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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 그리고 그녀의 남자를 찾아가는 남편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영화, 죽음을 말하다(14) - <디센던트>

등록|2012.04.16 20:20 수정|2012.04.17 09:16
*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물론 황망하다. 눈물이 난다. 시계 바늘을 그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때 그랬더라면, 그러지 않았더라면'의 연속이다. 그러나 대성통곡은 없다. 바닥에 주저 앉아 울다가 혼절하는 일 또한 없다.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에게도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드린다. 떠나고 보냄의 속살은 같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방식은 다르다.

열 일곱 살과 열 살짜리 두 딸을 둔 부부. 남편은 대지주의 후손에다가 변호사다. 당연히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 다만 남편이며 아빠인 남자가 너무 바쁠 뿐이다. 딸들의 양육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 사춘기 큰딸의 반항에 대응하는 것도, 작은 딸을 보살피는 것도 물론 엄마 책임이다.

부부가 삐걱거리기도 하고 큰딸 때문에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일상은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보트 사고로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다.

영화 <디센던트> 포스터 ⓒ 20세기폭스코리아

남편 앞에 산더미 처럼 과제가 쌓인다.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가봐야지, 아이들 챙겨야지, 일해야지... 정신이 없다. 급기야 아내 담당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해온다.

아내는 본인이 직접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문서를 사전에 작성해 놓았기에 남편은 아내 뜻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친구, 친지들에게 알리기로 한다. 

그러는 가운데 큰딸의 입을 통해 아내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 남편은 아내의 상대를 찾아 나선다. 아내의 상태를 알려주기 위해서. 물론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 여정에 아이들이 동행하게 되고, 그러면서 남편은 지금까지 지탱해온 자신의 삶과 가족 안에서의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과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어서 웃음과 눈물이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영화 속의 죽음, 죽음준비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앞에 말한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 또는 living will)'이다. 이것은 '사전의료의향서'라고도 하는데 죽음이 임박한 상황을 대비해 생명의 연장 및 특정 치료 여부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표시해두는 공적 문서를 말한다.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엄마의 애인을 찾아나선 아빠와 아이들. ⓒ 20세기폭스코리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 영화에서는 의사가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통보를 하자 남편은 곧바로 아내의 사전의사표시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본인의 뜻대로 할 것을 결심한다.

그다음은 이런 사실을 가족, 친구, 친지들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아내의 친정부모님을 찾아뵙고 그 사실을 말씀드리니 친정아버지는 흐르는 눈물 속에서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비록 알아듣진 못하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에게도 딸을 보러 가자고 이야기한다.

친구와 친지들에게 알리는 방식은 우리와는 판이하다. 낯설다. 파티 형식으로 모여 음식을 나누며 모두에게 소식을 전한다. 아내가 이제 곧 떠나게 될 것이라고, 병실을 찾아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당신은 나의 친구이며, 고통이었고 기쁨이었어"

마지막으로 아내, 엄마에게 식구들이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한 사람씩 병실로 들어가 작별인사를 한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도 역시 같은 기회를 준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일까. 남편의 작별인사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당신은 나의 친구이며, 고통이었고 기쁨이었어. 안녕, 잘 가! 안녕, 안녕, 안녕..."

영화를 보는 내내 남편과 두 딸을 떠올린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천수를 누리고 떠나게 되든 아니면 생각지 못한 때에 갑자기 떠나게 되든 세 식구가 저렇게 작별인사를 해주면 좋겠다. 한 사람씩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내 귓가에 대고 해준다면 비록 육신의 귀는 이미 닫혔다 할지라도 분명 영(靈)의 귀가 듣고 고마워할 거라 믿는다.

부족하고 부실한 아내이고 어미였지만 그래도 남다른 관계로 공간과 시간을 함께 누리며 마음을 나눴던 세 식구에게 진심이 담긴 조용한 인사를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헤어짐에 가슴 아프고 슬프더라도 떠나는 내가 고마운 마음 간직한 채 기쁘게 인사를 받고 가면, 남은 세 식구도 슬픔과 아픔의 시간을 조금은 순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떠난 집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영화 속 세 부녀(父女)처럼 말이다.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엄마 떠난 빈 자리에 남게 될 세 식구. ⓒ 20세기폭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영화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미국(2011)>(감독 알렉산더 페인 / 출연 조지 클루니, 쉐일린 우들리, 아마라 밀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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