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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망가졌지만... 불법 사찰은 그들의 '무덤' 성찰없는 이명박 정권 '악마적 광기' 섬뜩하다"

[기고]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

등록|2012.03.16 11:29 수정|2012.03.16 12:10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가 처음으로 공개한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 인멸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2008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자행된 민간인 불법 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가 최근 자신의 소회를 밝힌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말]

▲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자료사진) ⓒ 권우성


1961년 4월 11일,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예루살렘 지방법원에서 시작되었다. 자신도 유대인이며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을 참관했다. 그리고 아렌트는 재판 과정과 자신의 소회를 보고서 형태로 1963년 2월부터 다섯 차례로 나누어 <뉴요커>에 기사로 게재하였다. 이 보고서는 1965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아렌트는 직접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 아렌트가 이 재판에서 주목한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단지 지시를 받은 자에 불과하고 또 그 지시는 어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범죄'로 자신을 단죄하려는 법정에 승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유대인 학살이라는 악행을 행한 행위자는, 그 악행이 아무리 무시무시한 것이어도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한때는 자신이 성심을 다해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여겼던 것이, 어느 순간 자기 밖의 타인들에 의해 범죄로 불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이히만은 외부와 소통되지 않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직무에 충실한,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아렌트는 말한다.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악은 특별한 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과 역사를 성찰하지 않는 자에 의해 언제든지 자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만약 그러한 무의식에 마취된 자가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집단으로 존재할 때, 그 집단의 광기는 인간을 넘어 자연에까지 잔인한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성찰없는 우국충정... 섬뜩하기만 하다

이른바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행한 행위자들은 말한다.

"진충보국(盡忠報國 : 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를 갚음)의 마음으로 일했을 뿐인데…"
-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2011년 5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바로 김종익 같은 자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천안함 사건은 북조선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연평도 포격은 남조선이 불필요한 군사훈련을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선전하는 반역의 무리".

"김종익이 이 나라 친북 세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

"김종익은 이 나라의 경제체제 안에서 불로소득을 누리는 귀족 좌파"

"대한민국을 건국부터 깡그리 부정하는 친북세력은 호의호식하며 큰소리치고,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박봉에 나라를 지켜보겠다고 최선을 다한 피고인들은 차디찬 감방에서 신음하여야 합니까? 도대체 이 나라의 정의는 어디에 있으며, 법은 누구의 편입니까? 실로 개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 김충곤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 항소이유서 중에서

참으로 대단한 우국충정이다. 그런데 이인규와 김충곤이 진충보국하고자 했던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나는 이들의 우국충정이 왠지 섬뜩하기만 하다. 나치 독일도 일본 제국주의도 바로 이 성찰되지 않은 우국충정이 있었기에 한 시대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나는 이인규와 김충곤이 얼굴만 다른 아이히만으로 보이거나 가미가제 특공대로 보인다. 또한 아이히만이나 가미가제 특공대의 복제 인간들이 활개를 치며 국정을 농단하게 만든 이명박 정부는 광기에 사로잡힌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나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워 동아시아를 침략했던 제국주의 일본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기구라고 할 수 있는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역사와 시대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토록 천박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은 나를 향해 신념에 찬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을 떠받치는 '냉전'이라는 괴물이 구시대의 악습으로 인류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세상은 허구의 이념을 넘어 소통과 원융(圓融)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생활은 궁핍해지고, 벗들은 떠나고...불법사찰로 망가진 삶

세상의 모든 인간은 서로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차이는 인간이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향점이 달라서 가지게 되는 필연의 소산이다. 이 차이를 소통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악의로 넘쳐나는 말의 위세로 궁벽한 형세에서 벗어나려는 초라한 인간의 영혼을 마주하면서 나는 분노를 넘어 존재의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그릇을 머리에 인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없듯이, 아마도 그들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진충(盡忠)은 할지언정 자신의 내면에 무성한 광기를 버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진충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처형대에 선 아이히만이 끝내 자신이 인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듯이.

나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로 생계수단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한 번도 나를 국가공권력의 피해자로 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하여 나를 불인불충(不仁不忠)한 자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자행했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이 불법으로 은밀하게 행해졌다면, 또 다른 사찰은 합법을 핑계로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검찰은 회사의 모든 경비 집행을 샅샅이 파헤쳤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소환했다.

거듭된 사찰은 내 경제적 삶을 궁핍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피폐하게 했다. 가깝다고 여겼던 벗들은 돌연한 침묵으로 내게서 떠나갔고, 공적 발언을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지인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인간이 형세의 제약에서 벗어나 행동하기란 참으로 어렵기에 이들의 침묵은 이명박 정부의 무도함이 그만큼 맹렬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이명박 정부의 무도함은 시대를 압도했다.

그러나 나는 이명박 정부의 무지와 광기가 아무리 시대를 압도하며 기승을 부려도 그 무지와 광기는 본질적으로 짧은 수명을 지닌 것이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나치 독일이나 제국주의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되는 5년이라는 한시적 생명을 가진 권력일 뿐이었다. 더구나 정보를 이명박 정부 같은 낡은 패러다임으로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시대의 시그널이었다. 나는 견디었다. 권력의 사적 도구로 전락한 검찰의 사찰을 온몸으로 견디었다.

하수인들에 의해 급격히 무너지는 이명박 정부

▲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검사)이 2010년 7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입주해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마친 뒤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생면부지' 정치인 이광재씨와 단지 동향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참여정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어 국무총리실의 불법사찰을 받고 생계수단을 잃어버렸다. 그로부터 3년 반이 되던 2012년 3월 검찰은 관련자를 기소했으나 1심에서 공소 기각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불법사찰 관련 증거 인멸에 가담했던 국무총리실 직원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털남>(이슈털어주는남자)에 연일 폭로하며 불법사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모든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의 종말이 그러하듯이, 이명박 정부 또한 배반으로 얻는 열매와 충성으로 얻는 보상의 크기를 계산하는 하수인들에 의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법원에서 사찰 행위가 불법임을 판결하고 행위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여도, 또 아무리 새로운 증거가 쏟아져도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도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라도 있는 것처럼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나는 그 완강함이 너무 역겹다. 오히려 "우리는 역사책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서 기록되든지 또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한 괴벨스가 이명박보다는 차라리 인간적으로 품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이명박 정부에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은 자신들을 순장시킬 무덤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그 무덤에 이명박과 함께 순장될 자들이 누구이며 몇 명인가는 후대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역사는 당대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것을 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피해자로서 저주나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삶과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간단한 이치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앙이 주는 교훈은 이명박 정부의 철저한 청산

내게 있어 이명박 정부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이 재앙이 주는 교훈은 명쾌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철저한 청산을 하지 못할 경우, 이명박 정부 같은 욕망의 괴물이 언제나 우리 곁에 불쑥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평범한 인간은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복종하여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악'은 특별한 존재가 특별하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청산을 어떻게 하고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는 우리 그러니까 시민의 손에 달려있다. 독일은 철저한 나치 청산으로 통일을 달성하였고 마침내 민주와 부국의 길을 가고 있다. 일본은 어정쩡한 제국주의 청산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은 끝에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사례는 청산되어야 할 역사를 제대로 청산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올해 두 번의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선거에서 어떤 정치권력을 선택할 것인지는 온전히 유권자의 손에 달려있다. 나는 내가 겪은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로 권력의 사악한 악행을 고발하였다. 나는 나의 고발이 이명박 정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것만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생존권을 짓밟힌 나와 내 가족의 가슴에 고인 눈물을 그나마 닦아줄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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