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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간 데 없고 '개발'만 나부끼나

[4·11총선] 충북 제천·단양 후보별 공약 분석

등록|2012.04.09 08:56 수정|2012.04.09 17:43

▲ 제천시?단양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지난달 29일 일제히 현수막을 내걸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 진희정


한 대씩 건너뛰며 14·16·18대에 당선된 '퐁당퐁당 국회의원'이 징크스를 깨느냐, 300표 차 역전신화가 재연되느냐? 19대 총선 충북 8개 선거구 가운데, 제천시·단양군은 새누리당 송광호 후보와 민주통합당 서재관 후보의 '리턴 매치' 지역으로 주로 언급된다. 송광호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연임'을 노린다면, 지난 선거에 불출마했던 17대 국회의원 출신 서재관 후보가 8년 만의 '재신임'으로 맞붙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전·현직 두 의원을 겨냥한 캐치프레이즈 '너희가 무엇을 했느냐'를 내건 자유선진당 정연철 후보와 공무원 출신 무소속 이창수 후보가 변화를 주장하며 출마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제천·단양에서는 새누리당(한나라당) 출신 후보들이 거의 당선됐지만, 17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서 후보가 한나라당 송 후보를 245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전적이 있어, 4월 11일 선거결과는 아직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선거판이 송 후보에 대한 서 후보의 설욕전으로 풀이되면서, 제천·단양지역구는 다른 격전지와 마찬가지로 공약정책보다는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되고 있다. 이에 서면 인터뷰를 통해, 네 후보의 주요 공약과 지역 현안을 분석했다.

'관광지 개발'은 공통, '사회적 약자 보호' 실천의지는 '글쎄'

▲ 새누리당 송광호, 민주통합당 서재관, 자유선진당 정연철, 무소속 이창수 후보의 주요 공약들. ⓒ 진희정


후보들의 대표 공약을 살펴보면,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들이 공통분모임을 알 수 있다. 네 후보 모두 제천·단양의 자연요소를 자원화하고, 관광산업을 지역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송 후보는 제천 청풍호와 단양 수중보를 중심으로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전국 어디서나 찾아올 수 있는 교통망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대형레저사업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서 후보는 2008년 충북의 대표 민자유치사업이었던 한류테마파크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후보는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을 바탕으로 강원랜드가 설립된 것처럼 석회·폐광특별법을 발의해 단양에 카지노를 유치하고, 이 후보는 명소 100곳을 선정해 관광인프라를 구축할 방침이다.

"주5일 근무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체험형 관광이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개발한 관광도시가 필요하다."(서재관) 

"환경만큼이나 주민이익과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절충이 필요하며, 낙후된 제천단양의 발전 정도를 생각해 개발 쪽으로 더 고민해야 한다."(송광호)

▲ 전?현직 국회의원 출신 송광호 후보와 서재관 후보가 4.11총선에서 다시 맞붙었다. ⓒ 선관위


문제는 후보들이 지역의 관광자원화를 '보존 대 개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만 접근한다는 점이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부 자연훼손은 감수해야 하며 대신 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태도이지만, 실상 공약한 사업들의 내용을 보면 상황이 매우 다르다.

청풍호 20개 지점을 개발해 생태관광벨트로 만들겠다는 송 후보 공약은 예산확보 근거나 이행 가능성 측면에서도 의심스럽지만, '녹색'을 표방하는 것과 달리 정작 생태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서 후보의 한류테마파크 '차이나월드' 계획은 2008년 당시 수익성이 없어 사실상 기업들이 투자를 포기했던 사업을 재추진하는 것인데, 드러났던 문제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서 후보의 단양수중보 테마파크 조성 공약과 정연철 후보의 카지노 유치계획은 지역 고유의 관광자원이나 특색과도 무관하다. 위락시설의 '대형화'만을 추구하는 시설사업이라는 지적에 대해 후보자들은 기본적으로 '관광 개발이 지역의 경제적 이익'이라고 답하면서,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 자유선진당 정연철 후보와 무소속 이창수 후보는 양대 정당 소속 후보와는 다른 변화를 주장하며 제천?단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 선관위


"관광지 만든다고 자꾸 파디비는 게 능산가..."

유권자들 중에는 이처럼 토목건설이 중심을 이루는 관광개발사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방송사가 주관한 후보자토론회를 보고 주요 공약을 파악했다는 박연희(51·제천시 고암동)씨는 후보들의 개발 중심 관광정책에 대해 우려한다.

"우리 지역이 이 좋은 자연으로 관광(산업)을 키워야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개발한다고만 하니까 좀 걱정돼. 롯데월드만 한 놀이시설이니, 카지노니 하는 게 진짜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관광지 만든다고 자꾸 파디비는 게(파헤치는 게) 능산가 싶기도 하고. 이리저리 도로 뚫고 넓히고 건물 세우고 시설 짓고, 그래 놓고 텅텅 빈다는 소리를 뭐 한두 번 들었어야지."

후보들은 각자 추진하려는 관광사업뿐 아니라 제천·단양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배후도시로 기능하기 위해서라도, 교통망을 확충해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보들은 막상 그 도로나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의 타당성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예산확보에 대해서도 큰소리만 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4·11총선에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고영훈(20·남·제천시 모산동)씨는 후보들의 엇비슷한 개발공약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저 같은 경우만 해도 팟캐스트 덕분에 정치에 많이 친숙해져서 투표를 꼭 하려고 할 정도로 이미 국민들은 많이 학습돼 있는데, 후보들은 여전히 뭘 지어준다, 지원을 늘리겠다는 공약만 내세워요. 지역 선거판을 보면 시민들이 정치에 무심하던 과거에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요. 전 국민이 복지를 얘기하는데 지방에선 아직도 개발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식이에요."

▲ 제천?단양 국회의원 후보들은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개발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 선관위


고씨 말대로 유권자의 정치의식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선심성 개발공약이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실은 제천·단양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단양수중보 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근 주민의 최대 관심사인 수중보는 2010년 착공된 소규모 댐으로, 단양지역 충주호 수위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17대 국회에서 서 후보가 확정한 사업을 송 후보가 자신의 16대 임기 중에 확정됐다고 선전해 허위사실 유포 논란이 일었는데, 후보들이 건설사업에 대한 유권자의 표심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양수중보 일대 개발이 지역민의 숙원사업인 것도 사실이다.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관광을 위한 개발이 지역민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후보들이 관광객을 끌어들일 유인책으로 개발을 주장하는데, 도로가 좋으면 머무르지 않고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체류형 관광이 될 수 없죠. 제주 올레길이 접근하기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까요? 요즘은 느리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 훼손 안 된 자연 그대로를 체험하는 '에코투어'를 관광객이 선호합니다.

보로 물을 막아 신단양까지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수중보 관광개발은 기본적으로 가둬지고 정체된 물이 일으킬 오염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데 아무도 그런 고민은 없죠." 

유권자는 각성하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무는 후보들

▲ 제천?단양지역의 시멘트공장 인근 주민들이 공해병 피해를 호소하면서,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시멘트 피해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진희정

제천·단양 후보자 초청토론회들을 보면 지역 내 지정폐기물업체 논란에 관한 의견을 묻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단양군이 매포읍 신소재 지방산업단지에 허가해 운영중인 지정폐기물업체는 입주부터 지금까지 인근 주민들의 저항이 심하다.

또 시멘트공장 인근 집단공해병 문제도 대책이 시급한 민생문제다. 지난해 12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국내 최초로 제천 시멘트공장 측에 '공해병 피해 배상 권고'를 내렸지만 행정소송으로 대응하면서 해결이 묘연해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과 한살림 등 21개 충북 환경단체들이 모인 '2012충북유권자초록행동'은 후보자들에게 지역의 핵심환경정책과제를 제시하면서 '시멘트 피해지역 보상 및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두 사안에 대한 서면 질의에서 송 후보는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견해만 밝혔을 뿐, 피해사실을 규명하거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서 후보는 시멘트피해특별법 제정에 동의하면서, 일자리 창출 명목일지라도 유해기업에 대해서는 입주를 반대했다.

정연철 후보는 시멘트 피해를 좀 더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환경부가 '석회피해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창수 후보는 주민과 해당 기업, 지자체의 상생협조가 필요하다는 원칙론만 언급했다. 대부분 후보들은 토론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역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모호한 견해 피력에 그쳐, 전시성 공약 말고는 지역현안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유권자에 의한 공약제안을 권장하며, 매니페스토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선관위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몰려 있는 2012년, 일부 언론은 '99%'의 반격이 시작됐다고들 한다. 실제로 지난 29일 공식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지역의 유권자운동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2012충북유권자초록행동'뿐 아니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한 3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2012총선 충북유권자네트워크'도 한미자유무역협정 폐기와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고속철도 민영화 정책 폐기 등 사회적 현안 30가지를 총선 의제로 제안했다. 단양지역 20-40대 모임인 '청년회의소'는 시민공약을 발굴하고 유권자 선거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점진적인 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역 선거의 양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유권자는 '민생'을 묻지만 후보는 답이 없고, 전·현직 의원 출신들이 다투는 격전지라고 하지만 그들만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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