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얼중얼 미련곰탱이 중이(中2)다
아동문학가 신천희 스님 산문집 <무얼 믿고 사나> 펴내
▲ 아동문학가 신천희 스님아동문학가 신천희 스님이 산문집 <무얼 믿고 사나>(푸른사상)를 펴냈다 ⓒ 신천희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만 더 착하게 살자! / 남들보다 조금만 더 참으며 살자! / 나보다 남을 조금만 더 생각하며 살자! // 이것이 내가 살아가면서 지고 가는 화두다. 한꺼번에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 성찰을 통하여 하루에 한 번씩 반성하고 하루에 한 가지씩만 착한 일을 해도 일 년이면 365번이나 된다. 그러니 세월이 묵으면 얼마나 더 크게 이루겠는가!"-"작가의 말" 몇 토막
지난 2008년 7월 KBS 1TV '책을 말하다-산을 닮은 괴짜스님의 유쾌한 수다'에 나와 시청자들 배꼽을 잡게 했던 아동문학가 신천희 스님이 산문집 <무얼 믿고 사나>(푸른사상)를 펴냈다. 전북 김제에 있는 무주암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 스님이 펴낸 이 산문집에는 자연사랑과 사람사랑이 함께 어우러져 아지랑이로 가물거리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 산문집은 모두 4부에 103편에 이르는 산문이 '빈손으로 가는 바보들'처럼 저만치 엉거주춤 서서 이 세상살이가 티껍다는 듯이 흘낏흘낏 바라보고 있다. '빈손으로 가는 바보들',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상좌의 반항', '미련 곰탱이',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가 살고 싶은 세상', '토끼는 짖지 않는다', '아이고! 두야!', '소쩍새 우는 사연', '똥 쥐', '돈벌레', '한밤의 탁발승', '씨는 속일 수 없다' 등이 그 산문들.
신천희 스님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중이(中2)다"라는 화두를 먼저 던진다. '스님'을 속된 말로 부르는 말이 '중'인데, 그는 '중이'란 말을 중학교 2학년에 빗댄다. '중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한껏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중이기 때문에) 내 나이는 늘 열네 살"이라고 못 박는다.
그는 "열네 살짜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라며 "이 책에는 일상을 지어가면서 얻은 소소한 깨우침만을 나만의 것으로 풀어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열네 살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해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바람을 잡지 말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제 손조차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은 요지경 속
"여름햇살이 간호사가 엉덩이에 꽂는 주사바늘처럼 따갑게 내리꽂히던 날 주변사람들과 참나무 숯을 만드는 찜질방에 갔다 온 적이 있다. /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용기가 없어 찜질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참나무 숯으로 만든 상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주인이 나를 가련하게 여겼는지 참나무 숯에서 축출한 액을 두 병 선물로 주었다" -20쪽 '무얼 믿고 사나' 몇 토막
신천희 스님은 "물에 타서 발을 담그고 있으면 발이 깨끗해진다는" 참나무 숯에서 빼낸 추출액을 선물로 받아 암자로 돌아온 뒤 물을 타서 발을 담근다. 아주 상쾌한 기분을 느낀 스님은 "여러 번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발을 담근다. 근데, 무언가 이상하다. 냄새도 다르고, 발이 따끔거리기까지 한다.
스님은 "쓴 게 보약이라고 아픈 만큼 발이 좋아지겠지 싶어 꾹 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스러울 만큼 따가"워 그 액을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마음을 비우고 하수도에 버리려고 보니 액이 아니라 번질번질한 기름", "제초기에 쓰는 기름이라 경유와 휘발유를 섞어 놓은" 그 기름이었다. 스님은 급한 마음에 그만 기름을 잘못 가지고 나온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얼 믿고 사나'란 이 산문은 한순간 착각이 스스로를 또 다른 고통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하찮은 것 같지만 지혜로운 깨침이다. 제 몸에 붙은 손조차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를 통해, 내 실수를 통해 이 세상살이를 깨칠 줄 아는 작은 지혜, 그게 곧 큰 지혜로 가는 지름길 아니겠는가.
"I go!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 <무얼 믿고 사나> 표지 ⓒ 푸른사상
막걸리 이야기가 담긴 이 산문을 읽을 때 문득 강남구 대치동 골목에 자리한 막걸리 집 벽에 붙어있었던 시가 떠올랐다. '천상병 시인은 왜 막걸리를 밥이라 했는가?'(2009, 9, 14. 오마이뉴스)란 기사에도 나오는 '소야, 술타령'이란 시가 그것이다. 글쓴이는 그 시를 읽으며 속으로 '참! 그 시 재미있게 썼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이나 그 시를 쳐다봤다.
"날씨야 /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 내가 옷 사 입나 / 술 사 먹지"란 이 독특한 시를 쓴 '소야'란 분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궁금증을 풀어준 책이 이 산문집이다. 이 책 표4에 '술타령'이란 제목 아래 '소야 신천희'라고 적혀 있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뒤얽힌 세상을 살다보니 참으로 희한한 인연도 다 있다.
신천희 스님은 '행심바라밀'이란 산문에서 "내가 경적을 빠앙! 울리면 누가 한 입 베어 먹은 옥수수처럼 이 빠진 함박웃음을 피우며 반가워" 하는 그 올드미스에게서 보현보살을 본다. 그 올드미스는 아는 노래 한 곡 없이 칠십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다. "아니 이게 누구여! 시님 아녀!"라고 웃는 할머니, "나눠먹어야 이웃 간에 정이 쌓이는 벱이여"라고 먹을 것을 들고 나서는 그 할머니가 곧 보현보살이라는 것이다.
신천희 스님 산문은 그 표현이 참으로 재미있고 독특하다. "햇살이 어제 온 눈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고 있는 오후"(밥 도둑놈)라거나 "지금쯤 할머니 쭈글쭈글한 가슴이 뽕 브래지어를 한 것처럼 봉긋 부풀었겠다"(행심바라밀), "I go!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IGO), "소쩍새란 놈이 내가 물려받은 옷을 입었다는 걸 알고 '옷 적다! 옷 적다!'하고 또 놀린다"(소쩍새 우는 사연) 등 기발한 표현이 수없이 많다.
"고물 같은 나를 엿 바꿔 먹어버리고 싶다"
"가끔 암자 앞에까지 고물장수 차가 온다. 암자 앞에 와서는 고물을 내놓으라고 마이크 음량을 최대한 높여 소리를 질러대고 메아리도 한 몫 거든다. 그때마다 나는 고물장수가 나를 보면 못 쓰는 고물이라고 집어갈까 봐 주눅이 들어 방구석에 웅크리고 숨는다. / 그러니까 혼자 살고 있는 게다. 나도 그런 내가 싫다. 하루라도 빨리 고물 같은 나를 엿 바꿔 먹어버리고 싶다." -233쪽, '지킬박사와 하이드' 몇 토막
아동문학가 신천희 스님 산문집 <무얼 믿고 사나>는 암자에서 혼자 살아가는 스님이 자신과 이 세상에게 툭툭 던지는 물음표이자 느낌표이다. 스스로를 우주인(雨酒人, 비오는 날마다 술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는 신천희 스님은 이번 산문집에서 이 세상 안과 밖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이 세상살이가 '아등바등'에 있지 않고 '연'(然, 그러하다)에 있다는 깨침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산문집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 백미는 우리 말과 글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멧돼지란 놈은 사이비 종교 교주 같다. 사이비 종교 교주는 자기가 정하는 게 모두 경전이 아니던가. 멧돼지도 없는 길도 자기가 가면 곧 길이다"(멧돼지 나라)에서 드러나듯이 신천희 스님 산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꿀보다 더 깊은 단맛이 새록새록 배어난다.
전북 김제에 있는 무주암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자 아동문학가 소야 신천희는 <아동문예>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창주문학상, 녹색문학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서덕출창작동요제 대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아동문학 부문 공로 대상(2010) 등을 받았다.
동시집으로 <달님이 엿보는 일기장> <밤하늘 엿보기> <달을 삼킨 개구리> <웃음바다> <지구를 색칠하는 화가> <새의 그림자는 날지 않는다> <똥꽃>이 있으며, 장편동화집 <대통령이 준 완장> <꽝포아니야요! 남북공동초등학교>, 산문집 <중얼중얼>을 펴냈다. 지금 우주인(雨酒人) 회원 및 푼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