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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 은폐' 이영호, 포항 총선 출마 검토했다

[인물탐구] 'MB정권 군기반장' 이 전 청와대 비서관... 최근 종적 감춰

등록|2012.03.15 18:59 수정|2012.03.20 18:46
'EB(이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애칭이다. 이 전 비서관은 MB정부에서 '권력실세'로 통했지만,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장진수 국무총리실 전 주무관이 양심선언한 이후 현재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의 윗선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와 관련된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이 전 비서관이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15일 "이 전 비서관이 언젠가 고향인 포항에 출마한다면서 언론홍보 등을 상의하러 왔다"며 "하지만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도움을 구하러 왔지만 제가 'MB가 잘 나갈 때면 모르겠지만 지금 MB가 피박 쓰고 있는데 출마하지 마라'고 충고했다"며 "(이 전 비서관이 연루된) 민간인 사찰 의혹건에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야당에서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도 "이 전 비서관이 포항 남구 출마를 검토했다"고 했고, 한국노총의 한 간부도 "민간인 사찰 의혹건으로 사퇴한 다음에 잠적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포항에서 총선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사찰 의혹에 연루돼 지난 2010년 7월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하자 총선 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 따라 부동산 투자했으면 부자됐을 것"

▲ 박영선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진상조사특별위원회(MB정권비리특위) 위원장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청와대 개입 의혹과 관련해 최종석 전 행정관과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즉각 소환을 촉구했다. ⓒ 권우성


이 전 비서관의 고향은 MB생가가 있는 포항 흥해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포항 구룡포다. 'MB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동향이다. 그는 구룡포중과 구룡포종고를 거쳐 계명대 경영학과(84학번)를 졸업했다. 이후 평화은행에 들어가 '노동운동가'로 변신했다.

이 전 비서관은 평화은행 노조위원장과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 조직본부장을 지냈다. 2000년 전국금융산업노조가 당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친노동자 후보'로 선정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005년 자신이 밀었던 금융산업노조위원장 후보가 낙선하자 은행에 복귀하지 않고 사직했다.

이 전 비서관과 함께 금융산업노조에서 근무했던 한국노총의 한 고위간부는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는데 사직서를 냈다"며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쪽에 합류했는데 국회의원의 꿈 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에는 MB 지지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한국노총의 간부는 "그때 박영준, 유선기 등과 함께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돌았다"며 "그 공을 인정받아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한나라당 선대위 노동총괄단장을 지내면서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를 이끌어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실무위원과 선진노사관계TF팀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에게는 '노사민정 대통합'의 역할이 주어졌다. 정부가 출범하자 사회정책수석실 고용노사비서관에 발탁됐다.

이 전 비서관이 MB정부 노동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가 있지만 주변 인사들의 평가는 다르다. 전국금융산업노조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용득 현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그를 "노동기술자"라고 혹평했다.

"이 전 비서관이 노동문제를 주로 다룬다는데 그분이 노동문제를 압니까, 노사관계를 압니까, 고용부문을 압니까? 노동기술자의 시각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면 안 된다."

이 전 비서관의 재산 신고액은 14억5800만 원(2008년 기준). 여기에는 송파구 아파트 2건(1건은 분양권)과 동작구 상가 분양권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이 강남에 살았는데 부동산 재테크가 뛰어났다"며 "그를 따라 부동산 투자를 했다면 나도 부자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 BMW를 타고 왔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정보를 꽉 틀어쥐고 '정권 군기반장'으로 군림"

▲ 청와대 춘추관 건물. ⓒ 권우성



이 전 비서관은 청와대 안에서 '권력실세'로 통했다. 정부 부처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은 국정원과 경찰의 정보를 꽉 틀어쥐고 '꼼짝 마라'고 한 MB정권의 군기반장이었다"며 "이는 그의 뒤에 박영준, 이상득, 그리고 MB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인사는 "어느 날 각 부처 간부들을 술자리에 불렀는데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전망을 틀리게 한 경찰에게 '너 때문에 나 죽을 뻔했다'고 고함을 치자 그 경찰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다"고 전했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은 원래 완장 체질"이라며 "권력 주변에서는 'EB(이비)의 끗발이면 못할 게 없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말했다. "박영준 전 차관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인물이었다"(청와대 전직 비서관)는 증언도 있다. 2009년 6월 장관급인 김대모 노사정위원장에게 '사직 서약서'를 요구해 물의를 일으켰고, 2009년 10월 일어난 'L비서관의 청와대 난동사건'의 'L비서관'이 이 전 비서관이었다.  

이 전 비서관이 이렇게 '권력의 군기반장'으로 군림하는 데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으로부터 보고받는 정보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있다. 그는 노동정책을 다루는 고용노사비서관이었음에도 공직윤리지원관실 신설과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지난 2008년 9월에 열린 공직윤리지원관실 워크숍에 참석했고, 고용노사비서관실이 아닌 공직윤리지원관실 관용차를 이용했다. 심지어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매달 20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이를 두고 "국기문란 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수활동비 상납과 2000만 원 전달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2009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받고 제일 처음 한 일은 이 비서관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MB에게 충성심을 많이 보였던 사람"이라며 "그런 점에서 MB의 눈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향인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도 가까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은 상당히 거칠어서 비서관에 임명되기 전에도 자격시비가 일었다"며 "그동안 위태위태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건과 관련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이 전 비서관이 직접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의 또 다른 인사는 "권력에 호가호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라며 "이 전 비서관은 MB와 박영준 등 권력 실세들을 믿고 권력에 심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 사건' 최초 공개, 이털남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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