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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좋아, 대구에서 매일 와요!"

[창녕 화왕산 산행기] 봄에는 진달래, 가을엔 십리 억새평원

등록|2012.04.17 18:20 수정|2012.04.17 18:23

▲ 화왕산 십리 억새 평원. ⓒ 이명화


지난 14일(토) 경남 창녕행 8시 40분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편과 버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산과 들, 길가에는 바라보는 곳마다 봄꽃이 마음과 눈에 담긴다. 봄은 기적이다. 죽은 듯한 땅이 온갖 기화요초로 뒤덮히고, 온누리에 꽃이 만발할 수 있는지. 침묵으로 일관했던 산과 들이 깨어나 빛깔과 자태가 고운 봄꽃들이 만개하는지. 꽃은 그야말로 누추하고 고단한 우리네 삶에,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준다.

날씨는 맑고 화창하다. 햇볕 좋은 날,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버스는 남지에서 잠깐 섰다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1시간 20분 만에 창녕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창녕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선다. 길 건너 매표소로 향하는 길. 쏟아지는 햇볕은 따뜻해서 마치 차렵이불을 덮은 듯하다.

창녕여자고등학교 맞은 편 길가에는 온통 벚꽃이 만발해 가는 길이 환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등산로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간다. 거리에는 꽃비가 내린다. 길 양쪽에 꽃구름처럼 뭉실뭉실 피어오른 벚꽃이 봄바람에 날리면서 춤을 춘다. 벚꽃은 땅으로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바닥은 온통 꽃잎으로 하얗다.

화왕산 가는 길은 봄바람에 날린 벚꽃이 춤을 춘다 

▲ 화왕산 가는 길. 꽃비가 내린다. ⓒ 이명화


벚꽃에는 꿀벌이 고개를 처박고 윙윙거리며 꿀을 따느라 바빴다. 꽃구름처럼 둥실둥실 이어지는 꽃길에는 벌이 왕왕대는 소리로 제법 소란했다. 벚꽃 길이 끝나고 약 5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까. 이정표에는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지만, 이쪽은 처음인데다 정보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 지 망설여 진다.

산행지도를 살펴보니, 제1등산로는 제법 굴곡이 심해 보이는 데다 빙 둘러가는 듯했고, 제2등산로는 짧은 단선으로 되어 있다. 제2등산로는 길이 짧고 시간도 빠르겠다 싶지만 남편은 제1등산로로 가길 원한다.

"어이 하리요. 양보하고 따라 가야지."

제1등산로로 접어들자, 솔 숲 나무계단 길이 얼마쯤 이어지다가 얼마 안 가서 자하정(紫霞停)이라는 쉼터가 나왔다. 먼저 올라 온 등산객이 쉼터에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하정을 지나면서부터 고도는 더 높아지고 바윗길, 암릉길로 점점 가팔라졌다. 밧줄을 타고 오르고, 손발을 다 이용해서 오르기도 하건만 암름길은 한동안 계속된다.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구간도 있고, 구불구불 울퉁불퉁 바위도 있다.

"대구서 왔는데, 매일 옵니다... 여기! 정말 좋아요"

▲ 창녕 화왕산 오르는 길에서... ⓒ 이명화


▲ 암릉길 걷다가 돌아보니, 뒤 따르는 사람들 보인다. ⓒ 이명화


이 길은 왼쪽으로 화왕산을 멀리서나마 조망하며 걸을 수 있어, 길이 심심찮고 주변 경관이 다채롭고 흥미롭다. 앞서 가던 중년의 남녀는 부부인가보다. 생각하던 차에 우리 뒤쪽으로 처진다. 화사한 분홍빛 옷과 모자를 쓴 중년여자와 단순한 등산복을 입은 남자다. 여자가 우리 부부를 보면서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양산에서 왔다고 했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이 길을 아셨어요? 모르는 사람 많은데..."
"그렇습니까? 이쪽으로는 처음입니다."
"정말 잘 오셨네요. 우린 대구서 왔는데, 매일 옵니다. 좋지요? 정말 좋지요?"

자꾸 '좋지요? 정말 좋지요?' 하고 스스로 감탄하며 확인한다. 매일 올 정도로 좋은가보다. 대구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면서 거듭 이 등산로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 화왕산 암릉길 걷다 돌아보다. ⓒ 이명화


화왕산 등산로는 정상 억새밭을 중심으로 여러 코스가 있는데, 그중 자하골 코스, 전망대 코스, 도성암 코스, 장군바위 코스, 옥천 매표소~임도 코스, 관룡산 용선대 코스 등 여섯 코스가 대표적이란다. 그중에서도 자하골 코스(자하골 매표소~화왕산장~전망대~암릉~배바위~남문동문~정상~서문)나 옥천 매표소-임도 코스(옥천매표소~임도~동문~남문~배바위~서문~정상~서문)가 제일 빠르고 무난하단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가장 조망이 빼어난 코스는 전망대 코스. 이정표에는 제1등산로로 표시되어 있으며, 바로 우리가 가는 길이다. 화왕산장에서 전망대, 화왕산성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울퉁불퉁하고 아찔한 바위 길과 암릉 길로 이어지지만, 화왕산 정상을 멀리서나마 조망하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또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서면 창녕 읍내와 우포늪 등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화왕산 억새평원에서 걷는 길은 풍경·스릴 모두 압권

▲ 화왕산에서 바라본 배 바위. ⓒ 이명화


창녕 읍내와 우포늪도 보고, 화왕산 억새평원 쪽도 보면서 걷는 이 길은 풍경도 압권이지만, 위험하고 아찔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스릴 압권이다. 암릉길도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더 험해진다. 점점 위험 수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찰나, 높다란 바위를 넘어서니 바로 앞에 흙길이 보인다.

'휴~' 암릉길은 끝나고, 이제 부드러운 흙길이 반긴다. 이토록 흙길이 반갑다니... 부드러운 흙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암릉, 바윗길은 끝나고 능선 상부에 내디딘 것이다.

오른쪽 분지 끝에는 배 바위가 보이고, 왼쪽 화왕산성 남쪽 모서리에는 산불 감시 초소가 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은빛 억새물결로 출렁일 십리 억새 평원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배 바위와 남문, 동문, 화왕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왼쪽 길로 가면 서문이 지척이지만, 우뚝 솟은 배 바위를 놓치고 만다. 배 바위가 지척인데, 그냥 갈 순 없지 않은가.

화왕산...정상에서 내려다 본 평원... ⓒ 이명화


해마다 억새 태우기 행사를 열었던 이곳은 몇 년 전(2009), 그 때의 끔찍한 사고 이후로 지금은 억새 태우기 행사는 없어졌다. 배 바위에서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배 바위는 아는 지 모르는 지 넓은 평원 끝에 우뚝 솟아 있고, 그 높은 바위에 올라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남쪽 중간에 돌출해 있는 거대한 바윗덩이 배 바위는 "천지개벽 때 배를 묶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로 꼭대기에는 움푹 팬 웅덩이가 두 개 있고, 두 웅덩이 중간에 뱃줄을 묶었던 자리인 듯한 갈고리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는데 보지 못했다.

배 바위 주변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암릉길 올라오느라 배고프다. 평원 능선 상부에 앉아보니, 화왕산 그 넓은 평원이 한눈에 보인다.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도 한참을 앉아 망중한을 즐긴다. 한낮이 되자 햇발은 더 두터워져 있다. 따사롭게 내리는 햇살과 상쾌한 바람의 어루만짐 속에 앉아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 화왕산 정상에서 한 컷. ⓒ 이명화


서문을 지나 화왕산 정상에 올랐다. 화왕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십리 평원은 따사로운 햇살을 오롯이 받고 있다. 이제 산정에서 서문 쪽으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한 번 오기도 쉽지 않으니 산성길 따라 한 바퀴 돌아본다. 남문 쪽으로 향하는 능선은 진달래 군락이지만, 아직도 진달래는 작고 봉오리만 단단하다. 이따금 한 잎 두 잎 몇 개씩은 꽃잎이 열리기도 했지만, 거의 다 단단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생강 꽃이 노랗게 피어 그나마 색을 입혀주고 있다.

화왕산성 길을 걸어본다. 가야시대에 축조된 화왕산성은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싸고 있다. 둘레가 2600m, 면적이 5만6000평이다. 산성내 억새분지는 가을이면 억새물결로 유혹한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 중심지로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 군사상 요충지로 이 산성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다. 정유재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내성을 쌓고 왜군의 진출을 막기도 했고, 그 후 한 두 차례 더 수리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 화왕산 정상에서 바라보다. ⓒ 이명화


▲ 화왕산성 길에서... ⓒ 이명화


햇빛 쏟아지는 4월의 하루다. 갑작스레 포근해진 날에 가감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억새꽃은 없지만, 억새평원은 그 넉넉함과 광활함은 여전하다. 산성 길을 걸어가다가 동문 앞에서 중간 길로 꺾어 가로질러 서문 쪽으로 향한다. 햇살은 차렵이불을 덮은 듯 포근하다. 서문에서 곧장 하산한다. 조금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지다가 길은 호젓하고, 조용한 숲길로 내내 이어졌다. 낮은 곳에는 진달래도 제법 활짝 피었고, 노란 생강꽃은 흐드러져 지천이다.

숲길은 호젓해서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무엇보다 등산길 내내 암릉길을 걸었던지라 조금 지쳐있던 까닭에 호젓한 숲길에서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어 좋다. 어려움 없이 조용한 숲길을 걷다보니, 산 들머리까지 왔다. 삼림욕장을 지나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 어느새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갈림길이 나왔다.

스릴 넘치는 화왕산 등산. 암릉길을 넘고 넘어 당도한 광활한 십리 억새평원... 그 넉넉함 밑에는 수없이 많은 반전을 숨기고 있는 산이었다. 오가는 길과 등산 길이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졸고 또 졸았다.

화왕산

ⓒ 이명화

덧붙이는 글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4월 14일(토). 맑음
2. 산행기점: 창녕여자고등학교
3. 산행시간: 5시간 15분
4. 진행: 창녕여고(10:15)-도성암 입구 삼거리(10:45)-화왕산장(10:50)-제1, 제2 등산로 갈림길(11:00)-
자하정 전망대(11:15)-평원 상부 끝(12:20)-배바위(12:30)-배바위 옆 점심식사 후 출발(1:10)-
서문(1:20)-화왕산 정상(1:35)-동문(2:15)-서문(2:30)-제1.2 등산로 갈림길(3:15)-화왕산장-약수터(3:30)
 (택시비: 5,000원: 창녕 시외버스터미널까지)
5. 부산-창녕: 6,400원/ 부산-창녕 버스시간표: 40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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