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인 나, 진짜 투표하기 싫었다
[주장] 대학생인 내가 총선에 실망한 이유...20대 투표율도 논란
▲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넘는 152석(비례대표 2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당직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뭔가 다를 줄 알았다. 태어나 두 번째로 표를 행사한 총선, 대학생으로 치르는 마지막 총선인 이번 19대 총선을 두고 했던 생각이다. 여야가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기 전인 올 1월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쇄신'을 내걸고 정강과 당명까지 변경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야권 역시 '정권심판'을 기치로 내걸고, '통합'과 '연대'를 통해 지지율을 한껏 끌어 올렸다.
청년들이 정치권에 진입해 화제가 되는 일도 있었다. 27세의 이준석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고대녀'로 유명한 김지윤은 통합진보당의 청년비례대표 경선에 참가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대학생으로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돌이켜 보건대, 변한 것은 없었다. 야권의 패배로 끝난 선거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뭔가 다르겠지'라고 섣불리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이다.
[무엇이 변하지 않았나 ①] 정책이 사라지고 '네거티브' 만 난무
결국 이번 선거도 '정책선거'가 되지 못했다. 한 달 전인 3월 12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제19대 총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가해 악수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 총선은 과거의 구태 정치와 달리 '정책선거'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책은 간데없고 험담만 나부꼈다. 정책에 관련된 공약(公約)은 찾기 어려웠고, '투표율이 오르면 스타일을 바꾸겠노라' 식의 일회성 공약(空約)만 보도됐다. 물론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의혹이 제기된 후보에 대한 답변 없이, 서로 물어뜯기에만 바빴다. 각자의 정책에 대한 검증전을 기대했던 대학생 입장으로선 못내 아쉬운 부분이었다.
정치권의 '전략 공천' 후보들 역시 이에 일조했다. 각 당은 야심 차게 '뉴 페이스'를 영입했지만 몇몇 인사는 각종 의혹과 자질 논란으로 '트러블 메이커'로 전락했다. 선거 과정에서 이들은 '엑스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본인만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도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문대성의 논문 표절 논란, 하태경의 친일 발언 논란, 김용민의 막말 논란 등은 선거 과정 전체를 '네거티브전'으로 바꿔 버리기에 충분했고, 결국 이번 총선을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무엇이 변하지 않았나 ②] '말잔치'로 끝난 청년 인사 영입
▲ 4.11 총선에 출마하는 새누리당 문대성(부산 사하구갑) 후보와 손수조(부산 사상) 후보가 3월 27일 오후 부산 남구 부산시당 강당에서 열린 '부산시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해 박근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9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2030세대는 총 9명. 지역구 당선자가 3명(새누리당 부산 사하갑 문대성, 새누리당 부산 금정 김세연, 민주당 경기 광명을 이언주)이고, 비례대표 당선자가 총 6명(새누리당 김상민·이재영·이자스민, 민주당 김광진·장하나, 통합진보당 김재연)이다. 게다가 9명 중 새누리당 김세연 당선자는 재선이다. 중앙 무대에 새로 진출한 정치 신인은 8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제18대 국회의 30대 의원은 총 7명이었다. 수치상으로는 이번 총선의 9명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청년 정치인을 국회에 입성시켜 2030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화려한 말뿐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들에게 '총선 승리'는 '청년 문제 해결'보다 큰 지상명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청년 국회입성을 통해 등록금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에 대한 작은 변화를 기대했던 대학생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변하지 않았나 ③] 진달래 핀 동부 전선, 개나리 핀 서부 전선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꼭 당선되길 바라왔던 후보가 몇 있다.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던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당선이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고, 여론조사 결과도 기대할 만 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무너졌다. 각각의 지역구를 당선된 정당의 색으로 표시해보면 상황은 보다 뚜렷해진다. 부산과 경남에 노란 점 3개가 찍혀있는 것을 제외하면, 동쪽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강원·경북·경남·대구·부산·울산의 총 76석 중 부산의 민주통합당 당선자 2명과 경남의 1명, 거제의 무소속 당선자 1명을 제외한 72석은 모두 새누리당이 가져갔다. 반면 호남과 제주의 33석은 민주당과 야권단일후보 당선자가 29명이고, 민주계 무소속 당선자가 2명,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2명이다. 기대했던 지역구도 타파는커녕, 지역구도가 오히려 더 공고해져 버렸다.
지역구도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이 되기도 하고,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나돌아, 공천 과정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못내 아쉽다. 구시대와의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던 선거가 결국, 구시대로의 회귀가 되어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 날씨가 개면서 분주해진 대학동 제3투표소 ⓒ 손태영
총선, 잔치는 끝났다. 소문난 잔치였고, 먹을 것 없는 잔치였고, 말잔치였고, 변한 것 없는 잔치였다, 이번 잔치에서 이루지 못한 과제들은 올곧이 다음 총선으로 이월될 것이다.
개표가 진행되며 각 포털사이트의 댓글란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떠돌았다. 20대의 투표율이 27%고 특히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8%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긴 했지만, 그 루머 때문에 하룻밤 내내 20대는 온라인 상에서 '원흉'이 되어 모진 욕을 들어야 했다.
투표, 물론 해야 한다. 고민 끝에 한 표를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이번 선거에선 투표를 하기 싫었다. 귀찮다기보다는, 이번 총선에 임하는 정당들의 선거전을 바라보며 '아, 저렇게 하면서도 투표하기를 바라나'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20대 투표율이 낮다고 욕할 것만 아니라,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투표하고 싶게 만드는 선거'를 보여 달라는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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