신이 선택해서 살아야 할 삶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바깥에서 신분을 밝힐 때도 주부보다 자원활동가나 자유기고가로 쓴다고 말했다.
"30대 여성의 삶을 고민해주는 정책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취업하려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게 있죠. 어린이집, 노인 요양, 간병, 학원강사… 하지만 그것만 선택하는 건 아니잖아요. 30대에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다시 뭔가를 하려 할 때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거죠. 주부들이 20대에 하던 일을 육아 후에도 하고 싶다면 단절하기보다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요. 청년 범위를 넓혀서 보면, 훨씬 더 적극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듯 해요. 일례로 청년 창업지원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싱글맘에 대한 창업지원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말했다.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시기도 있지만, 저는 그 시기가 차츰 지나가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데, 제가 고민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노력하고 실패해볼 수 있는 것들이 제 앞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부지만 30대 청년인 제가 저만의 삶을 꿈꾸고 도전하는 게 자연스럽게요. 그 과정에서 제가 사회에 잘 쓰이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기나긴 인터뷰가 끝나고, 어느새 자고 있던 아이가 깨어나 엄마에게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며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던 홍지원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저도 육아 이후를 꿈꾸는 30대 청년이랍니다!"
▲ "제 관심사는 양육이죠." 인터뷰 중인 홍지원씨의 모습. ⓒ 강진아
올해 결혼 6년차에 접어든 홍지원(34)씨. 그녀는 30대 주부이자, 3살 된 아이의 엄마다. 요즘 그녀의 관심 1순위는 양육이다. 지난 7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만난 홍씨. 전업주부이지만 간간이 NGO활동과 자원활동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혼 전 IT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2006년 결혼을 하고 2008년 말쯤 직장을 그만뒀다. 퇴사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너무 경쟁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삶이 피폐한 것도 그중 하나란다.
사실 그녀가 다녔던 회사는 당시 국내기업 중 보육시설이 가장 잘 돼있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같은 팀 여자선배들의 삶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종종걸음'이었단다.
"만약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길 바라죠.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니까요. 그런데 직장맘은 일하는 도중에 '아이가 아파서 갈게요'라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어요. 아이가 아플까 전전긍긍하고, 아프다고 하는데 쉽게 가보지도 못해 불안해하며 일할 수밖에 없죠."
당시 회사에 파격적인 1년의 육아휴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차마 1년을 채우지 못하고 6개월 정도에 다시 출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왜 육아 휴직을 줘도 못쓸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왜 그 시간을 못 채웠는지 이해가 된단다.
"회사에 복귀한 뒤가 걱정인 거죠. 육아휴직으로 1년 동안 충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회사에서는 그 시간이 진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외려 '1년을 쉬고 왔는데 나랑 똑같이 승진해?' 이런 분위기죠. 결국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리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그녀는 '회사에 어린이집이 있는 것만도 어디야'라고 말하는 현실에서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낳고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육아휴직 1년, 불안해서 쓰기 쉽지 않죠"
▲ 서울특별시 보육포털서비스 홈페이지. ⓒ 화면캡쳐
현재 3살 아이를 둔 엄마로서 그녀의 고민은 무엇일까. 역시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보육시설과 보육방법이었다. 마침 1주일 전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해 지금이 적응기란다. 사실 올해 다행히 어린이집 자리가 비어 들어가게 됐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보육 시설을 쉽게 찾았던 것은 아니었다.
"제가 지난해엔 목요일마다 서울 강북 미아에서 일산으로 심리학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그때 아이를 매번 지하철로 데리고 다녔죠. 하지만 사는 곳에서 멀기도 하고 아무래도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목요일만 정기적으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까 엄청 고민했죠. 친정 부모님께 부탁하자니 두 분 다 일하셔서 돌봐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어린이집에 파트타임 제도(시간제)가 있고, 강북구 영유아지원센터에 등록해서 영유아돌보미를 쓸 수 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아이가 또래 애들이랑 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어린이집 파트타임에 등록했죠."
그런데 정작 어린이집 파트타임은 '있는데 쓸 수 없는' 제도였다. 홍지원씨는 현실성 없는 제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에 등록된 어린이집은 선생님 당 아이 명수가 정해져있어, 갑자기 그 수를 초과해 아이를 마음대로 넣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제도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 하면요. 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려면, 그날 그 어린이집의 아이 한 명이 아파야 해요.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가 빠져야 그 명수 안에 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아이가 언제 아플지는 사실 모르잖아요? 그럼 당일 아침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빠졌어요, 오실래요?' 전화가 오는 거죠. 이건 쓰라고 만든 제도가 아닌 거예요."
포털 등에서 파트타임 제도를 시행하는 어린이집을 검색할 수 있는데, 홍지원씨 동네에는 4군데가 있었단다. 그녀는 4곳 모두 목요일로 한 달 치를 등록해놨는데, 연락이 온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했다. 홍씨는 "그 날짜에 유치원에 다니는 다른 아이가 아프지 않은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현재의 영유아정책이 워낙 초기 상태라 현실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양육 문제가 계속되는데도 체계가 잡히기보다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자가 백 명씩 늘어서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시설 수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가장 적합한 양육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급한 어른들의 입장만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정책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나이별로 집에서 키우는 게 더 좋은지, 시설에서 또래와 어울리게 하는 게 좋은지, 절충점을 찾을 건지 고민해야죠.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 혹은 부모 중 한 사람의 양육자가 키우는 게 좋다고 하면 무조건 1년 육아휴직을 쓰는 방향으로 추진하고요. 직장맘들의 고충이 심각하다면 동네가 아니라 직장에 어린이집을 필수로 만들도록 하고, 아니면 기업끼리 어린이집을 공유할 수도 있겠죠."
걸음마 수준인 영유아정책...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실생활 알아야"
▲ 홍지원씨와 아이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야죠." ⓒ 강진아
"저는 36개월까지 아이를 곁에서 돌보고, 40개월부터는 '공동육아'를 계획하고 있어요. 주변 우이동에 공동육아 하는 곳이 한 곳 있어서 학부모 면접도 보고 입학금도 냈죠. 어린이집은 부모가 아이를 맡기면 늘 '아이가 잘 놀았다'는 이야기만 하잖아요. 하지만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공동으로 직접 참여해서 모두 함께 기르는 거예요. 실제 번거로울 정도라고도 하지만 부모자식 간 유대관계나 아이의 다양성을 키울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동네에서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돌보거나, 선생님을 초빙해 놀이를 할 수 있는 교류 공간이 여러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옛날 '품앗이' 랄까요?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을 같이 돌볼 수 있는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놀 장소가 필요한데 저희 동네는 놀이터도 없어요. 이웃이랑 교류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옆집에 가서 먼저 똑똑 두드리기 쉽지 않거든요. 지금은 마을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잖아요."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키부치 제도를 예로 들며, 아동발달 과정을 지켜보는 동시에 양육자의 상태를 살피는 관리 시스템을 언급했다. 지금처럼 발을 동동거리는 육아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잔소리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 집에 찾아와 육아 방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묻고, 같이 고민하며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육아 경험은 누구나 다 겪는 거예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 얘기를 듣고 육아 현실의 포인트를 잘 짚으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육아 이후, 30대 여성의 삶 고민하는 정책 없어"
"주부라고 하면 경제활동자의 백업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하려해도 저희에겐 아이 때문에 '아, 너희는 안 되지?' 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거죠. 틈을 안 주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를 돌보고 남는 시간에라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히 있거든요."
육아에 관심이 많고 신경을 쓰는 홍씨이지만, 그 역시 힘 넘치는 청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하고 관심있는 강의를 찾아다니는 것도 육아 이후에 자신이 선택해서 살아야 할 삶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바깥에서 신분을 밝힐 때도 주부보다 자원활동가나 자유기고가로 쓴다고 말했다.
"30대 여성의 삶을 고민해주는 정책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취업하려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게 있죠. 어린이집, 노인 요양, 간병, 학원강사… 하지만 그것만 선택하는 건 아니잖아요. 30대에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다시 뭔가를 하려 할 때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거죠. 주부들이 20대에 하던 일을 육아 후에도 하고 싶다면 단절하기보다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요. 청년 범위를 넓혀서 보면, 훨씬 더 적극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듯 해요. 일례로 청년 창업지원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싱글맘에 대한 창업지원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말했다.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시기도 있지만, 저는 그 시기가 차츰 지나가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데, 제가 고민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노력하고 실패해볼 수 있는 것들이 제 앞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부지만 30대 청년인 제가 저만의 삶을 꿈꾸고 도전하는 게 자연스럽게요. 그 과정에서 제가 사회에 잘 쓰이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기나긴 인터뷰가 끝나고, 어느새 자고 있던 아이가 깨어나 엄마에게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며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던 홍지원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저도 육아 이후를 꿈꾸는 30대 청년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강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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