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00살 살다 이틀 앓고 죽는 비법이에유"

'찾아가는 시골경로당 체조시간', 그 유쾌한 현장을 가다

등록|2012.04.20 15:29 수정|2012.04.20 15:29
"아, 아. 마을에서 알리것슴다. 오늘 마을회관으로 안성농업기술센터에서 나오셔유. 마을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점심 잡수시고 마을회관으로 오셔유."

지난 19일, 정겨운 '이장님표 마을방송'이 마을에 울려 퍼진다. 아직 모내기 할 철은 아니지만, 마을주민들은 봄 농사 준비에 한창 바쁘다. 그래도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자 안성 금광면 흰돌리 마을회관으로 마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기대반 짜증반'이다. '기대'는 운동에 대한 기대요, '짜증'은 한창 바쁜 농사철이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이날 시종일관 웃는라 배꼽잡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의 얼굴엔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그대로 나타난다. ⓒ 송상호


체조 강사가 "제가 여러분들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이틀 앓고 돌아가시는 비법을 전수하러 왔어유. 제가 얼굴 주름살 쫙쫙 펴드리면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못 알아볼 거예유유"라고 하자, 어르신들은 '귀는 쫑긋, 눈은 반짝'인다.

"준비운동 하고 밭일하면 운동이 되지만, 그냥 하면 노동이 되유. 내 몸을 자꾸 귀찮게 하면 혈이 풀려서 운동이 되는 거유. 밭일하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운동 가르쳐 드릴 테니 신나게 따라해보셔유."

강사의 '체조 마케팅'이 초반부터 먹히는 듯 보인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 어색한 공기가 흐르지만, 이내 분위기가 풀어진다. 언제 그랬냐 싶다. '기 체조'를 시작하니 어르신들의 입에서 당장 튀어나온다. "아이고 시원혀"라고. 처음 시작할 때 뼈가 "우두둑"거리던 소리도 다 잊어버린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어깨는 움츠리는 운동을 하면서는 웃음 폭탄이 터진다. 서로의 모습이 웃겨서다. 같이 하던 할아버지들도 농담이 잦아진다. 그 농담에 할머니들이 배꼽잡고 웃는다. 웃으랴 체조 따라하랴 바쁘다.

몸에 좋다하면 뱀도 마다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던가. 하물며 기로서 몸을 다스리는 체조를 시켜준다니. 어르신들은 마치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한 동작 한 동작을 잘 따라한다. 박수치라면 치고, 웃으라면 웃고, 고개를 들으라면 든다.

노인회장님흰돌리마을 노인회장님도 시종일관 웃겨 죽는다며 웃으신다. ⓒ 송상호


"숨 들어 마시고, 내쉬세요"라고 강사가 말하자, "숨은 코로 들어 마셔유? 입으로 들어 마셔유"라고 한 할아버지가 말한다. 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아, 네. 코로 들어 마시고, 내뱉는 건 입으로 하시는 게 좋아유"라고 강사가 말하자 겨우 웃음들이 진정이 된다. 나쁜 기운을 몸에서 빼내는 거라고 강사가 말하니, 어르신들의 숨쉬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허리 돌리기를 할 땐 모두 몸이 빳빳하다. "아이고 허리야"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할아버지가 말한다. "90노인도 하는디 이까짓 걸 못해여 그래"라고. 방금 전 허리 아프다던 팔순 할머니가 또 배꼽잡고 웃는다. 

강사가 "여러분, 명상이 좋은 거 아시쥬?"라며 조용한 음악을 튼다. 앉아서 명상 할 줄 알았더니 누워서 한다. 편안하게 누워서 명상을 하면 모든 나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어르신들이 모두 눈감고 조용하다. 마치 시체들이 누워 있는 듯 보여 웃음이 나온다. "주무시기 전에 이렇게 하고 주무셔유"란 강사의 말이 정적을 깬다.

"오늘 화나고 속상한 일 있었다면 다 털고 지나가셔유"라며 강사가 어르신들을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서 눈을 감고 나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체조를 한다. "머리, 얼굴, 목, 가슴 , 양어깨, 양팔, 팔목..."이렇게 차례대로 훑어나가면서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의식(?)을 한다. "지금 여러분들은 물위에 둥둥 떠다니시는 거예유"란 멘트 때문인지 어르신들의 몸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강사님은 개그우먼한바탕 기체조를 같이 하고 나니, 강사가 무슨 말을 해도 마을 주민들은 웃겨죽는다고 난리다. ⓒ 송상호


강사가 "여러분이 평소 이런 '기체조'를 잘 하시면 고혈압, 당뇨 등이 사라져유. 약 안먹어도 괜찮아져유. 저도 그랬으니까유. 아참 눈도 밝아진다니께유. 얼굴도 이뻐지고"라고 하자, 한 할머니가 "아, 다 늙어서 이뻐 뭐할라구"라고 응수해 또 한 번 웃음바다를 만든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몸이 건강해져유. 다 같이 지금 웃어봐유"라고 강사가 말하자,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 웃는 모습이 웃겨서 또 웃는다. 웃음이 웃음을 부른다. "나이 들면 웃을 일이 별로 없다"던 할머니도 넋을 놓고 웃는다. 1분간 장내는 웃음천지가 된다.

"이렇게 재밌게 잘 하시면 우리가 농사 다 팽개치고 이거 하러 오면 어떡혀"라는 한 할아버지의 농담이 또 웃음을 부른다. 강사가 바로 화답한다. "아녀유. 이렇게 체조하시고 웃으시면 농사를 더 잘 하실 수 있어유"라고.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서 팔과 다리를 떠는 것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푸는데 최고란다. 어르신들이 드러누워서 모두 그렇게 한다. "이 운동을 명절 끝나고 드러누워서 하시면 좋아유"라고 강사가 말한다. 한 할아버지가 "그렇긴 헌디 미친년 소리 듣지 않으까"라고 말해 또 웃음바다가 된다.

모든 예비 체조가 끝나고 신나는 뽕짝음악에 맞춰 연속동작을 하는 시간이다. 역시 어르신들 정서엔 '뽕짝'이 최고다. 그 음악에 맞춰 연속동작을 하는 어르신들은 마치 자신들이 프로가 된 것처럼 동작을 척척 따라한다. 몸이 훨씬 가볍다.

1시간 넘게 체조가 이루어졌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어르신들의 얼굴이 시작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대반, 짜증반'이었다면 지금은 모두 미소 하나 가득이다.

누워서 발 떨기어르신들은 몸에 좋다 시니 어린아이들처럼 시키는대로 따라 하신다. 아주 고난이도의 동작조차도. 지금은 명절 끝나고 누워서 이렇게 하면 피로 풀린다니 따라하신다. ⓒ 송상호


처음 약속하기는 5월엔 바쁜 농사철이라 쉬고, 6월부터 하자했다. 체조시간을 마치니 "바쁜 5월 에도 2주는 하고, 6월엔 매주 하자"고 입을 모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파견된 강사와 주민들은 다음시간이 서로 기다려진다. 노인복지관이 안성시내에 있어 시골 경로당이 혜택도 못 받는 걸 감안하면 참 훌륭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체조는 지난 19일 안성 금광면 흰돌리마을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이 체조교실은 안성농업기술센터에서 노인동아리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올 10월까지 거의 매주 양지편마을 경로당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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