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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내고 얼굴 '성형'...후회 막심입니다

[체험기] 성행중인 '취업 사진 전문 스튜디오'... 패키지는 10만 원 훌쩍 넘어

등록|2012.04.17 16:24 수정|2012.04.17 21:16

▲ 한 남성이 전문 스튜디오에서 취업용 사진을 찍고 있다. ⓒ 조윤희


'취업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낄 때는 또래 친구들과 대화할 때이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와 친구들은 처음의 주제가 무엇이었든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취업 준비'로 끝난다.

얼마 전 상반기 공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이력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많다. 특히 '이력서의 꽃'이라는 취업 사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취업경쟁에 혹여 '이미지' 때문에 서류심사에서 떨어질까 취업 사진도 공들여 찍는 것이다. 일반 기업에 취업하려는 이들마저도 이제는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 지망생들처럼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선호하고 있다.

공개채용 시즌이 되면 지인들의 취업용 사진이 SNS에 올라오곤 한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좋은 인상을 주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취업용 사진에 무심하던 나마저도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다.       

취업지원서 사진 한 장에 3만 원... "기다리는 동안 웃는 연습하세요"

취업 사진을 잘 찍는 사진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이력서 사진'이라고 운만 떼면 유명한 곳을 줄줄 말해주기 때문이다. 취업 사진 전문 스튜디오는 각 대학가마다 유명한 곳이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나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줄임말)' 사이에서 유명한 서울시 대학가의 한 스튜디오에서 직접 취업용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사진 하나에 3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되기는 했지만, 사진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다른 이들과의 이력서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아 전문 스튜디오에 맡겨보기로 한 것이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취업 사진 전문 스튜디오를 찾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재킷과 톱(민소매) 등의 촬영의상은 스튜디오에서 빌릴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 지원하는 직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목과 어깨 부분이 드러나도록 톱을 입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스튜디오 직원은 설명했다. 톱을 입으면 목 라인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 역시 셔츠, 재킷뿐 아니라 넥타이까지 스튜디오에서 빌릴 수 있었다.

추천해준 옷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에 대한 몇 가지 팁을 들었다. 카메라의 플래시 때문에 눈썹은 '짱구처럼' 진하게 그리는 것이 좋단다. 직원은 이어 '직종별로 좋은 화장법'에 대해 설명했다. 항공사를 지망하는 여성은 전반적으로 밝은 톤의 화장이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고 아나운서는 신부 화장 보다는 조금 덜 진할 정도로 강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또 일반기업용 사진으로 스모키 화장은 피해야 한단다. 언더라인을 그리면 인상이 독해(?)보이기 때문에 직원은 아이라인만 그리는 것을 권장했다. 

"치아는 8개 이상 드러내는 것이 좋아요."

스튜디오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이 스튜디오는 여자 손님들에게 이를 드러내 웃는 모습으로 사진 찍기를 권장했다.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 밝은 인상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튜디오 벽에 붙여진 예시용 사진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는데 인상이 깨끗하고 좋아보였다.

사실 나는 치아 배열이 고르지 않아 평소에도 이를 잘 드러내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은 '악마 웃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악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치열이 고르지 않아 걱정이다"는 나의 말에 직원은 "이빨도 보정이 가능하니 괜찮을 거다"라고 안심시켰다. 남자의 경우엔 이를 드러내면 자칫 가벼워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소만 짓는 것을 권유한다고 직원은 말했다.

"기다리시는 동안 웃는 연습 하고 계세요."

메이크업을 마치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거울을 보며 이 여덟 개가 보이도록 웃어보았다.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미소에 혼자 민망해졌다. 몇 번 더 연습하니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자꾸 연습할수록 오히려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눈 키우고 머리 심고 치아 교정하고... '신의 손' 같은 보정 작업

▲ 스튜디오 직원과 손님들이 함께 사진을 보정하고 있다. ⓒ 조윤희


차례를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정하는 작업을 지켜봤다. 손님은 사진 보정을 해주는 직원과 나란히 모니터 앞에 앉아 보정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앞서 사진을 찍은 여성들의 사진은 모두 하나같이 올백 머리를 하고, 치아 여덟 개를 보이며 밝게 웃고 있었다.

보정을 하는 직원은 포토샵을 통해 각 눈의 크기를 비슷하게 맞추어 주고, 쌍꺼풀을 그려주기도 했다. 눈·코·입이 불균형하면 재배치 시켜주고, 심지어는 덧니도 없애 교정한 이처럼 가지런히 만들어주었다. 머리가 없으면 머리도 심어주었다. '신의 손'처럼 인물을 재창조하는 후보정 작업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의 손놀림'을 지켜보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어보라는 말에 이를 드러내놓고 웃어보았다. 사진을 찍는 과정은 길지 않았다.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15장 내외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학개론 수업 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땐 신중하게 눌러라' 하시던 교수님의 말은 이 업계에선 통하지 않는 듯했다.

그에 비해 보정과정은 10분 정도 걸렸다. 어차피 후보정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니 사진 자체는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사진 촬영보다 보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이다. 보정을 위해 직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직원이 물어본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어떤 분야로 취업 준비하시나요?'였다. 각 분야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보정을 통해 구현한다는 것이었다. 

▲ 나 역시 직원과 함께 사진을 보정했다. ⓒ 조윤희


15장 내외의 사진 중 가장 나은 사진 하나를 골라 포토샵 보정을 시작했다. 자신들이 '보정 공식'에 맞춰 알아서 내 얼굴을 하나 둘씩 바꾸기 시작했다. 웃음 때문에 뭉개졌던 눈의 크기를 키우고, 이목구비도 균형에 맞게 재배치시켰다. 피부톤을 보정하고, 잡티를 제거하고, 거기에 턱선도 날렵하게 다듬었다.

"괜찮죠?"
"네."

이미 잘 짜여진 공식에 따라 내 얼굴을 포토샵으로 바꿔가는 것이었기에 일단은 믿고 맡기기로 했다. 보정하는 동안 가장 큰 고비는 웃으면서 드러낸 불규칙한 치열이었다. 치열이 고르지 않아 웃을 때 오히려 비호감(?)처럼 보였던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직원은 알아서 이빨의 모양과 길이를 보정했다. 내 앞니에 맞게 다른 이를 길게 늘리고 웃으면서 드러났던 선홍빛 잇몸도 감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어느새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마무리는 역시 '이빨 화이트닝'이었다.

"근데, 이거 저 아닌 거 같지 않아요?"

이빨 보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뻐하기도 잠시, 어느 순간 모니터 속의 사진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어색해 보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걸려 직원에게 물었다. 하지만 "비슷한 것 같은데요" 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직원은 원본사진과 보정사진을 번갈아가며 보여줬다. 원본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정사진 속 나는 어딘지 모르게 내가 아니었다. "지금은 모니터가 커서 그런데 작게 인화하면 별 차이 없어요"라고 직원이 쐐기를 박았다. '전문가이니 나보다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대로 보정을 마쳤다. 직원은 원본 사진과 보정된 사진이 담긴 CD를 주었다.

눈 앞에서 탄생하는 '이력서용 얼굴'... 취업 패키지는 10만 원 이상

직접 취업용 사진을 찍어보니 가장 먼저 3만 원이라는 가격에 의문이 생겼다. 촬영에 적합한 메이크업으로 수정해주고, 옷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촬영을 하는 과정만큼은 일반 사진관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30초라는 촬영 시간은 빠르면 빨랐지 다른 곳보다 길지 않았다.

일반 사진관과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전문적인 '촬영'이 아니라 바로 '전문적인 보정'이었다. 손님과 함께 나란히 앉아 포토샵으로 보정을 하며 이력서용 얼굴을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이 제공하는 주요한 서비스이다. 사진을 찍은 느낌보다는 사진을 '수정'하러 간 기분이 들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정에 할애했다. 

요즘은 취업 사진 패키지도 등장해 취준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하는 미용실과 사진관을 함께 결합상품처럼 묶어 각 분야 '전문가의 손길'을 통해 완성도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이러한 결합상품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인기이다.

사진관에서 만난 스튜어디스 지망생 A양은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헤어나 메이크업은 되도록 혼자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직업 특성상 기본 사진 뿐 아니라 프로필 사진까지 필요해 사진 촬영만으로도 경제적인 부담을 느낀다"고 했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좀 더 완벽한 사진을 위해 패키지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 원본 사진과 보정 후의 사진.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 조윤희



"누나, 인조인간 같아."

내 얼굴을 가장 잘 아는 가족들은 하나같이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 역시 "너 아닌 것 같아!"라며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예쁘게 보정돼 경악한 것이 아니라 사진 속 인물이 정말 내 얼굴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쁘게 보정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웃으면서 생겼던 얼굴의 근육은 보정으로 이미 온데간데없이 지워졌다. 형식적으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근육이나 주름 같은 자연스러운 표정의 일부분까지 보정으로 남김없이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사진 속 치열은 가지런해 보기 좋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괴리감마저 들었다. 보면 볼수록 사진 속 인물은 내가 아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같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은 마치 공장에서 판을 찍듯 같은 머리에 같은 표정을 한 획일화된 모습이다. 심지어 멀리서 사진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았다. 각 스튜디오만의 '공식'을 통해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모두 획일화된 모습의 결과물을 얻게 된 것이다.

▲ 같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두 사람. 사진만 보면 두 사람은 자매같았다. ⓒ 조윤희


물론 그 공식에 적용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이들도 분명 많다. 광고회사를 지망하는 대학생 김아무개양은 이곳에서 찍은 사진에 대해 "보정이 잘 돼서 99% 만족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나머지 1%는 (과장된 사진 때문에) 면접에 가면 심사위원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며 평소와는 다른 사진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해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보정을 하다보면 그 사람의 개성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내가 바로 이 사례의 좋은 본보기였다. 나는 결국 포토샵 보정을 잘하는 친구에게 재보정을 부탁했다. 내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어색했던 내 얼굴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보정해 주었다. 치열은 다시 원래대로 복구시켰다. 고르지 않은 이 때문에 전보다 예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친구가 새로 보정해준 사진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나 같지 않은' 사진을 보면서 느꼈던 괴리감이 예쁘지 않은 내 모습을 직시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내내 사진관 한편에 놓여있는 한 개그맨 지망생의 사진이 떠올랐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찍은 그의 프로필 사진은 함께 붙어 있는 여러 취준생의 사진보다도 자연스러웠다. 그 사진엔 과한 보정도, 어색한 미소도 없었다. 정형화된 취업준비생의 사진들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린 그의 사진은 '보정 없이도' 가장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조윤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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