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패서 금연?... 그럼 아버님도 해보시죠
[학생부장 일기 ⑧] 오로지 매로 '금연교육'을 받아온 아이들
▲ 집 앞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모으니 약 서른 개비입니다. 이틀만 줍지 않아도 담배꽁초 천국이 됩니다 ⓒ 김동수
두 아이가 학생부로 끌려 왔다. 점심시간 운동장 뒤편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우다 딱 걸린 거다. 교복이 새뜻하고 아직 명찰이 가슴에 달려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올해 입학한 새내기들이다. 규정상 이들은 담임교사에게 인계돼 자술서를 쓰고, 즉시 보호자에게 흡연 사실을 통보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거듭 적발되면 금연 동영상을 일과 중 의무적으로 시청하게 되며, 상습적이라고 판단되면 보호자와 함께 지역사회에 개설된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 아이들의 흡연 문제를 학교와 보호자,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학교 안팎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고작 흡연 정도의 문제에 지역사회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닭 한 마리 잡자고 소 잡는 칼을 쓰냐'는 핀잔이다. 고육지책일지언정 학교마다 아이들을 위한 흡연실이 따로 설치되는 마당에, 교육 주체들이 모두 나서라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과민반응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긴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아이들의 흡연 문제는 학교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되기 일쑤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니코틴 측정기를 학년마다 설치해 흡연자를 찾아내 일벌백계하는 것이 학생부 업무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는데, 워낙 흡연 학생 수가 많다보니 시나브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며 손을 놓는 실정이다.
"우리 몇 대 맞으면 돼요?"... "매 맞으면 담배 끊을래?"
"초등학교 때부터 피웠고요. 돈만 건네주면 동네 형들이 담배는 알아서 구해다 줘요. 동네 형들 나이는 다 스물이 넘었으니 담배 사는 건 어렵지 않겠죠. 그리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대충 알고 계실 거예요. 선생님이 전화해도 별로 놀라지 않으실걸요?"
"선생님, 저는 얼마 전 처음 피웠어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해 반 아이들과 서먹서먹했는데 친해지려고 몇몇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담배를 배우게 됐어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제가 혼나는 건 괜찮지만 부모님이 이걸 들으시면 엄청 충격을 받으실 거예요."
서로 어색한 학년 초, 두 아이는 담배로 끈끈한 우정을 맺게 됐지만, 하나는 '베테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초짜'였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흡연 사실을 즉시 알린다는 처벌 규정을 대하는 태도도 극과 극이었다. 부모님의 묵인 아래 족히 5년 넘게 담배를 피워온 아이에게 학교의 처벌 규정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 교문 앞 체벌 모습(자료사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우리 몇 대 맞으면 돼요?"
학생부장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끼며 규정 적용에 있어서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베테랑' 아이는 더 이상 답변하기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이 아이의 진정 심각한 문제는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운다는 것도, 교사 앞에서의 태도가 불손하다는 것도 아닌, 그동안 제대로 된 금연교육을 받지 못한 채 시나브로 매에 철저히 길들여져버렸다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선생님이 지금 너를 왜 때려야 하지?"
"담배 피우다 걸렸잖아요. 그러니까 맞아야죠."
"너, 매 맞으면 담배 끊을래?"
보아하니 그 아이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때부터 오로지 매로 '금연교육'을 받아왔던 거다. 매로 담배를 끊게 할 수 없다는 건 교사도 학부모도 모르지 않는다. 그저 보는 앞에서만 피우지 말라는 엄포일 뿐이고, 그 아이는 학교 안팎에서 나름대로 숨을 곳을 찾아 요령을 부려가며 피우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인 것뿐이고, 재수 없게 또 걸린 것일 뿐이다.
어쩌면 매가 그 아이의 흡연을 더욱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들이 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 듯이. 아이들의 흡연은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으로만 여길 뿐, 잘못된 습관이나 질환의 일종으로 보지 않기에 매가 용인돼 온 것이다. 매 맞는 것처럼 육체적 고통을 안겨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 기성세대들은 왜 그 방법을 쓰지 않겠는가. 단지 아이와 어른의 차이라고 두루뭉수리로 얘기할 수 있을까.
파블로프의 개처럼 '회초리'에 반응하는 교사와 아이들
체벌 문제가 끊임없이 문제가 돼도,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돼도 학교 현장에 매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 건, 단언컨대,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이렇듯 매에 철저히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되어 특정한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어렵게 돼버렸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학년 초 담임교사의 철칙 중 하나가 '처음에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1년이 편하다'라는 거다. 이 세상에 매 때리는 걸 좋아할 교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이미 아이들 대부분이 매에 길들여져 있는 탓에 윽박지르든 매를 들든 엄포를 놓지 않으면 학급 분위기가 엉망이 되기 십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업 시간도 마찬가지다. 수업태도를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애초 성적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통제 불능이다 보니,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수업 분위기를 다잡으려면 최소한 엄포용 매라도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이 적어도 교탁에 매 부딪히는 소리에 잠시나마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는 탓이다.
더욱이 수업 시간에 대놓고 잠자는 아이들을 매 없이 가르치려면 교사로서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진도를 나가기는커녕 엎드려 자는 애들 깨우다가 시간 다 흘려보내기 일쑤다. 다가가 어깨를 안마해주기도 하고, 뒤로 나가 서서 수업 받으라고 벌주기도 하며, 잠을 깨도록 찬물로 세수하고 오라며 다그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 폭력에 익숙해진 권위주의 시절 학교의 모습을 그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여전히 가장 손쉽게 아이들은 교사를 두 부류로 나눈다. 매를 드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아이들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매 안 때리는 선생님 시간에 요령껏 잠을 보충해야 무서운 선생님 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교사들은 매를 결국 들어야만 하는지를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게 된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 '공식적'으로는 매가 없다. 해마다 모든 학교가 학년 초에 모든 교사들이 참여해 '체벌 없는 학교'를 부르짖으며 온갖 캠페인을 전개해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매 없이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어릴 적부터 매에 길들여져 왔는데, 일개 학교와 교사가 무슨 수로 당해내느냐는 것이다.
원인이야 다들 잘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칭찬보다는 꾸지람에, 격려보다는 회초리에 익숙해진 탓에, 기성세대는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조차 매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담배 피웠는데 왜 안 때리느냐'고 묻는 아이 앞에서 심란하게 앉아 있는데, 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전 후배를 때린 녀석, 학생부에서 가만 놔두나요? 그런 애들은 흠씬 두들겨 맞아봐야 정신을 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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