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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1주일 앞두고 정부가 선거개입했다"

선관위가 '하지 말라' 했는데도 기재부 강행... 야권, 청와대가 지시?

등록|2012.04.05 17:45 수정|2012.04.05 17:45

▲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자료사진). ⓒ 권우성


4·11 총선을 일 주일 앞두고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5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전날 기재부가 "정치권의 복지공약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을 두고, "유권자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선거결과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기관을 포함한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를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야권을 겨냥한 기재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재부가 발표를 총선 뒤로 연기하라는 선관위의 요청을 묵살한 사실도 밝혀져,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5일 "기재부가 선관위의 만류 요청을 묵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하자,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선관위 "'기재부의 복지공약 평가'는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 김동연 기획재정부 차관이 4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FTA활용지원 정책협의회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김동연 기재부 제2차관은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3차 복지 태스크포스 회의결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발표한 복지공약을 모두 시행할 경우 향후 5년 동안 최소 268조 원이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출범한 복지 태스크포스는 기재부가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선심성 공약'으로 규정짓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이유로 설치한 것이다. 당시 복지 확대 정책을 내건 야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활동은 계속됐다. 복지 태스크포스는 총선을 일 주일 앞둔 4일 3차 회의를 열고 발표를 강행했다.

김동연 차관은 "(정치권의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재원조달을 감안하더라도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판단된다", "추가증세 또는 국채발행이 불가피해, 새로운 조세부담과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차관은 선거중립 의무 위반을 우려한 듯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5일 전체위원회의를 열어 기재부의 이 같은 발표는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에 위반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공무원 등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와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일을 불과 7일 남겨둔 시점에서 기획재정부가 선거에 참여한 정당의 선거공약을 특정부분에 한정하여 그 소요예산의 추계액이 과다하다는 점만을 부각시켜서 공표한 행위는 그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유권자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선거결과를 왜곡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선관위는 기획재정부에 공무원 등의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이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선관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인정했다.

야권 "박재완 기재부 장관 사퇴" 요구... 이명박 대통령 책임론도

야권은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박재완 기재부 장관과 김동연 2차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5일 오후 논평을 통해 "선관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관이 발표 강행을 하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 없으며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을 리 없다"며 "이명박 정부는 기재부의 발표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가 있었는지, 대통령의 강행 지시가 있었는지 밝히고, 새누리당과의 협의가 있었는지 밝히라"고 강조했다.

김유정 대변인도 "선관위의 자제 요구도 무시하고, 선거 개입에 앞장선 'MB 아바타' 박재완 장관과 김동연 2차관을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즉각 해임하지 않을 경우, 청와대의 선거개입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도 이날 논평을 통해 "(기재부의 발표는) 총선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 관심사인 복지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명백한 '신종 선거개입'이자, '복지=포퓰리즘'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퍼뜨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야권에 불리한 영향을 주려는 저열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선거중립 의무 위반 '노무현 대통령 탄핵한 새누리당은...

▲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4년 2월 2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불법 선거개입과 관권선거를 중단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 등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노무현 대통령 불법선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거중립 의무 위반은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주요 사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선관위는 이날 기재부에 대한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내리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다룬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4·15 17대 총선을 두 달 앞둔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선관위는 이를 두고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를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4·11 총선 서울 종로 새누리당 후보이기도 한 당시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탄핵 사유가 갖춰졌다"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한편, 새누리당은 기재부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파장을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의 선긋기에 나섰다. 이상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5일 "기재부는 정부기관과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보살피며, 청년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데 매진하길 바란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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