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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게 동무, 목련 필 때까지만 버텨보아

봄의 단상

등록|2012.03.23 12:13 수정|2012.03.23 12:13
목련

뭉게구름 한 주먹 가져다가
봄이라는 고명을 얹어서 뭉쳐놓은 하얀 주먹밥

작년 이맘때 상처를 한 동무는 지금도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는데, 
앙상한 나뭇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봄 향기 가득한 주먹밥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구나.

2012. 03. 22. 낮술에 취해 동무를 생각하며 쓰다.

▲ 목련 ⓒ 김종성


어느새 봄은 왔나보다. 이맘 때쯤이면 고향 집 앞, 눈이 얇게 덮인 밭에서는 청보리의 새순이 어영차하고 고개를 내밀었을 터이다. 개울가에서는 살얼음 속으로 물 흐르는 소리 졸졸졸 정답고 경칩 지난 지 한참 됐건만 게으른 개구리는 포근한 땅 속을 편안한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아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개구리 녀석. 나를 닮아서인지 왠지 우습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빚쟁이 피해 다니느라 봄이 오고가는 줄도 모르게 놓치고 말았건만, 올해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았더니 여기저기 새순이 보이고 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 청량리 포장마차에 앉아 술 한 잔에 콧물을 훌쩍이며 떠나보낸 아내가 가엽고 남은 자식들이 불쌍해 못살겠다던 동무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하얀 목련이 주먹밥처럼 앙상한 가지에 달릴 즈음 녀석이나 삐삐로 불러내어 따듯한 청국장에 막걸리나 한 잔 해야겠다. 그래도 속이 헛헛하면 목련가지에 걸린 하얀 맵쌀로 만든 주먹밥 하나 따서 정답게 나눠 먹으며 한가하니 여유도 좀 부려보고 동무를 집으로 보낼 적에는 토끼 같은 자식들 구워주라며 비릿한 고등어라도 두어 손 사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보내야겠다.

"이보시게 동무, 그저 목련 필 때까지만 버텨보시게. 뭔 수가 나도 나겠지?"

이웃집 담 안의 목련가지에는 어느새 푸른 생기가 봄의 기운을 박차고 오른다. 겨울에 동상이 걸려 짓물렀던 희망이 하얀 주먹밥 같은 목련처럼 잎새도 없는 가지에 주렁주렁 어서 매달렸으면 참 좋으련만. 주먹만 한 목련이 배고픈 이에게는 하얀 주먹밥으로, 희망을 잃은 이에게는 순백 같은 희망으로, 나처럼 고개 숙인 가장에게는 꽃샘추위에도 발가벗고 대적할 수 있는 용기로 다가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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