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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복지 플래카드 보고, 가슴 멎는 줄 알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낸 장하준 교수... "정치권 진출? 전화·이메일 한 통 없었다"

등록|2012.03.20 09:28 수정|2012.03.20 09:28

▲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출간 간담회를 가졌다. ⓒ 도서출판 부키


"여기 오는 길에 새누리당 플래카드에 1번으로 써 있는 것이 '복지'라는 것을 보고, 가슴이 멎는 줄 알았어요."

19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의 말이다. 올해 첫 한국 방문이다. 그의 손엔 책이 하나 들려 있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출판사 냄)라는 제목이다. 지난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을 함께했던 이들이 다시 뭉쳤다. 장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그리고 이종태 <시사인>기자 등이다.

이날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장 교수를 비롯해 이들 3인이 언론 앞에 섰다. 장 교수의 거침없는 화법은 여전했다. 정승일 위원도 마찬가지였다. 책 출간 간담회 자리였지만, 복지와 재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민감한 경제 이슈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장 교수는 특히 이번 총선에서 복지가 화두로 떠 오른 것을 두고, "격제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지난 2005년에 책을 냈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그런데 왜 지금 국민들에게 복지가 인기를 끌게 됐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이나 자살률, 교육과 양극화 문제 등을 들면서 "왜 우리가 불행한 나라가 됐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하준 "보수 제1 여당이 복지를 맨 먼저 내걸지는 꿈에도 몰랐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 부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다. 현 이명박 정부는 감세와 규제완화, 금융개방 등 철저히 우파적 신자유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감세나 규제 등에선 덜 적극적이었지만, 노동시장 유연화, FTA 추진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기자와 그동안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도 말해왔던 내용이다.(관련기사 : "무상급식은 공짜 아니라 보험 '공동구매'... 당장 이건희 집안 쫓아내면 재벌개혁되나?")

장 교수는 "돈 많은 사람의 돈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면서 "복지는 공동구매"라고 말했다. 교육과 의료, 주거 등을 국민들이 세금을 통해 값싸게 공동구매하자는 것이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바꾸자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고, 정부는 각종 재화를 공동으로 구매해서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 오는 길에 새누리당 플래카드에 복지가 맨 처음으로 써 있는 것을 봤다"면서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 제1 여당이 복지를 맨 먼저 내걸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도 했다. 그는 "(플래카드에 보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따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복지가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복지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무상급식'이란 용어에 대해 "'무상'이란 용어를 써선 안 된다"면서 "부모들이 모두 물건 등을 소비하면서 세금(부가가치세)을 다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의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왜 공짜로 밥을 먹여야 하나'라는 주장에도, "이 회장과 그 할아버지도 이미 엄청난 세금을 냈기 때문에 절대 공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미FTA 5~10년 엄청난 산업 구조조정... 복지국가 만들지 않으면 큰일날 것"

▲ 장하준 교수. ⓒ 권우성


한미FTA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한미FTA 폐기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외교적으로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한미FTA 종료하면 뭐하나, 한-EU FTA도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현실적"이라고 답했다.

장 교수는 "(FTA로 인해)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에 농업을 비롯해, 제약업계 등에서 엄청난 산업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며 "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텐데, 이들을 받아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복지국가를 통해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큰일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또 금융 시장의 공공성도 강조했다. 이 역시 그가 그동안 꾸준히 주장해 온 내용이다. 금융 자본의 폐해로 인해 세계가 금융 규제 강화 추세로 가고 있지만, 한국만 규제완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어 과거 제조업 강국이었던 영국이 금융 중심으로 되돌렸다가, 최근 들어 제조업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이 파산한 것은 소련이 붕괴된 것보다 더 큰 사건이었다"면서 "회사가 기술개발 하지않고, 기업 인수합병으로 덩치만 키우고, 주주들 배당만 늘리다가 결국 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또 총선 등 정치권으로부터 영입 여부에 대해서도, "전화나 전자우편(이메일) 하나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저의 역할은 책이나 연구를 통해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승일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경영권과 복지국가 구축 빅딜"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 도서출판 부키

이날 회견에 함께 나선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특히 진보적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너무 쉽게 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의 한 축인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깎기에 대해서도, "대기업의 무리한 인하요구도 문제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만들어놓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이후 재벌개혁과 금융완화 등의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이 단기 수익에 내몰리면서 구조적으로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재벌 개혁을 복지국가와 연결시켜 대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국가를 서로 교환하자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투자를 대폭 늘려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경력직보다는 신규채용을 늘리고, 세금도 많이 내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재벌들이 영리병원 사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선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정 위원은 "재벌이 무모하게 달리는 말이라고 한다면, 말에게 적절한 족쇄를 채우면 된다"면서 "이것으로 마차와 엔진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재벌 개혁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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