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돈 가지고 도망갔으면 좀 잘 살지!
하느님도 용서를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25년 전 청량리시장에서 장사를 할 때였다. 일하는 종업원 아이더러 은행에 입금을 시키라며 그때 당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 정도의 돈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그 뒤로 녀석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녀석의 고향을 찾아가 보니 늙으신 어머니 혼자서 끼니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계셨다. 돈 찾으러, 사람 찾으러 갔다가 오히려 지갑 속의 있는 돈만 모두 내어드리고 왔다.
그리고는 그 일로 자금의 압박을 받아 결국 두해를 못 넘기고 가게를 정리 하고 말았다. 그 뒤로 생활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 여파가 십년을 넘게 갔다. 그런데 한 달 전 고희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25년 전 돈을 가지고 도망간 녀석을 우연히 마주쳤다. 녀석의 꼴을 보아하니 예전보다 형편이 크게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돈 얘기는 관두고 술집에 마주앉았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았다가 녀석이 술에 취하더니 형님 잘 못했다며 무릎을 꿇고는 울고불고 눈물 범벅이다. 사람들 많은데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일으켜 세워놓고서 "그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어찌 이 모양 이 꼴로 사느냐"고 물었다. 횡설수설 잘못했다는 얘기 끝에 녀석의 말이 애기가 둘 있는데 일곱 살 배기 아들 녀석이 심장판막증이란다. 그것도 현재진행형이란다. 돈 벌어서 그 녀석 병원비 대느라 거친 음식만 먹어 똥 쌀 때마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단다.
그런데 아까 가만히 보니 녀석이 밥을 먹기 전에 성호를 긋고 있지 않은가? 피식 웃으며 내 돈 가지고 도망간 죄가 있어서 회개하느라고 꼴에 성당을 다니나보다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어 성당 다니냐고 물었더니 요즘 세례공부를 한단다. 내가 성당 다니는 것을 알고는 두 달 후에 세례성사가 있는데 대부를 서달란다.
'아, 이런 뭣 같은 경우가 있는가? 내가 이놈아 너 때문에 인생 황 되어버린 것 몰라?'
말없이 술만 목구멍으로 털어 넣다가 대부를 서주마 했다. 내가 어찌 하느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감히 흉내 내랴마는 하느님도 그의 죄를 용서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그를 용서하지 못한단 말인가? 알았다며 그만 가자고 일어서는데 그 녀석이 술값을 내기에 지갑을 탈탈 털어 애들 과자나 사다주라며 건네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역시 나는 덜 된 인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텅 빈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뜻 모를 서러움에 "에이!" 소리만을 연발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놈아, 네놈 대부 서줬는데 또 몹쓸 짓하면 나도 지옥행이다. 뭔 말인지 알아? 그나저나 애기 때문에 큰일이네. 뭔 수가 없을라나? 하느님께 매달려 보면 뭔 수가 나올라나? 하느님 딱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어린아이 하나만 살려주셔요. 부처님께도 부탁은 드려놨지만 하느님도 제발 좀 제 기도에 귀 좀 기울여 주셔요.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PS : 25년 전 청량리 시장에서 청과물 도매업을 했지요. 그 때 당시 2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종업원에게 심부름 시켰는데 녀석이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갔네요. 그 돈이 저에게는 전 재산이었는데 그 뒤로 많은 고생을 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길바닥에서 만났습니다. 솔직히 길바닥에 엎어놓고 밟아버리고 싶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아내가 녀석의 아이 병원비에 보태 쓰라고 2백만 원까지 해주었더랍니다. 그런데 또 연락이 안 되네요.
그리고는 그 일로 자금의 압박을 받아 결국 두해를 못 넘기고 가게를 정리 하고 말았다. 그 뒤로 생활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 여파가 십년을 넘게 갔다. 그런데 한 달 전 고희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25년 전 돈을 가지고 도망간 녀석을 우연히 마주쳤다. 녀석의 꼴을 보아하니 예전보다 형편이 크게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돈 얘기는 관두고 술집에 마주앉았다.
▲ .25년 전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 조상연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았다가 녀석이 술에 취하더니 형님 잘 못했다며 무릎을 꿇고는 울고불고 눈물 범벅이다. 사람들 많은데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일으켜 세워놓고서 "그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어찌 이 모양 이 꼴로 사느냐"고 물었다. 횡설수설 잘못했다는 얘기 끝에 녀석의 말이 애기가 둘 있는데 일곱 살 배기 아들 녀석이 심장판막증이란다. 그것도 현재진행형이란다. 돈 벌어서 그 녀석 병원비 대느라 거친 음식만 먹어 똥 쌀 때마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단다.
그런데 아까 가만히 보니 녀석이 밥을 먹기 전에 성호를 긋고 있지 않은가? 피식 웃으며 내 돈 가지고 도망간 죄가 있어서 회개하느라고 꼴에 성당을 다니나보다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어 성당 다니냐고 물었더니 요즘 세례공부를 한단다. 내가 성당 다니는 것을 알고는 두 달 후에 세례성사가 있는데 대부를 서달란다.
'아, 이런 뭣 같은 경우가 있는가? 내가 이놈아 너 때문에 인생 황 되어버린 것 몰라?'
말없이 술만 목구멍으로 털어 넣다가 대부를 서주마 했다. 내가 어찌 하느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감히 흉내 내랴마는 하느님도 그의 죄를 용서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그를 용서하지 못한단 말인가? 알았다며 그만 가자고 일어서는데 그 녀석이 술값을 내기에 지갑을 탈탈 털어 애들 과자나 사다주라며 건네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 .25년 전 장사할 때의 모습. 그때는 가격흥정을 남들이 못 보도록 주판으로 했다. ⓒ 조상연
그런데 역시 나는 덜 된 인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텅 빈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뜻 모를 서러움에 "에이!" 소리만을 연발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놈아, 네놈 대부 서줬는데 또 몹쓸 짓하면 나도 지옥행이다. 뭔 말인지 알아? 그나저나 애기 때문에 큰일이네. 뭔 수가 없을라나? 하느님께 매달려 보면 뭔 수가 나올라나? 하느님 딱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어린아이 하나만 살려주셔요. 부처님께도 부탁은 드려놨지만 하느님도 제발 좀 제 기도에 귀 좀 기울여 주셔요.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PS : 25년 전 청량리 시장에서 청과물 도매업을 했지요. 그 때 당시 2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종업원에게 심부름 시켰는데 녀석이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갔네요. 그 돈이 저에게는 전 재산이었는데 그 뒤로 많은 고생을 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길바닥에서 만났습니다. 솔직히 길바닥에 엎어놓고 밟아버리고 싶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아내가 녀석의 아이 병원비에 보태 쓰라고 2백만 원까지 해주었더랍니다. 그런데 또 연락이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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