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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의 변신' 먹태를 아시나요

봄바람에 솔솔, 바람난 입맛이 먹태에 머물고...

등록|2012.03.31 20:56 수정|2012.04.04 14:54

먹고 튀? 먹태?황태를 만들다 날이 풀려 속은 노릇하고 껍질이 거무스름해진 먹태는 속살이 부드러워 술안주로 제격이다. ⓒ 이철원


보들보들 먹태 속살황태덕장에 봄바람이 삐기처럼 파고드는 요즘이 먹태의 제철인 셈이다. ⓒ 이철원


먹태를 아시나요?

명태로 황태를 만드는 것이야 다들 아실 테지요. 바로 이 황태를 만들다가 겨울날씨가 포근해지면 미처 어는 시간을 빼앗겨 버린 황태가 속은 노릇하고 껍질은 거무스름한 빛을 띠게 되는데 이를 '먹태' 또는 '흑태'라고 부른답니다.

바싹 얼지를 못하다 보니 오히려 살결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술안주로 제격이지요. 그러니 겨울바람 세차게 불던 황태덕장에 봄기운이 삐끼처럼 파고드는 요즘이 먹태에게는 제철을 만난 셈입니다. 날씨의 변덕으로 만들어졌다 하여서 강원도 산지에서는 '바람태'라고도 부른다는 이 먹태가 봄바람에 살랑이던 제 입맛에도 맛바람을 솔솔 넣어주었습니다.

환상궁합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넣은 간장소스는 먹태를 더욱 맛나게 한다. ⓒ 이철원


먹태는 보들보들한 속살에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넣은 간장소스를 찍어먹으면 그 맛이 더욱 일품입니다. 가늘게 찢은 먹태살에 얇게 썬 청양고추를 마치 반지처럼 걸어서 먹으면 먹는 재미도 있고 매콤하며 고소한 먹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고추소스가 맵다 보니 계속해서 손이 가고 또 매워서 또 먹고... 그러다보니 먹태가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라고 합니다. 저는 막걸리하고 삐딱궁합을 맞추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막걸리하고도 환상궁합이네요.

'먹태'를 탄생시킨 변신의 귀재, '명태'는 그 별칭도 다양합니다.

봄에 잡은 춘태, 가을에 추태, 얼린 동태, 갓 잡은 생태,말린 북어(건태),너무 마른 깡태, 그물로 잡은 망태,낚시로 올린 조태, 동짓달에 잡은 동지태, 새끼 노가리, 강원도에서 잡은 강태, 꾸들꾸들 말린 코다리,말리다 땅에 떨어진 낙태, 몸뚱이가 부러진 파태, 잘못 말려 속이 망가진 골태, 멀리서 잡은 원양태,가까운 바다의 지방태, 얼렸다 녹였다 황태, 황태중에도 제일 작은 엥치, 좀 더 큰 소태, 중태, 대태, 특태, 먹태, 흑태, 바람태, 백태 등... 아마 명태처럼 다양하고 재미난 이름을 가진 녀석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술안주로 제격인 먹태맥주와 잘 어울린다는 먹태는 막걸리와도 조화를 잘 이룬다. ⓒ 이철원


먹태의 속살을 열심히 찢어 먹다 보면 드디어 '먹태'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껍질이 드러납니다. 먹태의 또 다른 뒷맛인 아삭아삭한 겉껍질의 미각이 이제 먹태를 아껴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줍니다. 먹태 껍질과 함께 먹태예찬이 끝나갈 때쯤이면 고 변훈 선생님의 <명태>라는 가곡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크~/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짜악 짝 짖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명태~ 헛, 명태~라고/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 시)

발표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선율로 한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서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 노래를 저는 좋아합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난한 시인의 안주로나마 정체성을 남길 수 있으면 족하다는 명태의 삶은 가히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요즘이 마치 선거철입니다. 명태같은 사람들이 정치라는 바다에 뛰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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