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서 번 100만원, 도시 돈 500만원과 맞먹어요"
도시생활 청산하고 농촌으로 내려온 한종성·임선희씨
▲ 토종 벚꽃과 어우러진 고택에 반해서 전남 함평으로 터전을 옮겨 온 한종성·임선희씨 부부가 전통차실 영양재에서 얘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다. ⓒ 이돈삼
"작년 이맘때였어요. 나비축제 보러 왔다가 이 마을에 들렀는데요. 한눈에 반해버렸어요. 산비탈에 토종 벚꽃이 활짝 피어 고택과 어우러져 있는데, 그 모습에 마음이 설레더라구요. 가슴도 콩당콩당 뛰고요."
지난해 11월 인천광역시에서 전남 함평의 모평마을로 옮겨온 임선희(43)씨의 얘기다. 마을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살고 있던 아파트를 바로 처분하고 남행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귀촌에 대해 남편(한종성·47)과 공감대를 형성해왔죠. 머지않은 미래에 시골에 가서 살기로…. 근데 '이곳이다' 싶더라구요. 정말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이런 고택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 120년 전 지어진 전통고택. 오래 전부터 방치돼 왔던 곳이 임선희씨 부부의 손길에 의해 전통차실로 단장됐다. ⓒ 이돈삼
▲ 한종성 씨가 영양재 옆으로 낸 물길의 대통을 손보고 있다. ⓒ 이돈삼
그이 부부가 한눈에 반한 고택은 다름 아닌 영양재(潁陽齋). 120년 전 천석꾼이었던 선비 윤상용이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인데, 1960년대 후반부터 방치됐던 곳이다.
이들은 곧바로 누정의 주인을 찾아가 임대를 간청했다. 오랜 잠을 깨워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겠다고.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사랑방이자 문화공간으로 꾸미겠다고.
주인으로부터 흔쾌히 허락을 얻어낸 그이 부부는 아파트를 판 돈으로 누정 단장에 나섰다. 여기저기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끔히 청소를 했다. 주변에 잔디도 심었다. 옛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누정 앞으로 대통을 이어 물길도 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전통차실 '영양재'로 문을 열었다. 마을사람들이 좋아했다. 마을을 찾은 외지인들도 고풍스런 공간이 생겼다고 반기며 차 한 잔씩 마시고 갔다.
▲ 임선희 씨가 전통차실 영양재에서 차를 따르면서 얘기를 하고 있다. 임씨는 오래 동안 차를 생활화해 왔으며 궁중다례까지 전수받은 다인이다. ⓒ 이돈삼
▲ 임선희 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작품은 모평마을 정보화센터에 걸려 있다. ⓒ 이돈삼
임씨와 한씨 부부는 인천에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임씨는 도자기 전시·판매장을 운영하며 '도자기업계의 큰손'으로 불릴 정도였다. 18살 때부터 차(茶)생활을 하며 궁중다례까지 전수받았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인 그림수업도 전문적으로 받아 동·서양화에서 문인화까지 넘나들며 화단에서도 인정받는 화가였다. 남편 한씨는 당진제철소에서 일하며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시골생활에 대한 오랜 그리움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소득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시골에 살고 싶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쉽게 떨치고 짐을 꾸릴 수 있었던 이유다.
▲ 한종성·임선희씨 부부가 마늘밭 사잇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만치 보이는 한옥이 이들 부부의 거처다. ⓒ 이돈삼
▲ 한종성 씨가 자신의 집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다. 이 나무는 땔감으로 쓸 것들이다. ⓒ 이돈삼
모평마을에 둥지를 튼 지 이제 6개월. 그이 부부는 빠르게 시골생활에 적응했다. 임씨는 차실을 운영하며 한옥민박과 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꾸리고 있다. 한씨는 2개월째 구들 놓는 일을 배우며 돈벌이를 겸하고 있다. 앞으로 2년 안에 근사한 흙집도 직접 지을 생각이다.
"도시에서의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죠. 근데 큰 욕심 없어요. 여기서 100만 원 수입이면 족해요. 이 돈이면 도시에서 500만 원 번 것과 맞먹거든요. 아니, 질적으로 훨씬 더 나은 생활을 해요."
임씨의 말이다. 그녀는 실제 시골생활에서 큰 돈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도시에서는 뭐든지 돈으로 해결해야 했지만 시골에선 돈이 없어도 먹고사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과 들에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발품 팔아 약간의 노동을 더하면 그것을 돈으로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 임선희 씨는 마을주민들과 잘 어우러져 지낸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들이 방금 튀긴 것이라며 튀밥을 임씨에게 건네고 있다. ⓒ 이돈삼
▲ 전통차실 영양재 뒤로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길 주변에는 야생의 차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 이돈삼
실제 그녀는 먹을거리가 필요하면 칼 하나 들고 들로 산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시장에서 돈으로 사야 하는 푸성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시장에 가는 기분이다. 그때마다 오진 기분을 느낀다.
"저희가 작년 겨울을 앞두고 이 마을로 들어왔는데요. 지난겨울 동안 시장 한 번 안 갔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다 챙겨주셨거든요. 고구마도 주고 배추도 주고. 튀밥을 튀기면 튀밥까지도…."
마을 어르신들이 했던 대로 그녀도 김치를 담그면 나눠먹는다. 고추장·된장을 담가도 이웃과 나눈다. 뿐만 아니다. 마을의 일에도 적극 나선다. 이웃과 어우러져 지내는 것도 즐겁다. 어르신들과 목욕탕에도 같이 다니며 등까지 밀어줄 정도다.
그이 부부는 앞으로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가꿀 계획이다. 차실 주변에 꽃도 많이 심어 언제라도 꽃향기 넘실대는 찻집으로 꾸밀 생각이다. 마을 산야에 널려있는 야생차나 칡뿌리, 쑥, 달래 등 자연자원을 활용한 상품화도 모색하고 있다. 매화와 목련꽃을 이용한 차는 이미 만들었다.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인가 싶어요. 생활도 여유롭고. 주변 경치도 아름답고요. 정말 잘 왔다 싶어요. 너무너무 좋습니다. 가득 차고 넘칠 만큼."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 한종성·임선희씨 부부의 얼굴에서 시골생활에서의 진한 행복이 묻어난다.
▲ 전통차실 영양재 앞으로 마을주민이 운전하는 경운기가 지나고 있다. 영양재는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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