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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에서 서울까지... '새벽이 Jr. 이별기'

진돗개 새끼를 모두 분양했습니다... "새벽이 주니어 잘 크길"

등록|2012.04.15 19:19 수정|2012.04.16 18:32

새벽이 Jr. 평생을 함께 살 줄 알고 안심하고 놀던 때의 모습저희 집 진돗개의 이름이 '새벽이'입니다. 지난 2월 초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아 잘 길러 모두 분양하고 남아있던 한 마리 '새벽이 Jr.'마저 지난 4월 12일 넓은 마당을 가진 한 교수님의 집으로 인계했습니다. 그때의 슬픈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새벽이 Jr.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 이명재


'새벽이'는 저희 집 진돗개 이름입니다. 충성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라 10년 넘게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가족이 새벽이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 혹한 속에 새벽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새끼는 수컷 네 마리, 암컷 세 마리의 균형 잡힌 출산이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을 해주었습니다. 멀리 있는 분들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수송 문제 탓입니다.

마지막 두 마리가 남았습니다. 수컷 두 마리. 이 두 마리는 같은 수컷이지만 서로 대조적입니다. 한 놈은 엄마를 닮고 또 다른 한 놈은 아빠를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양부터 달랐습니다. 그 중 예쁘기는 엄마를 닮은 녀석인데, 녀석은 멀리 사는 한 교수님의 것으로 낙점을 찍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컷은 모양은 좀 모가 난듯하나 아빠를 닮아 씩씩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습니다.

교수님 몫으로 남겨 둔 것은 유독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사람 말 잘 알아듣고,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며 무엇보다도 살갑기는 어린 아이 저리 가라였습니다. 아이들이 그 강아지에게만 특별히 엄마의 이름을 붙이고 그 뒤에 2세를 뜻하는 Jr.까지 선물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식 이름이 '새벽이 Jr.'가 됩니다.

저는 처음엔 이 교수님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강아지 한 마리 부탁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수송하기 위해서 차에 실고 가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그것을 가지러 오라고 하기도 좀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분양 시기가 좀 지나기까지 했습니다. 진돗개는 분약 시기를 놓치면 새 주인의 식구가 되는데 상당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쨌든 빨리 전해 드려야 합니다. 서울 볼일이 있어 기차로 다녀오는 길에 '새벽이 Jr.' 수송 문제가 떠올라 역무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강아지를 기차로 수송하는 방법이 있느냐구요.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답을 받았습니다. 종이 박스에 숨통을 뚫고 하룻밤 배를 굶긴 다음 열차와 열차 사이 화장실이 위치해 있는 빈 공간에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랜 숙제가 풀렸습니다.

인천에서 경북 김천까지 강아지를 가지러 오겠다는 교수님을 만류하고 제가 서울 볼일 보러 가는 길에 기차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영등포역에서 아침 도착 시간에 만나기로 하고 말입니다. '새벽이 Jr.'에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하루 전 밤부터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단한 종이 상자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양쪽에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어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서울 가는 기차를 타야 합니다. 김천역에서 새벽 4시 54분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는 3시 30분에는 기상을 해야 했습니다. 어미와의 이별이 우리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일 수가 있겠다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사람도 영영 헤어지면 눈물이 앞을 가리게 되는데 진돗개 모자(母子)라고 예외가 아닐 듯싶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감정을 동물에게 이입시키지 말라고 아내에게 타일렀지만 오히려 저를 매정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집 마당 모퉁이에 세워둔 자동차 근처에 상자를 내려서 이별할 강아지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담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리곤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어미에게로 가 뽀뽀를 했습니다. 다음부터 순순히 주인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론 대세(大勢)를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이별의 슬픔은 살아 있는 생물에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기차를 평소와 다름없이 타고 올라갔습니다. 강아지를 태웠다는 것도 잊을 만큼 조용한 수송이었습니다. 세 시간에 걸친 기차 여행에서 딱 세 번 강아지를 살펴보았으니까요. 그 녀석 참 기특하기도 하지! 아내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영등포역에 도착했습니다. 강아지를 인계하기로 한 교수님 내외가 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린 인근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문 입구에 둔 박스에 눈을 떼지 못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어갈 것이 염려되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보내는 아쉬움이 서려 있는 눈으로, 그리고 교수님 내외분은 함께 생활하게 된 강아지에 대한 기대의 눈이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교수님이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는 뜻으로 상자를 열어 주었습니다.

"새벽이 Jr.야 잘 가. 좋은 주인님 만났으니 우리와 살 때보다 더 행복할 거야! 안녕~"

하지만 강아지는 눈도 맞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잘 따르던 강아지였는데 말입니다. 아마 무척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강아지 값을 치러야 행복하게 산다며 생각보다 많은 액수의 돈을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떠나는 '새벽이 Jr.'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았습니다. 우리를 원망하는 듯한 강아지의 눈이 아른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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