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만 믿지 마라, 정치는 마술이다
[서평] <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를 읽고
▲ 책표지 ⓒ 21세기북스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후고 폰 호프만슈탈은 '정치는 마술이다'고 했다. 이번 4·11 총선을 보니 그 말은 지극히 맞는 것 같다. 마치 없던 코끼리가 튀어나오고, 자유의 여신상이 사라지는 마술처럼 각종 이슈와 현안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나타나며 눈과 마음을 현혹하고 속인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마술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어렸을 때 TV에 나온 유리겔라를 보고 초능력자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결국은 초능력이 아니라 마술, 그저 눈속임이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진짜 초능력은 숟가락 구부리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의 마술이 진짜라고 믿게 하는 능력이 아닐까? 우리는 마술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는다. 그리고 속는다.
<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는 마술의 신경과학을 다룬 최초의 책으로 저자들은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저자들은 마술의 속임수에 빠진 사람들의 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왜 인간의 마음이 속임수에 그토록 취약한지, 또 인간존재에서 '기만'이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마술사가 어떻게 우리 뇌를 해킹하는지 이해함으로써 그와 동일한 인지 트릭이 광고전략이나 기업협상, 정치 또는 기타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검은색 무대 위, 오직 불빛을 받는 마술사만이 보인다. 마술사가 바닥에 놓여있던 흰 천을 들어 펼치자 의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천으로 의자를 덮고 다시 펼치면 젊은 남자가 앉아 있다. 마술사가 칼로 젊은 남자의 목을 베자 피도 한 방울 흐르지 않는데, 남자의 목이 달아나고 몸만 남는다. 남자의 잘린 목을 들고 있던 마술사가 남자의 손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비켜서자 머리가 제자리에 가 있다."
이것은 마술사들이 가장 흔히 이용하는 트릭 중 하나인 착시를 이용한 마술이다. 착시란 현실세계와 맞지 않는 주관적인 시지각을 뜻하는 것이다. 있지 않은 것을 보거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실제와 다른 것을 볼 수도 있다. 착시가 일어나면 보고 있는 대상의 물리적인 특성이 지각과 모순을 빚는다. 한마디로 실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예측하는 기계라는 점이다. 뇌는 현실에 대한 정신적 시뮬레이션, 즉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야기를 꾸며낸다. 즉 뇌는 시각적으로나 그 밖의 다른 양식으로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전 체험과 기억들에 근거를 두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리라고 기대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시뮬레이션으로 의식이 사실에 근거를 두고 충실하게 재현한다고 느끼는 것 역시 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착각이다. 한 마디로 '뇌의 실체는 거짓말쟁이'라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뇌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뇌의 거짓말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것이 눈이다.
시각계는 근사치, 추측, 예측과 같은 것들에 의존해 주어진 순간에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구성하는 상당히 진화된 그러나 조잡한 회로에 가깝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각 눈의 망막에 단순한 이차원적 상이 맺히는데도 세계를 3차원적인 것으로 지각할 만큼 우리 눈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인간의 한쪽 눈은 겨우 1메가 픽셀 카메라 한 대에 해당하며, 결국 풍부한 시각적 체험이란 것은 뇌가 채워 넣는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착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술사들은 이러한 시각계 특성들을 트릭에서 끊임없이 활용한다. 앞의 마술은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검은 천을 조작함으로써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게 하는 대비를 이용한 착시다.
따라서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손에 붕대를 감고,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100석을 채우기도 어려울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마술사가 상자에 들어간 금발미녀를 톱으로 반 토막 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 본능
"무대 위에 오른 마술사가 이야기한다. "제가 동전을 꺼낸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는 머리 위로 오른손을 높이 들고 공중에서 반짝이는 은전을 집어 왼손에 들고 있던 놋쇠 양동이에 동전을 떨어뜨린다. 땡그랑 소리가 나고, 그는 계속해서 은전을 공중에서 집어 땡그랑, 땡그랑 떨어뜨린다. 이상하게도 은전은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나온다."
이 마술은 구두쇠의 꿈이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마술이라고 한다. 이 마술이 가능한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믿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믿으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마술을 저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마술사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가정하려는 것이 관찰자의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사람들은 반복이 실은 반복이 아닐 때도 당연히 반복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려고 하며 그러한 패턴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때는 심지어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인간의 강박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즉 인간은 보이는 진실보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마술사는 이러한 인과관계를 추론하려는 사람들의 본능을 그저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런 성향은 이번 선거에서도 아주 잘 증명되었다. 문도리코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명백한 표절행위를 한 문대성은 새누리당의 옷을 입고 부산에서 당선되었다. '지적 도둑질'이라는 보이는 진실보다는 '그래도 새누리당인데...'라는 보이지 않는 착각을 김용민의 막말이라는 주의분산 효과와 함께 마술사가 적절하게 이용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총선이 끝난 후 '선거의 여왕'이 돌아왔다고 각종 언론에서는 떠들고 있다. 물론 이 언론들이 선거라는 마술에서 한 몫을 단단히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의 지각을 교란시키고, 주의를 분산시켜 마술사가 눈속임을 확실히 하는 보조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술의 법칙 중 하나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방법으로는 속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뇌가 감각잔상을 만들고, 기억은 오류가 있으며, 종종 빗나가는 예측을 해서 태생적으로 잘 속는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번 속지는 않는다. 하여 선거의 여왕이 다음 번에도 뛰어난 마술을 선보일 수 있을지는 자못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 스티븐 매크닉, 수사나 마르티네스 콘데, 산드라 블레이크 지음, 오혜경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2년 3월,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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