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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한복판에서 생리대 찾은 남자... 왜?

[생명누리공동체 인디고여행학교 인도여행기22] 인도의 수도 델리

등록|2012.04.13 14:48 수정|2012.04.14 18:34

▲ 붉은 성 모습. 경비가 삼엄하다 ⓒ 오문수


인구가 1300백만 명에 달하는 델리는 인도의 수도다. 그러나 거대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그리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다. 고대의 향기와 전근대적 혼란, 그리고 세련된 현대적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델리는 지리적으로 갠지스강의 지류인 야무나강 서쪽 기슭에 있다. 이 도시는 펀잡 지방과 갠지스강 유역의 교통의 중심지여서 고대부터 이 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델리는 영국이 만든 계획도시로 알려져 있으나 계획도시로서의 델리는 뉴델리의 중심 구역일 뿐 인구의 대부분은 올드델리와 뉴델리에 있다. 인도인들에게 델리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도시다.

과거 오늘날의 델리 자리에 있었던 수도급 도시만 해도 7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오래된 도시는 3000년 전에 존재했던 '인드라프라스'로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하기도 했다. 인드라프라스는 17~18세기에 이슬람교 무굴제국의 수도로서 특히 번영했으며, 1912년에 콜카타를 대신해 당시 영국령 인도 전체의 수도로 정해져 더욱 발전했다. 1931년에는 남쪽 교외에 새로운 도시 뉴델리가 건설돼 정식 수도가 됐다.

델리는 크게 올드델리와 뉴델리로 나뉜다. 올드델리가 무굴제국 시절의 사연을 품고 있는 중세풍의 도시라면 뉴델리는 신도시의 매력을 품고 있다. 올드델리의 나선형 도로망과 뉴델리의 대각선 도로망이 두 곳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슬픈 역사를 간직한 '붉은 성'

우리 일행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올드델리 지역만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로 했다. 올드델리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코스 중 하나는 붉은 성(Red Fort)이다.

무굴의 황제이자 건축광인 샤 자한이 17세기 중반에 10년 동안 공들여 지은 이 성은 성벽이 2km에 달한다. 이 건물은 샤 자한의 마지막 건축물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이자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늙은 아버지를 폐위시킨 뒤 아그라 성에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 붉은 성내 입구의 상가 ⓒ 오문수


무굴 최고의 전성기에 지어진 붉은 성은 1857년에 발발한 세포이 항쟁으로 대부분 파괴됐다. 세포이 항쟁은 인도가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였던 전투다. 당시 영국군은 무굴의 모든 상징을 없애려는 듯 엄청난 포격을 가했다고 한다.

번화가 찬드니 촉... 엇갈리는 평가

붉은 성과 마주보고 있는 대로인 찬드니 촉은 샤 자하나바드 시절에 가장 번화했던 거리다. 일행 중 한 학생(경훈)이  치아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나와 경훈이는 붉은 성 관광 도중 일행과 떨어져 찬드니 촉에 있는 치과를 찾았다.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델리의 유명한 거리인 찬드니 촉. 그래도 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입이 쩍 벌어진다 ⓒ 오문수



▲ 찬드니 촉의 거리에는 너무 혼잡해 차를 멀리 주차하고 배달꾼들이 가게까지 배달한다. 머리와 양팔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들고 배달하는 사람의 모습 ⓒ 오문수


올드델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중 하나인 이 일대는 구역에 따라 금은 장신구 골목, 결혼 예물 및 결혼용품 골목으로 나뉜다. 사람들과 호객꾼, 릭샤, 트럭에서 물건을 나르는 짐꾼과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 차들이 어떻게 다닐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

인도에서 한 달 가량을 지내 많이 적응이 돼서 그렇지 만약 인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델리를, 그것도 찬드니 촉부터 방문했으면 기절초풍하지 않았을까. 아그라에서 만난 한국 대학생은 인도여행의 첫 방문지로 델리를 선택했는데,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라며 기겁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도로의 중앙분리대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 차가 막혀 오가지 못해도 화를 내지 않고 그저 기다려 주는 사람들, 도저히 화장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화장실에서도 사용료를 받는 사람들, 세상에 나온 모든 물건들은 다 모여 있는 듯한 상가들….

터진 배탈... 난생 처음 여성용품을 사용했다

인도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은 '물은 꼭 사먹어라'이다. 일전에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는 절대로 사먹지 말라, 꼭 먹고 싶으면 가게에 들어가 포장된 음료수를 사먹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식당에 들어가면서도 물을 사먹었다. 물갈이를 해서인지, 불량 음료인지 모르지만 25명의 일행 중 한 번쯤 설사나 감기로 고생 안한 이는 단 두 명뿐이었다.

자이살메르에서 델리까지는 10시간 이상 열차를 타야한다. 야간열차 여행이라 끼니를 두끼나 놓쳤다. 기차에서 장사치들이 먹거리를 팔지만 짜이 외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들의 위생 상태를 잘 알기 때문이다.

▲ 자마 마스지드. 이슬람 사원으로 오후 5시가 넘으면 이슬람교도라야 입장이 가능하다. 신발도 벗어야 한다. ⓒ 오문수


▲ 자마 마스지드 성 앞의 장사꾼들 ⓒ 오문수


굶은데 많이 먹어서일까. '학생들이 설사로 고생을 해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했던 내가 배탈이 났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몸에 큰 문제는 없지만 수시로 나오는 생리 욕구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학생들이 구경하러 다니는데, 동행도 못하고 다섯 끼를 굶었다.

인솔 책임을 지고 있는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행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기에는 불안했다. 하는 수 없다. 여학생한테 사정을 말하고 생리대를 하나 빌려 달라고 말했다. 한 번도 착용해본 적도, 사용법도 모르니 일단 뜯어보고 궁리를 시작했다. '출구'를 막으려면 팬티가 꼭 달라붙어야 하는데 남자 팬티가 어디 그런가. 트렁크 팬티만 가져갔으니 헐렁하고 몸에 붙지 않는다. 하는 수 없다. 팬티에 꼭꼭 붙여서 엉덩이에 밀착하는 수밖에.

다섯 끼를 굶었으니 나올게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웬수같은 '출구'가 수시로 괴롭힌다. 붉은 성 화장실은 시설도 엉망이고, 앉는 자리에 좌대도 없는데 5루피나 달란다. 다른 곳은 1루피나 2루피면 되는데 말이다. 급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화장실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 거리의 장사꾼. 들고가는 삼발이 의자 위에 머리에 이고 가는 물건들을 얹기만 하면 가게가 된다. ⓒ 오문수


찬드니 촉에서 경훈이의 치아를 치료하고 둘이 자마 마스지드를 방문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관계자는 "오후 5시가 입장 마감"이라며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되돌아 나오는데 또 급하다. 입구 옆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가니 20루피를 내란다. 가만히 살펴보니 인도인들은 무료인 것 같다. 화가나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10루피만 내란다.

때마침 저만치서 경찰이 오길래 나는 "화장실 사용료로 20루피를 요구한다, 부당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관리인과 이야기를 나눈 경찰은 "10루피만 달라고 했다는데"라며 능글맞게 웃는다. "여기가 싫으면 바로 옆에 10루피 받는 다른 화장실로 가라"고 말하는 화장실 관리인들. 오기가 생겨 그 쪽 화장실에 갔다. 깨끗하긴 했으나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 깨끗하고 돈도 안 받는 한국 화장실이 그리웠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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