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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면적 선거구, 통큰 유세가 필요해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후보들

등록|2012.04.09 11:42 수정|2012.04.09 13:53
[기사 수정 : 9일 낮 12시 30분]

19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1일을 5일 앞둔 6일, 후보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부산해지고 있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에 출마하는 후보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이번에 2선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이고, 또 한 사람은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에 두번째 도전하는 민주통합당 정태수 후보이다.

한기호 후보는 지난 2010년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현재 20개월째 현역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정태수 후보는 역시 7·28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한 후보와 다시 승부를 겨루게 됐다. 정 후보 역시 정치 초년생은 아닌 셈이다.

한기호 후보는 군단장 출신이고, 정태수 후보는 교사 출신이다. 두 사람 다 철원군 출신으로 선후배지간이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여정이 다른 만큼, 특정 사안을 대하는 정치적인 견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한미FTA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 시장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 ⓒ 성낙선


한기호 후보는 국회에서 당당히 '찬성'표를 던졌다. 축산 농가 등 지역 경제에 큰 피해가 돌아가는 걸 알지만, 국가 경제를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정태수 후보는 지역 특성상 한미FTA로 큰 피해를 입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재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차이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드러난다. 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생각이고, 한 사람은 "남북 관계 경색으로 지역 경제가 상당히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보고 있다.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는 소위 '접경지역'으로 불린다. 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는 4개 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였다. 이 지역은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특성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다.

수행비서도 잘 모르는 유세 일정

두 사람은 현재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선거구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그 면적이 무려 서울의 7배다. 단일 선거구로는 면적이 전국 최대다. 서울만 해도 48개의 선거구로 쪼개져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두 후보는 확실히 좁은 서울 바닥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후보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선거 유세 방식이 어딘가 모르게 방만한 듯 시원시원해 보인다.

▲ 시장 안에서 엿장수 장단에 맞춰 주민과 함께 춤을 추는 정태수 후보. ⓒ 성낙선

한기호 후보의 하루 일정은 수행비서 자신도 잘 모른다. 후보가 그야말로 '도깨비'처럼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지역이 지나치게 방대한 탓에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정태수 후보는 멀리 뛰데 한 곳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일정이 매우 단순하다.

도깨비처럼 돌아다니든 한곳에 집중하든, 이처럼 방대한 지역에서 선거 유세를 하려면 누구든 그야말로 동분서주하는 식으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지역구가 좁고, 인구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지역에서 후보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인구 밀도가 낮아, 장날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과 장소를 찾지 않으면 사람들 만나기 어렵다. 막바지 선거 유세로 바쁜 두 사람의 후보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천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장날이었으니 망정이지, 그 넓은 지역에서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후보들을 도대체 무슨 수로 만나랴.

와수시장 장터(철원군 서면), 멀리서 흰색 점퍼를 입고, 바쁜 걸음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척 봐도 한기호 후보다. 한 후보는 특이하게도 새누리당 후보 중에 흰색 점퍼를 입고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박근혜 선대위원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선출직 후보들이 붉은색 점퍼를 입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다.

한 지방신문에서는 그가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니는 이유가 "철원 등 4개군의 접경지역 특수성상 '빨간색=빨갱이'로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한 후보는 그런 말을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럼 왜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흰색이 좋아서"라는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답변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는지 뒤따라오던 수행비서가 "부인은 붉은색 점퍼를 입는다"고 덧붙였다.

▲ 시장 안 한 주점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 ⓒ 성낙선


"한미FTA에 찬성해 표 못 주겠다"

한 후보는 장터로 들어서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잡고 흔들었다. 시장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 모습에서 군단장 출신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중에는 더러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은 반갑게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와중에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그의 팔을 붙잡고 술자리로 이끌었다. 한 후보는 유세 중이라 바쁘다고 하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 갑시다"하며 흔쾌히 따라나섰다. 꽤 친근감이 있어 보이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장터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출현을 반긴 것은 아니다.

한 아주머니는 "한 후보는 좋아하지만, 한미FTA에 찬성표를 던져서 표를 못 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한 후보는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때 같은 동네에 살던 아주머니라는데, 그런 사람에게서 직접 표를 못주겠다는 소리를 듣자 난감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그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또 자리를 옮겨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시장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차량 유세는 시장 근처 삼거리에서 진행됐다. 그는 이날 유세에서 자신이 왜 한미FTA에 찬성표를 던져야 했는지 꽤 길게 설명했다. 시장 유세 중에 들은 말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는 "철원군 1년 예산이 2300억 원 정도인데, 그 중 우리 철원에서 거둔 예산이 300억 원 수준이고 나머지 2000억 원은 돈 많은 사람이 낸 세금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기업이 전자칩 팔고, 핸드폰 팔고, 자동차 팔아서 벌어들인 돈으로 철원군이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농업과 축산 부문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두려워, 해외시장을 넓히는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이날 유세에서 민주당의 정책이 "우리와 안 맞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서 군인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철원군에서만 1개 사단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해 지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은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하고 핵을 개발한다고 하는데도 일언반구가 없다"고 비난해 지역 주민들의 안보의식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한 방송사와 인터뷰 중인 민주통합당 정태수 후보. ⓒ 성낙선


"11.7%p차,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정태수 후보 역시 먼저 시장골목으로 들어서 시장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유세를 시작했다. 그 역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개중엔 학교 제자와 학부모도 있었다. 올해 스무 살이라는 한 제자는 이번에 투표권이 생겼다며 "꼭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후보가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학부모였다는 한 아주머니는 딸이 직접 썼다는 편지를 후보 손에 전해주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후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편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그 편지를 받고는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는 한미FTA와 관련해 한기호 후보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요즘 농촌이 너무 어렵다"며 정부와 새누리당이 "농촌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FTA를 강행 처리"한 것을 비난했다. 그는 농촌이 망가지면 강대국에 식량 주권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한미FTA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이라 지역 경제가 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상이 걸리면 (군인들의 외박 외출이 금지돼) 시장 경기가 가라앉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북한과 싸워서 될 일이 아니고, 한민족이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공존공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 경제에도 '평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강원도 내 5개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난 5일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한기호 후보다. 지난 달 3월 31일부터 이 달 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 후보는 41.0%의 지지율을, 정 후보는 29.3%의 지지율을 보였다. 지지율 격차가 11.7%p이다.

한 후보는 이런 격차를 의식하고 유세에서 "(마지막까지) 압도적인 표차로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영원한 고향 김화, 어르신 분들께 지지를 부탁한다"며 단상을 내려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청중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정태수 후보는 "유세를 다니면서 바닥 민심이 현 정부를 떠난 걸 확인했다"며, "여론조사가 응답률이 낮은 데다 유선전화로 실시한 것이라 정확성이 떨어진다"며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 역시 단상을 내려가 청중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는 유세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1%의 가진 자, 특권층이 아닌 99%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역설했다.

이 지역은 구인호 전 강원도의원이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던 곳이다. 그런데 구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선거조직인 선진국민연대의 사무처장을 맡았던 전력이 문제가 돼 후보 자격이 박탈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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