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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같이 쓰는 게 좋을까'...투표에 부쳐보니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③] 1학년 우리반 학급회의 이야기

등록|2012.03.23 11:20 수정|2012.03.23 11:20
입학식을 치르고 이제 꽉 찬 3주가 지났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관계의 영역을 넓혀가며 초등학생이 되어 갑니다. 이렇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 걸맞게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1학년이 하는 학급 토론"입니다.

점심 밥상(급식이라 하면 너무나 맛이 없는 느낌입니다)을 마치고 아이들이 양치질을 합니다. 양치컵과 칫솔이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나란히 놓여져 있습니다. 자기 사물함에서 치약을 꺼내려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밥을 다 먹지 못한 아이들의 식판이나 물병을 건드릴까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하고 아이들도 귀찮을 거 같아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지금은 치약을 각자 사물함에 놓고 쓰고 있잖아. 그런데 치약을 다 모아 놓고 한 개씩 꺼내 놓고 다함께 쓰고, 다 쓰면 다른 거 꺼내 놓고 이렇게 다 같이 쓰면 어떨까?"

아이들의 얼굴이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함께 쓰면 치약이 다 떨어졌는데 깜박 잊고 안가지고 걱정 없고, 한 곳에 놓고 쓰니까 사물함에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고 좋지 않을까?"

잔뜩 설명을 하고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주말을 보냈습니다.

시소를 타기만 하던 아이들이이제는 시소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왔다 갔다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감을 발견해 갑니다. 아이들이 모험도 도전도 조금씩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 한희정


월요일 아침, 우리반 칠판 이야깃거리에는 ① 치약 사용 ② 화장지 사용 ③ 자리 바꾸기 세 가지가 적혀 있습니다. "치약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생각해 봤어? 선생님이 두 가지 방법을 얘기했지. 하나는 자기 치약을 가져와서 혼자서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약을 다 모아 놓고 다 함께 나누어서 쓰는 거야. 첫번째 자기 치약은 자기가 쓰는 게 좋은 사람 손들어 보자. 아니면 다함께 쓰는 게 좋은 사람?" 이렇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함께 쓰면 좋겠다는 아이들은 깜박 잊고 치약을 안가져와도 괜찮으니까 좋다, 사물함에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으니 좋다 이런 말들도 있었지만 그냥 그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반면, 자기 것을 자기가 쓰면 좋겠다는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 아껴 쓸 수 있다, 내 치약이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내 것을 쓰고 싶다, 치약을 한 개만 놓으면 여러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수 있다, 내가 가져온 치약은 너무 작은 것이어서 함께 나누어 쓰기 어렵다(이것은 미안한 마음에 어렵다는 것인지, 너무 작아서 다함께 쓸 수 없다는 뜻인지 ^^;;)처럼 다양한 의견들을 내 놓았습니다.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치약을 함께 쓰면 병균들이 옮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 거를 쓰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나눈 후에 모두 일어나서 교실 앞 쪽에 구역을 정해 줍니다. 각자 쓰자와 함께 쓰자로 나누어 보니, 1명의 기권(너희들이 알아서 해!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런 것을 기권이라고 한다고 했지요.)을 해서 11:11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각자 자기편으로 회유를 하기 시작합니다. "세균" 문제에 대해서 저도 미리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라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이야기가 진행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15:7이 되었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마무리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르치면서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각자 쓰는 것이 좋다고 결정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한다. 지금처럼 자기가 자기 치약을 가져와서 쓰는 것으로 하자."

친구들이 그린 것을 보고 서로 평가합니다.구경하는 것은 재미난 일입니다. 구경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평가가 나옵니다. 내가 한 것과 다른 친구가 한 것을 비교하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 마음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우며 성장합니다. ⓒ 한희정


치약 문제는 "세균" 문제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난 것에 대해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화장지" 사용 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장실에 화장지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휴지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화장지를 사물함에 놓고 쓰는데 이것을 모아 놓고 함께 쓰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일단 치약 사용에서 "자기 것 쓰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대세였기 때문일까요? "자기 물건" 챙기는 것에 대해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자기 것을 혼자 써야 한다는 아이들의 이유는 참 다양하고 어른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벽을 밀어내는 아이들처럼아이들의 대근육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감각통합놀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벽을 밀쳐내는 아이들처럼 밀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전심으로 우리가 밀쳐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한희정


"혼자 쓰면 내가 내 것만 조금씩 아껴 쓸 수 있는데 다 같이 쓰면 많이 쓰는 친구들이 다 써버릴 수 있어요."

공공의 것과 개인의 것, 구분이 분명한 시대. 공유와 사유의 양 날이 함께 돌아가기보다 공유의 날은 금세 무뎌져 버리고 사유의 날만 날카롭게 돋아나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할까 고민도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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