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인들은 좋은 책 내도 너무 서럽다
[지역문학 슬슬훑기] 고샅문학 창간호 <시가...>, 채경자 <그리움...>, 박능숙 <돌탑>
▲ 고샅문학 창간호시와 수필을 쓰는 문인들 모임인 고샅문학회가 창간호 <시가 푸르른 동네>를 펴냈다. ⓒ 시선사
"이 세상에는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자기 나름의 모습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물 속에는 한 권의 책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꽃샘추위가 저만치 봄이 다가오는 길목을 마구 휘감으며 심술을 마구 부리고 있다. 땡겨울보다 꽃샘추위가 더 춥게 느껴지는 이러한 때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책을 한 무더기 보내왔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른 바 '중앙 문인'들이 펴내는 책만 기사로 쓰지 말고 지역문인들이 펴내는 책도 기사로 좀 반듯하게 쓰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지역 문인들은 사실 서럽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발표할 지면이 마땅치 않다. 여기에 그렇게 열심히 쓴 글을 애지중지 다듬어 자비까지 들여 책으로 묶어내도 알아주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그늘지고 힘든 곳을 끌어안아야 하는 문학조차도 너무 중앙으로 쏠려 있기 때문일 게다.
부산 문인들이 이번에 보내온 여러 책 가운데 우선 눈에 띤 것은 고샅문학 동인지 창간호 1권과 시집 1권, 수필집 1권이다. 고샅문학 창간호 <시가 푸르른 동네>(시선사)와 시인 채경자 두 번째 시집 <그리움 달빛 물길에 젖다>(세종출판사), 수필가 박능숙 첫 수필집 <돌탑>(도서출판 한성)이 그 책들이다. 이들 지역작가가 쓴 작품, 그 속내를 들춰보자.
우리 문단에 지역문학 큰 획 그어봐라! '고샅문학'
습관처럼 컴퓨터의 ON에 손이 간다
어제도, 오늘도,
얼굴은 볼 수 없다
메일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하면서 살아간다
…
마우스에 먹이를 주면서
참새 떼처럼 콕 콕 콕
쪼아 먹기도 하면서
피그말리온의 효과로 살아간다
- 박언지 <또 다른 세상> 몇 토막
시와 수필을 쓰는 문인들 모임인 고샅문학회가 창간호 <시가 푸르른 동네>를 펴냈다. 이번 창간호는 고샅문학회 회장 박언지 시인 발간사와 정종명 축사로 문을 연다. 그 다음으로 축시가 주루룩 이어진다. 김송배 <사랑법 21-직녀야>, 공재동 <댓잎소리>, 문인호 <고샅문학의 애(愛)-고샅문학의 향기로움을 위하여>, 서태수 <신(新) 며느리밥풀꽃-낙동강>, 선용 <바다일기1-개펄에는>, 차한수 <시가 푸르른 동네>가 그 시편들.
정종명 한국문협 이사장은 '우리 문단에 큰 획을 긋는 동인지'라는 이름을 내건 축사에서 "저마다 개성이 강한 문학인들이 모여 호흡을 함께 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줄로 안다"며 "요즘 불황에 동인지를 선뜻 내어줄 출판사가 많지 않고 보면 재정적인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큰 뜻을 품은 고샅 동인 면면을 보면 그러한 어려움쯤 능히 극복하리라 믿는다"고 북돋웠다.
재채기마저 숨죽이고 하는 세상
달려드는 모기떼에 뜯기고도 참는 세상
굳은 땅 뚫고 걷는 勇力(용력)도 좋은 토룡
- 김종열 <용력> 모두
동인들 시로는 김대환 <휘파람새> 외 4편, 김인태 <가을 이야기1> 외 4편, 김종열 <용력(勇力)> 외 4편', 김혜영 <만추> 외 4편, 박언지 <순천만에서> 외 4편, 손옥자 <바보 생각> 외 4편, 손인환 <바람의 언덕> 외 4편, 신문호 <치매> 외 4편, 옥무현 <떡볶이> 외 4편, 윤혜진 <저문강2> 외 4편, 이석락 <요즈음> 외 4편, 이혜민 <연꽃> 외 4편, 전대홍 <삶에 겨울이 와도> 외 4편, 황소성 <가을> 외 4편이 시가 푸르른 고샅을 부르고 있다.
평론으로는 김천혜(부산대 명예교수)가 쓴 <무의미시가 갖는 의미>가 서로 안다리를 걸고 있다. 김천혜는 이 평론에서 "무의미시는 말 그대로 의미가 없는 시"라며 "무질서하게 의미가 없다기보다 질서 있게 의미가 없"는 시라고 썼다. 그밖에 전대홍 기행문 <황산 서해대협곡>과 박능숙 초대수필 <귀>가 실려 있다.
'시골의 좁은 길' 혹은 '골목 사이 길'이라는 뜻을 지닌 고샅문학회는 2011년 4월 14일 창립해 그해 6월 전남 강진에서, 10월 경북 영양에서 문학기행을 펼쳤다. 고샅문학회 회장 박언지 시인은 "고샅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도시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와 안기고 싶은 어머님의 품처럼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그리움'은 '흘러간 시간'... '달빛'은 '추억'
▲ 시인 채경자 두 번째 시집시인 채경자가 두 번째 시집 <그리움 달빛 물길에 젖다>를 펴냈다 ⓒ 세종출판사
억새꽃 하얗게 핀 강 언덕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애달픔 눈빛
철길 위엔 속울음이 달린다
햇볕 뜨겁던 날
꽃무늬 양산을 든 여인이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을
강마을 역 낡은 의자엔
목쉰 기적소리가 기억을 남긴다
- <강마을 역> 몇 토막
시인 채경자가 두 번째 시집 '그리움 달빛 물길에 젖다'를 펴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옛 추억을 건져 올리기도 하고,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에 담지 못했던 애타는 '마음의 씨앗'을 삼라만상에 심는다. 까닭에 이 시집 제목에 나오는 '그리움'은 '흘러간 시간'이며, '달빛'은 '추억'이다. 그 시간과 추억이 시인 가슴에 흐르는 '물길'에 젖는다는 것이다.
이 시집은 제1부 '그리움, 달빛 물길에 젖다', 제2부 '강변에 비는 내리는데', 제3부 '내 작은 소망', 제4부 '숨 쉬는 산책로', 제5부 '배롱나무 꽃' 등 5부에 86편에 이르는 시가 그리움에 촉촉하게 젖고 있다. <동강에 빼앗긴 마음>, <바람도 길에서>, <빛을 잃은 태양>, <밤에 핀 목련꽃>, <오후를 지나가는 완행열차>, <숨 쉬는 산책로>, <새벽바다에 쓴 편지>, <어떤 여행자-이별>, <몰래한 사랑>, <오래된 의자>, <곁의 여인> 등이 그 시편들.
시인 채경자는 '시인의 말'에서 "이슬도 탐하지 못할 고요한 마음을 세상 그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그는 "바람도 두드리고 갔을 가슴 시린 날을 시로 승화시키는 간절한 내 삶에 어린 아들 딸의 해맑은 눈동자 청량한 웃음소리에서 가슴 따뜻하게 느끼며 문학의 꿈을 놓지 않았다"고 썼다.
긴 세월이 어깨를 들썩이며
상처덩어리로 피어난다
가슴에 박혀 슬픔이 된 내 젊음은
아홉 마디 사연으로 피어
눈물 속에서 젖는구나
- <구절초> 몇 토막
시인은 젊은 때 꽤 쓰리고 아픈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들판이 누렇게 여물어 가는데 / 가슴이 시리다 / 한 번도 마음 편히 올 수 없었던 고향 길"이었지만 지금은 "연보랏빛 꽃무리"인 구절초가 시인을 반겨준다. 그래. 오죽 그 상처가 죽는 것보다 더 깊었으면 "가슴에 박혀 슬픔이 된 내 젊음"이라 적었을까.
시인이자 수필가, 시낭송가로 활동하고 있는 채경자는 <한맥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정원의 아침>이 있으며, 허난설한문학상 금상, 여류작가상 등을 받았으며, (사)국제문화예술협회 국제문협이 주는 시낭송가 인증서를 받았다.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회원.
포대기에 쌓인 아이는 목련꽃잎 속 씨방 같았다
▲ 박능숙 첫 수필집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박능숙이 첫 수필집 <돌탑>(도서출판 한성)을 펴냈다 ⓒ 한성
"나이가 들면 자식은 부모의 지팡이가 된다. 그런데도 그 지팡이를 의지하려 않으려 하셨다. 아버님의 곧은 성품이 차라리 지팡이였다.
아이들은 장차 내 지팡이다. 얼굴을 찡그릴 일이 있다가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마냥 마음이 든든하다. 내가 어릴 때 항상 웃음을 흘리곤 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야 어머니의 지팡이가 나였다는 것을 알겠다."
- <지팡이> 몇 토막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박능숙이 첫 수필집 <돌탑>(도서출판 한성)을 펴냈다. 이 수필집에는 그와 가족, 그 주변사람들이 살아온 여러 가지 삶이 그가 오래 바라보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그는 그 어떤 사물을 꾸밈이 없이 솔직하게 바라보며 이 세상살이를 꼼꼼하게 가늠하고 있다.
제1부 '세월', 제2부 '꽃', 제3부 '꿈', 제4부 '고삐', 제5부 '거울' 등 모두 5부에 실려 있는 <못난 유산>, <달팽이집>, <세월을 등에 업고>, <분꽃>, <악의 꽃>, <난향이 전하는 말>, <시든꽃>, <총선벽보를 바라보며>, <해수욕장과 선글라스>, <지팡이>, <나는 고백한다>, <설거지 단상>, <눈썹을 그리다가>, <거울> 등 50편이 그 수필들.
수필가 박능숙은 '책머리에'에서 "수필은 지성과 감성으로 버무려 자기만의 색깔로 쌓아야 하는 탑"이라고 적었다. 그는 "여기 예쁜 돌, 못난 돌, 무른 돌, 단단한 돌 등 나의 모든 돌들을 모아 내 탑을 쌓았다"며 "탑은 정성과 인내를 가지고 쌓아야 하는데 초라한 나의 '돌탑'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비바람 앞에 떨고 있는 목련꽃을 보고 있으니 아이를 낳은 후 첫 외출했을 때가 생각난다. 갓난아이에게 혹시 미풍이라도 스밀까봐 강보에 싸고 또 포대기에 쌌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새롭다.
강보와 포대기에 쌓인 아이는 마치 꽃잎속의 씨방 같았다. 꽃잎을 펼치듯 강보와 포대기를 한 겹, 한 겹 걷어 올리면 아이는 바람을 탔는지 화들짝 놀라곤 하였다."
- <바람막이> 몇 토막
시인이자 수필가 유병근은 작품해설에서 "어눌하다고 하는 화자의 어법은 그 달변이 차라리 작품 속에 나타난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말은 천천히 생각은 조리 있게 라는 말이 박능숙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겠다"라며 "구변 대신 문장으로 그 재치를 드러내는 수필가는 그 문장 속에 깊은 생각과 의미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수필가 박능숙은 2003년 전국 백일장 장원, 김유정 문학상 최우수상, 2004년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당선, <에세이문학> 겨울호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전북중앙신문에 문화칼럼 '박능숙의 행복바이러스'를 매주 1회 1년 동안 연재했다. 부산문인협회, 에세이부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동서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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