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MB' 세력, 이게 문제였다
[게릴라칼럼] "왜 너희들 지지해야 하나" 답 못 줘...140석으로 희망 만들어야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등 지도부가 11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탓일까, 기대가 근거 없이 컸던 탓일까? 4월 11일 밤은 탄식과 당혹감으로 흘러갔다. 평소 술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술잔을 거부할 수 없었던 밤. 그 밤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무력감은 어쩔 수 없다.
선거 결과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야권의 참패다. 새누리당은 어느 때보다 불리한 구도에서 선거가 치러졌음에도 매우 유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2008년 총선에서의 153석보다 단 1석이 적은 152석을 얻어 냈다. 반면 1당을 자신했던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는데 그쳤고, 야권연대 대상인 통합진보당의 의석수 13석을 포함해도 140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먼 산만 바라보거나 패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만 돌리고 있을 수는 없다. 속이 쓰리더라도 패배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다시 새로운 희망의 근거를 찾아봐야 한다. 총선에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목표는 좌절되었을지라도, 야권에게는 18대 총선에서의 86석(통합민주당 81석 + 민주노동당 5석)보다 54석이 늘어난 140석(민주통합당 127석 + 통합진보당 13석)이 있다.
'말 바꾸기 세력'에 담긴 진실
야권의 총선 패배에 대해 여러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지엽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무엇보다 '반MB'를 넘어선 새로운 비전으로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투표하지 않은 46%의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부나 새누리당에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 낼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국민들로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야권이, 이명박 정부와 다른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줄 것인지 알 수 없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야권에 대한 새누리당의 '말 바꾸는 세력'이라는 비판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한미FTA에서부터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은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야권의 변명은 중립적인 국민들의 눈높이서 볼 때 턱없이 부족했고 안일했다.
반MB를 외쳤을 뿐, 그것을 넘어 어떤 새로움을 창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심지어 기성정당과 차별화된 정치적 포지션을 누리고 있던 통합진보당마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하기보다 세부적 정책수준으로 프레임을 협소화시키면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진보신당과 녹색당 등도 차별화의 구호만 존재했을 뿐 패러다임 차원의 문제제기는 부재했거나 힘에 부쳤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이양희, 이준석 비대위원, 당직자들이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반면 새누리당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붉은색을 당의 새로운 색깔로 수용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와 새로운 변화를 이미지 메이킹 하는 데 승부를 걸었다. 물론 내부에서는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외형적으로는 변화 의지를 피력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진보정당에서나 나올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구호를 거리낌 없이 수용함으로써, 야권의 차별화 전략을 무력화 하는데 일조했다. 결국 야권은 변화를 갈망하고 여권은 안정을 목표 삼았지만, 외부로는 정반대의 메시지가 표출된 것이다. 야권은 새로움이 없었고, 여권은 변화를 선포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야권의 패착은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내용을 당위나 전제로 제시해 버린 안일함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과연 너희들이 그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데도, 야권은 "정권이 싫으면 우리를 찍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끊임없이 '2013년 체제'를 외쳤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새로운 체제는 내용 없는 빈껍데기로 남아있다. 야권은 선거 초기 공천 문제에 매몰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 국민들은 4년을 기다려 왔지만, 야권은 마치 평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 마냥, 시간에 쫓기면서 반MB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 너희들 지지해야 하나" 답 줘야
물론 이런 평가는 모두 결과론적인 것일 수 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진행된 수많은 일들은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위한 것이었다. 사상 초유의 방송사 동시 파업을 불러온 언론통제나 대대적인 사찰은 모두 2012년 정권 재창출을 향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새누리당의 막강한 지역조직은 구호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견고한 벽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야권은 이런 문제를 상수로 간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희망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야당의 승리는 정권심판의 한 가닥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라는 지리적 특성과 거주지와 근무지가 분리된 구조적 특성은 서울 지역 유권자들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중앙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이른바 '지상전'보다는 '공중전'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이 다른 어떤 선거보다 공중전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권의 대선 전망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문제는 혁신이다. 박근혜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은 총선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스스로 변화의 주체임을 자임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별 것 아닌 변화나 정책도 국민 눈높이에서 본다면 대단한 혁신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우리 마음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야권에게서는 새로운 변화의 의지를 읽기 어려웠다. 국민들은 지금의 야권이 보여줄 수 있는 변화의 최대치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 정도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변화로는, 정치 무관심을 극복할 만한 희망과 야권에 대한 지지 의지를 발휘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혁신뿐이다. 야권 스스로의 혁신은 물론, 한국 정치 전반의 새로운 판을 제기해야 한다. 껍데기뿐인 2013년 체제의 내용을 하루 빨리 채워 넣어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세세한 숫자 싸움이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 정책 내용보다는, MB 이후에 뭐가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포괄적 비전이 필요하다. 그래서 "왜 너희들인가?"에 대한 국민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야권에겐 아직 140석이 있다
▲ 19대 국회의원선거 정당별 의석수 ⓒ 이은영
총선 패배라는 절망스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야권에겐 아직 140석이 있다.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최소한 18대 국회보다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 4년을 기다려온 결과가 다시 4년의 연장이라는 실망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찾아야 할 것은 패배와 실망감을 표출할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혁신과 희망의 근거다.
오늘의 패배를 교훈삼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바꿔야할지를 확인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고하지 못하고, 구도의 힘에만 편승하려 했던 오류를 되짚어봐야 한다. 무엇보다 야권의 전략이 야당도, 여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여전히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4월 11일의 패배는, 그 패배가 아니었다면 어느 미래에 닥쳐왔을 수도 있을 더 큰 위기의 경고일 수 있다. 최소한 이렇게 믿는 것이,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더 좋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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