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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하며

첫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아들에게

등록|2012.04.11 10:26 수정|2012.04.11 10:26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오늘 새벽 부재자 투표를 못했다며 5백리 먼 길 투표하러 오겠답니다. 첫 투표권 행사라며 그 의미를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총선 투표 참여를 강권한 저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은 "아빠가 기차표 좀 예매해 달라"고 합니다. 그 결정의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오가는 교통비는 시골 목회자에게 당장의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아들에게 그런 사실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의 알량한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긴급 숙의(熟議)에 들어갔습니다. 오겠다는 아들 기차표 예매가 부담이 되니까 투표하러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기차표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코레일 누리집을 열 때 '좌석이 다 예매돼 동이 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매 시간마다 표가 넉넉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좌석이 없다면 내려오지 말라는 이유가 될 터인데…. 그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도 아무리 우국충정(憂國衷情)에 젖어 있다곤 하지만 표가 없으면 어떻게 내려가겠느냐고 얘기했는데 말입니다.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몇 시 차표를 끊으면 되겠느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는 오전 11시쯤 하행선 기차표를 끊어 달라고 했습니다. 올라가는 표는 시간을 봐서 끊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큰 아이가 생애 첫 투표를 하러 내려오게 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칭찬해 줘야 할 일이겠지요. 첫 투표권을 몹시 행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난 10일, 지구 상 수억 명의 소통공간이라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긴 제목의 글이었지요. '젊은이들이여, 투표로 그대들의 의사를 표시하라!' 좀 선동적인 말맛을 풍기는 제목입니다. 젊은이들의 처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자라나는 세대에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세대들에게 말로만 불만을 표출할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젊은이들의 생각을 표현하라고 권합니다. 투표가 그 행동 표출의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젊은이 상을 주문한 것입니다.

제가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선거를 생각해 봅니다. 3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말엽이었습니다. 공포정치가 횡행하던 시절, 표현의 자유라곤 유리 상자 속 박제물처럼 포박당하고 있던 시절, 저는 기권을 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나의 투표권 행사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좋은 이론도 실천으로 옮기는 데 제약을 당해야 하는 풍토였습니다. 총칼로 국민을 겁박하는 분위기이지만 그곳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박정희 군사 독재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채처럼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팍스 로마나처럼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은 착각에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꼬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한 측근의 총 소리 앞에 그렇게 강고하게만 보이던 독재의 성채가 무너진 것입니다. 이건 독재자 박정희의 비극만은 아닙니다. 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비극, 현대사에서 없었으면 좋았을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독재자의 딸이 그런 과거는 깡그리 사상(捨象)한 채 여당의 대표가 돼 표를 몰고 다닙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좋지 않은 과거는 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듯, 국민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환호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비정상적 국민들처럼 여겨집니다. 정치는 가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정치인들은 과거가 중요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중요합니다. 여기엔 박근혜도 예외가 아닙니다. 독재자의 딸이 국민 앞에 지도자로 서기 위해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참회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그런 참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당 일색인 표심 앞에 재미없는 선거가 치르질 수밖에 없는 지역 현실에서 아들의 표가 어떤 역할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그도 젊은이에 속합니다. 어려운 농촌 목회를 하는 아빠의 입장에서 그의 투표권 행사를 금전의 논리로 잠시나마 생각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제 아들이 젊은이의 의사를 투표로 말하려는 것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젊은이는 장래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사람들입니다. 제 아이가 열악한 현실 조건을 극복하고 투표로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대견하게 여겨집니다. 투표로 말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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