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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이 아직도 이지경인데... e-편한세상?

'용산' 떠올리게 해주는 <두개의 문> <떠날 수 없는...> 고맙습니다

등록|2012.03.31 18:18 수정|2012.03.31 18:18

▲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의 한 장면 ⓒ 연분홍치마


병원에 누워 벗이 보내준 용산참사 다큐 <두 개의 문>(연분홍치마)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나온 용산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보리출판사)도 함께 봤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잘 봤다고 하기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눈물과 분노 없이는 떠올리기 힘든 이야기들. 그 망루를 휘감아 오르던 뜨거운 화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습니다.

남일당 건물 위, 불길에 녹아내린 파란 망루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유대인 드레프스처럼 누명을 쓰고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여덟 분의 철거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우리 모두의 시계는 어쩌면 2009년 1월 20일 새벽 7시께에 멈춰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연대했던 작가선언 6.9의 선언처럼 용산참사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이 있지 않는 한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입니다.

다큐 <두 개의 문>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을 냉정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차분하지만 진실을 향한 집요한 눈길에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어떤 극영화도 이렇듯 차갑고 뜨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미스터리물도 이보다 답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공포물도 이보다 긴박하고 무섭진 않을 것입니다.

미친 늑대들 같은 용역깡패들이 달려들고, 테러 진압대인 경찰특공대들이 몰려오고, 헬기가 날고, 물대포를 쏘는 속에서 조그만 망루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집단몰이를 당하는 어떤 짐승들보다 그들은 더 처참했습니다. 진실은 이렇게 간단한데 최초로 공개되는 법정의 물음들은 의미 없었습니다.

가장 큰 국가폭력은 '여명의 황새울 작전'

현장에서 이런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하고 처절한 것인지요. 어쩌다보니, 저도 기륭전자와 용산에서 아예 그런 용역들과 매일 마주치고 싸우며 살았습니다. 몇 번이나 집단린치를 당할 뻔하고, 바로 옆 동료들이 붙잡혀 눈앞에서 이가 나가고 머리가 깨지는 것을 볼 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느물거리며 용역들의 폭력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감싸다가, 철거민들이나 노조원들의 대항이 조금만 있으면 잡아채가는 대한민국 경찰들, 그리고 시시때때로 행정대집행을 나와 용역들에게 '합법'이라는 외피를 씌워주고, 용역깡패들이나 경찰이나 시공사들이 못하는 '공무'를 시행해주는 구청 공무원들까지 겹쳐지면 정말 환상의 무법트리오, 민중 생존권 박살을 위한 3중주단이 구성됩니다.

▲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현장에서 그들 3주체의 암묵적인 역할분담과 공동행동, 연합작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조화로운 잔인함에, 그 한 치 오차도 없는 폭력의 정합성 앞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문>은 그 폭력의 현장을 여과 없이 정밀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직접 경험했던 국가폭력 중 가장 큰 규모는 대추리 때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습니다. 물론 이때는 워낙 까발려진 국가폭력의 실체가 컸기에 1만 5천여명의 전경, 군 헬기 등 현역군 일부에 눌려, 수백 명 규모의 용역 깡패들과 공무원들은 무슨 귀여운 마스코트 인형들 같았습니다.

가장 잔인하고 폭압적이던 경우는 용산 때였습니다. 이때는 아예 경찰특공대들과 용역깡패들이 드러내놓고 공동작전을 펼쳤습니다. 용역들이 문을 따면 경찰들이 들어가고, 밖에서는 경찰들이 컨테이너를 이용해 오르고, 안에서는 용역들이 계단을 치고 오르는 식이었죠.

가장 밀집된 형태는 기륭전자 공장 앞에서 보았습니다. 2008년 10월말 마지막 망루를 쌓고 사람들이 올라갈 때였습니다. 망루 하나를 지키려는 사람은 한 무리였는데 덮치는 무리들은 세 겹이었습니다. 회사 구사대까지 포함해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무슨 더블햄버거 마냥 압착해 들어왔습니다. 경찰이 망루 곁에 있는 촛불 시민들과 연대온 사람들을 뜯어내어 공장 안으로 넣어주면 후미진 공장 담벼락 밑으로 먹이를 받은 용역들은 그들을 끌고 가 무지막지하게 짓밟았습니다.

여기에 '용역검찰'과 편파적인 사법부까지 곁들여지면 정말이지 환상적인 민중탄압 구조의 틀이 완성됩니다. 대추리에서도, 기륭에서도, 용산에서도, 한진에서도 단 한 명의 경찰도, 용역깡패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물리력도 없이 맨몸으로 저항했던 사람들. 이웃을 돕고자 한 사람들만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됐습니다. '특수공무방해 치상'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런 우리 시대 폭력의 A, B, C, D가 <두 개의 문> 다큐를 보다보니 순차적으로 다시 떠올라 잠시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용산은 실제 이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용산에서 돌아가신 분들 중 고 이성수, 윤용현, 한대성 선생은 용산 4구역 철거민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구속되어 있는 여덟 분 중 4분도 용산 철거민이 아닌 타 지역 철거민입니다. 다치거나, 끌려가거나, 실제 그렇게 죽을 수도 있는 길을, 다른 철거민 이웃들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이나 대가 없이 올라간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입으로는 이웃 사랑을 얘기하고 살신성인을 말하지만 실제 그들처럼 몸으로 함께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뭐 그게 대단한 일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난 그렇기에 더더욱 그분들의 위대함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는 영광처럼요.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살아남아 이 잔인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용산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용산이라는 시대의 트라우마에서 이제 잠시라도 놓여나고 싶을 때, 계속해서 그 진실규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과 여섯 분의 만화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씨께 용산에 함께했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때로 아픔은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 그 일이 잊힐 때 오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우리 모두가 망각하지 않게끔 기억의 끈을 잡아주고 그 실낱같은 기억에 분명한 형상들을 입혀준 분들의 노력은 그 어떤 가치로도 쉬이 갚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일 터입니다.

▲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겉그림 ⓒ 보리

성남 단대동 철거민으로 2009년 1월 19일 용산에 잠깐 연대 갔다 올게 하고 나갔다가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3년째 징역을 살고 있는 김창수씨 이야기를 다룬 김홍모 만화가의 <갈 곳이 없다>는 이 시대 철거민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김창수씨의 부인 수영씨와 아직 어린 두 아이, 은찬이와 은수는 지금도 성남 단대동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 앞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김성희 만화가의 <꿈결같은>에는 상도 4동 철거민으로 당시 용산에 갔다가 현재 김창수씨와 함께 3년여의 실형을 살고 있는 천수석씨의 이야기를 쫓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김영희씨는 상도 4동 무허가촌에서 결혼 후 20여년 동안 세를 살았습니다.

천주석씨는 재단사였고 김영희씨는 미싱사였습니다. 그곳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오토바이 가죽장갑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김영희씨가 두 아들과 함께 철거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상도 4동은 싸움 중입니다. 남편이 이감 간 대구까지 가는 길이 멀어 화상접견을 하면 "겨울 되니깐 망루에서 쇠파이프로 맞은 다리 한쪽이 계속 아프다"고, 당신은 "용역 들어오면 무조건 싸우지마"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망루에서 떨어져 간신히 살아났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지석준씨와 김영근씨는 수술을 대여섯 번이나 받고도 아직 완쾌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런 폭력 희생자들까지 몸이 다 나으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구속된 용산구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씨 이야기는 유승하 만화가의 <니 편한 세상>에 아프게 담겨 있습니다. 두 가구만 남아 완공된 'e-편한세상' 아파트 앞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용산은 이렇게 실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용산참사 명예회복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용산 참사 관련 구속자들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용산참사 진압 당사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반성은커녕 일본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당시 재판장이었던 양승태씨가 대법원장이 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용산 참사와 관련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은 그것이 언제일지 시간의 문제일 뿐 역사적으로 불가피합니다. 책임자 처벌은 영원히 이명박 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 죄과를 조금이라도 덜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용역경비업법과 강제퇴거금지법까지 바라진 않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싸워 이뤄내야겠죠.

자, 이제 다시 우리들 앞에 용산참사의 진실을 향한 <두 개의 문>이 다가와 있습니다. 하나는 망각으로 흐르는 문이고, 하나는 다시 진실을 찾는 문입니다. 하나는 굴종으로 향하는 문이고, 하나는 자유를 향한 문입니다. 하나는 과거의 늪으로 향하는 문이고, 하나는 조금 밝고 평등한 내일로 향한 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문의 손잡이를 돌릴 것입니까? 용역깡패들과 폭력 경찰들에게만 진입이 허락되었던 <두 개의 문> 안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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