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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꺾은 유채꽃... 이렇게 슬플 줄이야

부모의 저민 가슴, "태어나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가다니"

등록|2012.03.27 09:43 수정|2012.03.27 12:00

▲ 유채꽃을 든 벗. ⓒ 임현철


지난 3월 17일, 제주 여행에서 친구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한 큰 상처를 보게 되었습니다. 송악산으로 향하던 중 운전하던 벗은 차를 잠시 멈추고 아름다운 유채꽃을 한웅큼 꺾었습니다. 그걸 보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저걸 왜 꺾을까?"
"유채를 누구에게 주려나. 아내? 아님 딸? 아님 이 차의 여인들?"

벗이 유채꽃을 꺾는 모습을 보며 다양한 추측이 뒤따랐습니다. 벗은 일행의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습니다. 아~ 글쎄, 운전대 앞쪽에 놓는 것 아니겠어요. 궁금한 건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유채말이야…. 여기에 있는 누구에게 주려던 거 아니었어?"
"…."

대답이 없었습니다. 궁금했지만 더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벗은 송악산 입구에서 한 손에 유채를 들고 내렸습니다. 여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송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사방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벗은 유채꽃을 들고 분화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일행이 놀라 말렸습니다. '무슨 일 있나' 싶었습니다. 5분여를 기다리니 벗이 나타났습니다. 손에 들었던 유채꽃은 없었습니다. 벗은 송악산을 내려오면서 속삭였습니다.

"내게 저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 소릴 듣는 순간, 멍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몰랐던 친구의 가슴 속 멍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송악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된 사연이 있습니다.

"눈 한 번 못 떠보고 가다니..."

▲ 벗은 유채꽃을 들고 송악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 임현철


친구 부부는 결혼 후 16년여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아이를 잉태하게 됐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서 아이가 숨을 거두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때의 아버지 심정을 친구 표현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가다니…."

이 비통한 부모 심정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벗은 눈 한 번 떠보지 못한 아이의 재를 흩뿌렸던 그곳에 아름다운 유채꽃을 깊은 가슴으로 아이에게 바친 것입니다. 봄이면 더욱 빛나는 유채꽃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 눈 한 번 뜨지 못하고 먼저 간 아이에게 바친 것입니다.

뒤에 합류한 친구 부인에게 꽃과 얽힌 사연을 말했더니, 엷게 웃으며 답하더군요.

"저 사람은 거기 갈 때, 꼭 야생화를 꺾어 가요."

친구에게 검붉은 화산재와 야생화는 아이와 하나였습니다. 이게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벗이 아이의 못 다한 생까지 안고 아름답게 살길 바랄 뿐입니다.

▲ 유채꽃을 든 벗이 송악산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쓰라린 부모 심정을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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