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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경제학으로 변질... 시장에 정의는 없다"

[현장]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정전 교수와 후배 경제학자들의 만남

등록|2012.03.27 11:25 수정|2012.03.27 11:25

▲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 남소연


"시장은 정의로울 수 없고 시장에 대해 정의를 얘기할 수도 없다."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란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에 도전하는 이정전(70)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26일 후배 경제학자들을 만났다. 이 교수는 이날 저녁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4인4색' 대담회에서 이른바 '시장 정의론'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원래 시장 정의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시장 비판이 많아지니 시장을 옹호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시장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 보수 쪽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것에 불만을 느껴왔다"며 이 책을 내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이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해 시장 옹호론자로 여겨져 온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놨다.

"우리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구멍가게 둘이 망하게 생겼는데, 난 일부러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산다. 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사람에겐 이익만 따지는 즉흥성뿐 아니라 이처럼 공적인 마음도 있다. <국부론>에선 '보이지 않는 손' 얘기만 했는데 그 전에 쓴 <도덕감정론>에선 이런 공적인 마음도 강조했다. 원래 윤리와 경제는 하나였다. 하지만 경제학에 수학을 쓰기 시작하면서 윤리도, 정의도 빠졌다. 지난 200~300년 사이에 애덤 스미스는 사라지고 시장 옹호하는 얘기만 남게 된 것이다."

이 교수는 "시장을 없앨 순 없지만 고삐가 풀려 우리 삶까지 지배하게 해선 곤란하다"면서 "시장이 삶에 보탬이 돼야지 우리 삶과 사고 방식까지 지배하고 모든 사회적 문제를 시장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008년 경제 위기를 빈부 격차 탓으로 보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자본주의의 윤리적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야 진짜 복지"

"시장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빈부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 세계 대공황도 빈부격차가 벌어져 시장이 폭삭 주저 앉은 것이고 2008년 경제 위기도 빈부 격차가 벌어진 탓이다. 빈부 격차가 크다는 건 서민, 중산층이 돈이 없다는 것이고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경제가 안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부유층과 대기업, 현 정부를 차례차례 겨냥했다. 부유층에 대해서는 "경제학적으로만 봐도 부유층이 돈을 많이 내 빈부 격차를 줄이고 사회 복지를 통해 중산층이 살찌면 함께 살 수 있다"면서 "윤리적으로 보더라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게 과연 공정하냐"고 일갈했다. 내수보다 수출 의존도가 커진 대기업에 대해선 "미국, 유럽 경제가 계속 죽어가고 있고 중국도 자기 먹고살기 바빠 앞으로 수출로 돈 벌기 어렵다"면서 "수출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기보다 내수를 살려야 하고 우리 생산한 걸 우리 국민이 사게 하려면 중산층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 교수는 "대형마트가 값싸게 봉사하는 것 같지만 동네 가게 다 망하면 값 올리는 게 독점의 원리"라면서 "백화점 통닭 사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말고 공적인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정부에 돈을 줬더니 제대로 안 쓰고 낭비하는 것도 문제"라면서 "중산층 살찌우고 국민 좋은 교육 받게 하는데 돈 안 쓰고 4대강 사업한다고 엉뚱한 데 돈을 쓴다"라고 현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이 교수는 "정부부터 돈을 잘 쓰고 국민이 감시하고 부자들이 세금 더 내서 중산층 살찌면 부자도 산다"면서 "선거는 왜 하나"며 유권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교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 논란과 관련해서도 시혜 차원의 복지를 경계했다.  

"환경 오염되면 모두 똑같이 피해보는 것 같지만 부자는 환경 오염을 피할 수단이 있어 큰 영향을 안 받는다. 가난한 사람만 당한다. 그런 차원에서 부정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환경 문제에 도움을 줘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데, 시혜 차원이 아니라 당연히 복지 혜택을 누릴 권리 차원에서 얘기해야 한다. 시혜 차원 복지는 미련한 짓이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야 진짜 복지다. 사회 복지는 사회 통합을 위한 것이다."

"거품 낀 부동산 가격이 나라 망하게 해"

▲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 유성호

이날 <오마이TV>에서 100여 분에 걸쳐 생중계한 대담 진행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맡았고 경제학자인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와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도 참석했다.

김 교수는 도입부에 "집값은 떨어지는 게 좋나, 오르는 게 좋나"라는 질문을 모두에게 던졌다. 이에 우석훈 교수는 "떨어지는 게 좋다, 올라야 한다는 게 나쁜 사람"이라면서 "희생자 생기더라도 투기에 실패한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홍 소장은 "시장에선 사고파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적정 가치'란 사회적 관점"이라면서 "산업 사회에선 모든 인간관계가 엮어 있어 사회 전체 합의가 중요하고 시장 기구 외에도 적정 가치를 토론하는 장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 역시 "아파트 가격은 원가에 정상적 이윤 정도만 허용해야 하는데 돈 벌려고 아파트를 사면서 거품이 많이 꼈고 미국, 일본도 그래서 망했다"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가격이 정당한 가격이 아니고 우리 모두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공정 가격'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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